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쿠로바스/청황]사진

물빛녘 2014. 7. 24. 02:19

[쿠로바스/아오키세(청황)]사진

written by. 티토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잠에 취해 눈도 뜨지 않은 상태로 침대 옆을 더듬었던 것은. 언제나처럼 네가 옆에 누워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불을 꼬옥 끌어 안은 채 잠들어 있을 줄 알았다. 추운지 겨울만 되면 몸을 떨곤 하던 너를 끌어 안으면 네가 눈을 뜨며 여느때처럼 베시시 웃을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차갑게 식어있는 빈자리에 외면하고 싶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네가 나를 떠났던 사실이. 너는 이제 내 곁에 없었다. 원온원하자고 조르던 너도, 해맑게 웃어주던 너도, 침대 위에서의 너도. 너의 자리를 더듬던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없다. 네가 없다. 몇번을 되새기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곳에 나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키세……."

 

 그러고보니 어제 키세의 이름만 줄곧 외쳤던가. 자신의 목에서 나온 것은 지나치게 쉰 목소리였다. 미련하다. 벌써 며칠이나 지난 일인데도 나는 너만 찾고 있던 건가. 분명 내 두 눈으로 봤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 그리고 켈록거리며 입을 틀어 막던 너. 황급히 너를 병원으로 데려 갔을 때, 너는 그랬었지.

 

"부디 행복하게 살아주세요……인가. 바보 자식."

 

 내가 어떻게……, 어떻게 혼자 행복할 수 있겠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침대보를 꽉 움켜 잡았다가 이내 풀었다. 대신에 혀를 꽉 물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너와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혼자가 아니라, 너와 함께. 그러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키세의 마지막 말만이 되풀이되었다.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라는 의사의 말에 남은 인생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갑자기 일어나서인지 어제 목놓아 울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핑 돌았다.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서 거실로 걸어 나왔다. 참담하다. 이리저리 널린 술병과 바닥에 널부러진 녀석들이 보였다. 키세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부터 한 명씩 돌아가며 내 집에 오더니 어제는 웬일인지 모두 왔었던 게 기억났다. 녀석들도 나처럼 진탕 마셨던 터라 아직까지도 잠들어 있었다. 어째 멀쩡한 녀석이 없냐. '기적의 세대'라고 불리던 이 녀석들은 의외로 술이 약했으니. 그러고보니 술에 제일 약한 건 키세 너였던가. 모델일을 계속하던 너였지만, 몇 모금 마시면 바로 취해 버리는 너에게 모두 일때문에 많이 마실텐데 어쩌냐고 물었었지.

 

"요령."

 

 너가 그랬다. 요령이라고. 그리고 긴장해서 취하고 뭐고 없다고. 집에만 오면 풀어지며 내게 달려와 안기던 너였다. 힘들었다고 보고 싶었다고. 너의 푸념을 들으며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과거를 회상하다보면 너에게 좀 더 잘 해줄걸하는 후회가 들고 만다. 너가 다시 돌아온다면 좋을텐데. 너가 하고 싶었던 것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도 가고,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너와 뒹굴고, 공포영화 DVD를 빌려와 보고 후회하고.

 

"얜 또 왜 이래 자."

 

 안경을 쓴 채 '大'자로 뻗어 있는 미도리마를 발로 죽 민 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어제 술을 마신 뒤 키세의 사진을 보며 난리를 쳤던 터라 테이블 위에는 앨범이 놓여 있었다. 잡지에 나오는 네가 아닌, 내가 아는 네가 있는. 사진을 훑어 보며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해맑게 웃는 네 모습, 부루퉁한 표정의 네 모습 등 네가 사진 속에 남아 있었다. 틈만 나면 네 사진을 찍곤 했었다. 금방이라도 키세, 네가 사라질 것 같아서. 내 앞에서 없어질 것 같아서.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은 어디 안 간다고 했던 너였다. 환한 키세의 사진을 보니 키세가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 며칠 전의 일은 꿈이었다. 장례식도 없었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 의사는 우리에게 큰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응, 그래. 그런 거야. 그렇지, 키세?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나는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공원. 그 곳에서 찍은 사진에는 네가 환하게 웃으며 꽃을 머리에 꽂고 있었다. 그러나 네 옆에는……. 문득 옆을 돌아 봤다. 사진을 보며 같이 희죽희죽 웃었던 너는 없었다. 아아, 사진 속 네 옆에 내가 없듯, 지금 내 옆에도 너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