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쿠로야쿠]마피아AU
※유히님 연성표 달성 보상
※캐붕
[하이큐/쿠로야쿠]마피아AU
written by. 티토
야쿠 모리스케는 꽤나 성실한 사내다. 명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이행하는 충실한 부하이기도 하다. 이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고르지면 그건 역시 야쿠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전에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던가. 스스로 뒷세계에 발을 디딘만큼 큰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흔한 일이었다. 사정이 있어 아늑한 곳을 버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돈이 없어서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던가,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던가, 꽤나 별의별 이유가 있었다. 야쿠는 어느 쪽이려나. 뭐, 눈에 가득찬 결의를 보면 복수를 위해서라는 게 분명해 보였지만. 쿠로오는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불을 구둣발로 비벼 껐다. 아무래도 좋다. 무슨 이유가 있어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동료였다.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 이 세계에서는 그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솔직히 안 궁금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몇 년을 동고동락해왔지만, 사적인 얘기는 별로 나누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는 게 정확하려나.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할 지도 모르겠고. 정말 어렵다니까.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바에서 구석진 곳에 앉은 쿠로오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1시가 되기 5분 전이었다. 곧 들어올텐데.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 탁 두드렸다.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바텐더 복장을 한 야마모토가 다가왔다. 쿠로오 앞에 물잔을 내려놓은 야마모토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인가요?"
"어. 작전대로 이행하도록 해. 흥분하지 말고."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았다. 이어폰을 귀에 끼운 뒤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11시였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조그만 불평이 들려왔다.
─귀찮아…….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어디쯤?"
─배달 완료 10초 전.
야마모토처럼 바텐더 복장을 한 이누오카와 눈이 마주쳤다. 눈짓을 준 뒤 가게문을 응시했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배가 나온 중년의 사내, 한 명은 화려한 화장을 한 긴 생머리의 여성이었다. 검은 원피스에 보라색으로 약간의 포인트를 준 여자는 쿠로오와 눈이 마주치자 오른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아. 쿠로오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의자를 하나 두고 옆에 남자가 앉았다. 그 옆에 앉은 여자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남자가 메뉴판을 건네 받는 것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저, 술 못 마시니까, 도수 낮은 걸로 부탁할게요."
아, 위험. 고운 미성이긴 하나 왠지 모를 어색한 목소리에 쿠로오는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여자가 남자 자신을 몰래 째려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폰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켄마에게서 지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인가. 힐끔 옆을 보니 여자의 다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자는 스믈스믈 올라오는 남자의 손을 능숙하게 치우며 리에프에게서 술잔을 받아들었다. 아, 리에프 저 자식. 표정 관리 좀 하라니까. 여자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는 리에프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러닥 한소리 듣지. 여자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 눈빛에 리에프는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리에프……, 나중에 야쿠상에게 한소리 듣겠네.
그러게 말이야. 켄마의 중얼거림에 속으로 공감하며 쿠로오는 힐끗 여자를 바라보았다. 웃으며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여자가 쿠로오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벙긋거렸다. ……뭐라는 거지? 뭘, 봐? 이내 여자는 중년 남자의 귀에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둘이서 뭔가 속닥거리는가 싶더니 바텐더에게 말을 건네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지켜보던 리에프가 서류봉투를 꺼내왔다. 서류봉투를 받아 들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소형권총이 안에 들어있었다. 리에프가 조용히 귀뜸했다.
"켄마상이 그거 장전되어 있대요. 안전장치는 걸려있지만요. 소음기도 장착해놓으셨대요."
─리에프한테서 건네 받았지?
"응."
주위를 쓱 둘러본 다음 총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서류봉투는 고이 접어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렁슬렁 걸어나갔다. 골목으로 들어갔을 것 같긴 한데, 어디쯤이려나.
─나와서 오른쪽으로 3발자국쯤. 거기서 오른쪽 골목.
오른쪽으로 3발자국. 힐끔 골목 안을 확인하니 아까 두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저깄다. 꽤나 끈적끈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입술을 맞부딪히는 장면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 벽에 기댔다. 만약 둘이 골목길에서 큰길목으로 나왔을 경우 마주칠 수 있지만 저곳에 있다면 보이지 않을 자리였다. 아, 담배 피고 싶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질척질척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조용한 길이건만. 아아, 마음에 안 들어.
─담배 필 생각하지 마, 쿠로.
네네, 안 핍니다. 그나저나 언제 끝나는 거야.
─쿠로가 들어가는 시점은 약속한대로야. 리에프랑 다른 애들한테 뒷정리 맡기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딱히 지시할 건 없으니까 통신 끌게.
정말 알고 있다니까, 켄마.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 폰에서 분리시킨 후 고개를 살짝 내밀어 둘의 상황을 확인했다. 아, 아직도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저 남자 파묻어버리고 싶다. 손에 들린 이어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다시 한 번 둘을 바라보았다. 아.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벽으로 밀어부치고 오른팔로 남자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어둠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남자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번져 있었다. 쿠로오는 터벅터벅 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기껏 등 쳐놓고 무섭긴 한가 봐?"
여자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튀어나왔다. 남자를 보며 살벌하게 웃은 여자는 곧이어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늦어, 쿠로오."
"야박하네, 야쿠. 딱 맞춰 들어온 건데."
"…됐고, 이거나 좀 어떻게 해 봐."
왼손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야쿠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황했는지 새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품 안에 넣어뒀던 총을 꺼내 남자의 머리에 가져가 대었다. 그걸 본 야쿠는 팔을 내리고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어디까지 불었어?"
"뭐, 뭐를……?"
"쿠로오, 쟤 상황 판단이 안 되나 본데."
"다짜고짜 불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야쿠상."
그런가. 야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뒷목을 긁적였다. 쿠로오는 물끄러미 야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입술 번지르르하다. 좀 전의 키스로 타액이 묻어서인지 입술이 번지르르 했다.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나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툭 툭 쳤다. 겁에 질린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서있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이상하기도 하겠지. 좀 전까지 부대끼던 여자가 확 돌변하고 웬 남성은 총을 들이밀고. 그렇지만 설명하긴 귀찮은데. 야쿠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 역시 거슬린다. 야쿠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떡할까 고민하던 야쿠는 갑작스런 힘에 놀랐는지 쉽게 끌려왔다. 남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입술을 쪽쪽 빨고나서 혀로 야쿠의 고른 치아를 훑었다. 혀를 감싸려고 했을 때 야쿠가 팔을 때렸다. 결국 입술을 떼고 살짝 뒤로 물러섰다.
"발정났냐?"
남들에게 차마 들킬까 큰소리를 지를 수 없던 야쿠는 얼굴을 붉히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 놈이랑 한 거 신경쓰였단 말야."
"얜 일때문이고. 일때문에 한 거에 질투 좀 하지 마. 내가 뭐때문에 다리 허한 원피스 입고 이 난린데. 일이나 빨리 끝내고 가자고, 좀."
"네, 네. 간단한 상황 설명 들어갑니다. 아아, 그리고 지금 저희는 조직에서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되나?"
"조, 조직? 나, 난 말 안 했어! 누, 누설한 적도 없어!"
야쿠가 품 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펄럭거렸다. 그걸 본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퍽이나. 딴 놈이랑 만나서 뭔가 주고받는 걸 찍은 놈이 있는데도?"
"그, 그건……."
"말해봐요, 대답 여하에 따라서 처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야쿠가 말했다. 야쿠의 눈짓에 총을 내린. 쿠로오는 총을 든 반대손을 들며 생긋 웃어 보였다. 해칠 의사 없어요, 라는 것을 알리며 뒤로 살짝 물러서자 야쿠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정보를 넘긴 건가요?"
"그, 그냥 습격 정보 살짝 흘렸을 뿐이야. 많이 흘리지도 않았고, 다 사실을 말한 것도 아니고. 그 왜 뭐냐, 습격인원 줄여 말했어."
"에에, 거의 다 말했네. 뭐, 그래도 곧 흘러갈 내용이었던 거 같고. 내부에 당신 말고도 스파이가 있는 거 확인했고. ……어쩐다? 살려줄까? 이 정도야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야쿠, 물러서."
야쿠가 킥킥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정말 저럴 때 보면 소악마같다니까. 쿠로오는 총을 들었다. 야쿠의 말에 화색이 돌던 남자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오른 듯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전장치를 풀었다.
"애석하지만 말야."
탁. 소음기덕인지 조금은 작은 발사음이 났다. 가게 안은 방음이니까 괜찮겠지. 벽에 기대있던 남자는 스르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걸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서."
남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야쿠는 고개를 돌려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가자. 애들한테 연락해. 나 빨리 옷 갈아입고 싶어."
"……야쿠, 키스해도 돼?"
"……이게 진짜 돌았나. 시체 앞에서 하고 싶냐?!"
"아아, 아까 진짜 충격이 컸다고. 허벅지도 가볍게 내주질 않나, 키스도 진하게 하질 않나."
아, 야쿠 얼굴 빨개졌다.
"…넌 말야, 내가 욕구 해소하는 도구로 보이냐."
화난 거였나.
"그럴리가. 난, 야쿠상, 무지- 좋아하는데."
"맨날 이런 얘기만 하잖아."
뾰로퉁한 표정의 야쿠는 발이 아픈지 자꾸 하이힐을 힐끔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총을 품안에 넣었다. 야쿠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하기야 평소에 둘이 있으면 키스를 한다거나 일 얘기로 바빴으니까. 그렇지만 무슨 얘기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곳에 온 사람이면 다 자기 사정을 숨기곤 하니까 쉽사리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사적인 얘긴, 어려워. 여기에서 사는 놈들은 다 자기 사정 숨기려고만 하는 편이고."
"난 별로 그런 얘기 해도 상관없는데?"
"엣, 그럼 해도 되는 겁니까?"
"응, 상관없다니까. …그나저나 자리 좀 옮기지? 얘 언제까지 방치할거야?"
아, 그러네. 문득 남자의 시신에 눈길이 미쳤다. 전화해야지. 폰을 꺼내 야마모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 이라는 말을 하자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통화를 끝내고 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나 좀 업어줘, 쿠로오."
야쿠는 발을 가리켰다. 익숙치도 않은 하이힐을 신고 다녔으니 아픈 게 당연하겠지. 야쿠를 등에 업었다.
"아, 신발 어쩌지. 그냥 놔두고 가면 애들이 치우겠지."
…어이, 그렇다고 현장에 신발을 두고 가는 건……. 야쿠는 발을 흔들어 신발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 모르겠다. 그냥 가자. 켄마와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따가 이것저것 많이 얘기하자."
"괜찮다면 이것저것 물어봐도 되려나?"
"응,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럼 여장플해도 됩니까?"
"……야, 그냥 너 죽어."
쿠로오의 볼을 야쿠가 잡아당겼다. 이내 쿠로오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웅얼거림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어?"
"……이야기하고 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시덥잖은 것부터 다."
실없는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 그러자. 몰랐던 것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