쿠로바스

[쿠로바스/청황]이별

물빛녘 2014. 7. 24. 02:06

[쿠로바스/아오키세(청황)]이별

 

-Written by.티토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 왔다. 가을이라서인지 어느 때보다도 푸른 빛을 내고 있는 하늘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떠올라서였다. 떠오름과 동시에 헤어졌다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둘이서 길거리에 있는 농구 코트를 찾아 1 on 1을 하곤 했는데. 머리를 골대에 기대며 농구공을 끌어 안았다. 아아, 벌써부터 보고 싶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건 역효과였지만. 너무나도 시린 빛에 결국 눈물은 떨어졌다.

 

 2년 정도 되었을까. 아마 그 정도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중 2 윈터컵 이래로 사귀기 시작했으니. 둘 사이의 관계는, 그가 농구에 흥미를 잃어 연습에 나오지 않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끈이었다. 어떻게든 끊어지지 않도록 노렸했었건만, 결국 늘어질대로 늘어진 고무줄은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도 그와 동시에 펑. 아아, 내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후회가 밀려온다. 임시방편으로 붙였던 테이프들은 이제 불필요한 것이 되어 내 쪽으로 온 건가. 착잡한 기분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런 결정을 내렸었을까? …답은 간단하잖아? 이제 내가 있을 자리는 없는걸. 줄곧 농구를 좋아하던 그는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견줄 라이벌을 찾았다. 또한 옛 파트너와도 화해했다. 이런 훈훈한 결말에 나란 존재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방인.

 

 자, 무대에 필요하지 않은 배우는 이제 내려 갈 차례입니다. 결국 나는 아오미네라는 사람이 주인공이던 연극에서 내려왔다.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던 최고의 선택지였다.

 

 내가 이별 통고를 할 때 아오미넷치의 표정이 어땠더라?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말을 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지라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기억 속에 남아있는 거라고는 말이 끝나 고개를 들었을 때 얼핏 봤던 담담한 표정 뿐이었다. 그는 나를 잡지 않았고 나는 그를 떠났다. 우리 둘 사이에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둘 다 지쳤던 것이다. 어긋나버릴대로 어긋나버린 이 관계에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곳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끌어 안고 있던 농구공을 잡아 바닥에 튕겼다. 탕탁탁. 낮은 높이에서 떨어뜨린 공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쳤고 이내 내 손에 막혀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치 나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그로 인해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무언가에 막혀 끝. 결국은 원상태로 돌아온 거구나. 바닥에서 위로 올라갔지만 떨어졌던 공처럼. 아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건가. 나름대로 해피엔딩이었잖아?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져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켁. 나도 모르게 침을 잘못 삼켰다. 잠깐동안 켁켁거리던 나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핸드폰 액정에 뜬 알림창을 바라보았다. 부재중 전화에, 문자에. 이게 다 몇 통인 건지. 발신자를 살펴보니 모못치, 쿠로콧치가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오미넷치한테 전해들은 걸까나. 연락을 취해야하나 아예 배터리를 분리시켜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쿠로콧치로부터 온 전화였다. …쿠로콧치인가. 지금으로써는 가장 연락하고 싶지 않던 상대였다. 그와 사귀기 전까지는 아오미넷치의 애인이 쿠로콧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만큼 어울리기도 어울렸을 뿐더러 당연하게 느껴졌던 사실이었다.

 

 종료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미끄러져 통화키를 밀어버렸다. 아. 황급히 종료하려던 나는 전화 너머로 들려 온 소리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키세군!


 너무나도 다급한 목소리에 잠시 주저하다가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걱정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줬다. 들립니까, 키세 군, 괜찮나요? 쿠로콧치는 그렇게 말했다. 아아, 역시 알고 있었구나. 짐작했던대로 아오미넷치가 말했던 걸까.


"…쿠로콧치."

 

-아, 괜찮으신가요?!

 

"괜찮슴다. 애초에 찬 건 이쪽이라구여? 왜 저한테 그런 걸 묻는지 당최 모르겠슴다."

 

 한 손으로 농구공을 굴리며 대답했다. 정말 모르겠다. 어째서 쿠로콧치는 나에게 괜찮냐고 묻는 걸까. 나는 이제 괜찮은데. 내가 저지른 일이니 괜찮지 않을 리가 없잖아? 좀 전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말을 하며 낮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이내 신음소리로, 울음소리로 바뀌어버렸다. …아니, 괜찮지 않아요. 지금도 그가 보고 싶어. 그와 함께 웃고 싶고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그와 1 on 1을 하고 싶고 야한 짓도 하고 싶어. 아니,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되지 않잖아? 그러니까 동정은 그만둬, 쿠로콧치. 제발, 부탁이니까.

 

-키세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쿠로콧치, 그거 알고 있슴까?"

 

-네?

 

"한 번 끊어진 끈은 다시 이어져도 매듭이 남아 있슴다. …끊어지기 전으로 온전히 되돌릴 수 없어. 설령 지금 제가 끊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끊어졌을검다. 저는 단지 그 시기를 앞당긴 것뿐이에여."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본의치 않게 흘러 나왔다. 그래, 이건 언젠가는 닥쳐왔을 일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둘 다 잡고 있던 손을 놓았을 것이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아.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그저 허황된 얘기에 지나지 않을 뿐. 곪아버린 상처처럼 회복시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던 우리의 관계. 결국 나는 그것을 도려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내가 이 손으로 그를 밀어냈고 문을 닫았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손을 뻗지도 말리지도 애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관망했을 뿐이었다. 그로써 알 수 있었다. 내가 꺼내지 않았다면 그가 꺼냈을 말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하세요. 키세군, 제발 부탁이니까….

 

 꽤나 아오미넷치와 내가 얘기를 바라는 듯한 쿠로콧치는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을 꺼냈다. 부탁? 쿠로콧치가 나에게? 그게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가. 만나서 이야기해서, 그리고? 달라지는 게 있기라도 하는 건가. 글쎄, 내가 보기엔 없다구요, 쿠로콧치. 오히려 더 힘들어질 뿐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그에게 있어 노이즈, 불필요한 잡음같은 존재. 이제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게 그를 위한 걸 잘 알고 있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나도 그가, 아오미넷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왕이면 좋은 여자를 만나 귀여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


"그런다고 제 선택은 달라지지 않슴다."


-키세군!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왜, 왜 자꾸 고집 부리시는 겁니까. 지금 아오미네군 상태가 어떤 줄 아시나요? 둘 다 바보같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오미넷치가? 아, 그건 조금 의외. 하지만 쿠로콧치, 그건 익숙했던 일상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작은 반향음일 뿐 곧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는데요. 저도 변해버린 상황에 익숙해질테고. 애초에 그와 나 사이에 애정이란 게 존재했던 걸까도 의문이네요. 그야 만나면 1 on 1이나 야한 짓 하기 바빴으니까. 평범한 연인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대화마저도 그러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사실은 말야, 우린 친구의 연장선 상에 서있던 것일지도 몰라요. 사랑이라, 이게 연애라는 거라 착각한 것뿐이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쿠로콧치."

 

-…정말, 둘 다 골칫덩어리군요.

 

"전 이제 자신이 없슴다. 그러니까 이제 끝낼래요."

 

 쿠로콧치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통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원상태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끝이야. 없었던 일처럼, 모르던 사람처럼 그렇게 기억 속에, 가슴 속에 묻어 둘테니까, 당신도 그렇게 해 줄래요, 아오미넷치?

 

"…키세 료타라는 사람을 잊어 주지 않겠슴까, 아오미넷치?"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 하늘에게 작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