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켄마히나]푸른 새벽이 그려진 저 너머의 세계
※켄히나
※혼자서 이 밤중에 전력 60분, 캐붕캐붕
[하이큐/켄마히나]푸른 새벽이 그려진 저 너머의 세계
written by. 티토
아, 예쁘다. 히나타는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응시했다. 그림 속에 담긴 푸른 새벽 하늘, 이슬이 맺힌 풀잎, 그리고 여우. 무의식적으로 그림에 손을 뻗었다. 아, 이런 곳이 정말로 존재할까.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그저 푸른 풀내음만 가득찬 그런 곳이 존재하고 있을까. 뻗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넓은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긴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그런 감옥같았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높은 빌딩,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자가용 자동차, 기차, 하늘을 걷는 인간.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은 없어, 절대로.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한 이곳에는 이런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리가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라. 히나타는 몸을 굳혔다. 이곳에는 저 하나뿐이었다. 시종들도 휴가를 가버렸고, 부모님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이 거대한 저택에는 히나타 혼자뿐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자신 외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환청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림을 보았다. 정확히는 그림 속에 그려진 여우를 보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노란 털을 가진 여우는 하늘을 바리보고 있던 고개를 돌려 히나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소름이 쫙 돋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림이 움직일리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요즘 이상한 것들도 많이 나오니까. 움직이는 그림, 뭐 나올 수도 있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애써 그 시선을 외면했다.
"…쇼요, 너무해. 그렇게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제는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는 목소리에 히나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지? 진짜 누구야? 시종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친우도 성으로 부르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 …설마. 히나타는 삐걱거리며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축 처진 귀를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던데.
"아, 다시 봐줬구나."
"으아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자 히나타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그림 속의 여우가 말했어! 물, 물론 요새 이런 것들 많이 나오지만 요 몇년간 아무말도 하지 않던 게 말을 한다고?!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진정하자, 진정해, 히나타 쇼요! 요즘 문명은 빠르게 발전한다고 한다잖아? …근데 문명이 뭐지. 아니, 이게 아니라. 인상을 팍 쓰고 여우를 노려보았다. 여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 작아졌다고 해야하나. 여우는 꼬리로 바닥을 탁 치더니 귀를 쫑긋거렸다. …계속 보고 있으니까 귀여운데?
"혹시 네가 말 건 거야?"
"응."
"무슨 일로?"
히나타의 물음에 여우가 잠시 주저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지?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여우가 말했다.
"쇼요, 여기로 손을 뻗어 볼래?"
"응."
거리낌없이 대답한 히나타는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왜, 라든가 뭘 믿고, 라든가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해야하니까, 라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히나타의 손이 그림에 닿았을 때 여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쇼요."
*
환한 빛이 엄습해왔다. 히나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뒤 눈을 뜨자 히나타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림 속의 풍경이었다. 푸른 새벽 아래 녹빛의 풀밭, 그리고 안이 보이지 않는 숲. 아, 맞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우는, 여우는 어딨지? 여우 녀석, 나를 여기로 불러내서 어쩌자는 거야!
"나는 여깄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내가 본 여우가 아닌 거 같은데. 분명 여우 귀도 있고 꼬리도 있는데. 알맹이는 사람인 거 같고. …어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뭐냐, 코, 코스프레? 여우귀랑 꼬리 단 걸까? 아니,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진짜같고.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우소년은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숲에 멈춘 여우소년은 무언가 생각하는듯 잠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궁금하게. 입을 삐죽이며 그를 응시하자 생각을 끝냈는지, 아니면 히나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여우소년이 히나타를 응시했다.
"너, 뭐야?"
"…나? 여우……인데."
"……나는 왜 부른 거야, 그, 그러니까……."
…이름이 뭐지. 히나타가 눈동자를 굴리면서 끙끙거리자 상대방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켄마. 코즈메 켄마."
"아, 그래, 켄마! 나는 무슨 일로 불렀어?"
"쇼요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
"응, 쇼요밖에 못 하는 일."
*
켄마와 함께 숲 앞에 섰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마치 눅눅하고 끈적한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인상을 찌푸리자 켄마가 숲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어, 우리의, 모두의, 소중한, 것이. 켄마 또한 긴장이 되는 지 말이 뚝뚝 끊기고 있었다. 소중한 것?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는 켄마가 자신을 불러내 도움을 청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기에 불러낸 것일까.
"소중한 게 뭔데?"
"구슬, 조그만 구슬. 그걸 뱀들이 삼켜버렸어. …안타깝지만 우린 뱀을 이길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해."
"뱀?"
뱀, 이라는 게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켄마가 주저하다 물었다. 혹시 뱀을 몰라?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뱀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걸. 예전에 봤던 책에서는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람 팔뚝 길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켄마는 풀잎 사이를 벌려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긴 줄 같았다. 줄처럼 생겼나?
"대충 이렇게 길쭉하게 생겼는데, 사람보다 커."
"으엑. 징그러!"
"쉿, 쇼요. 뱀들은 밖으로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켄마?"
"뱀들은 우리 냄새를 잘 알아, 하지만 인간 냄새는 몰라. 구슬을 가져오는 걸 도와줬음 좋겠어."
히나타가 잠시 주저하자 켄마는 덧붙였다.
"걱정마, 계획은 있으니까. 쇼요한테 다 맡길 생각은 아니니까 부담가지지 않아도 괜찮아."
저기에 내 친구들도 잡혀 있어. 켄마가 분한듯 낮은 어조로 말했다. 친구, 인가. 나한테 카게야마 자식이 소중한 친구인 것처럼 켄마한테도 그런 친구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맡겨줘, 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