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쿠로바스/청황]기다리다

물빛녘 2015. 3. 1. 00:37

※아오미네 시점의 다가가다.(http://teato263.tistory.com/40) 와 스토리가 연결됩니다만 안 보셔도 괜찮습니다.

※아오키세

 


[쿠로바스/청황]기다리다

written by. 티토


 

있잖아, 아오미넷치, 혹시 기억하고 있슴까?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저는 가끔 그 때를 떠올리곤 함다. 만약 제가 아오미넷치의 공을 맞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을까요? 만약 당신을 만나지 못 했더라면, 나는 과연 이 자리에 있었을까-하고 생각이 듬다. 아오미넷치를 모르는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네요. 말하자면 농구를 못 하는 아오미넷치같은 느낌? 적절한 비유지 않나요?

 

아오미넷치, 사실 전 겁쟁이임다. 뜬끔없지만 그래요. 저는 당신을 향한 제 감정을 동경이라 단정해 버렸슴다. 그 이상은 무서웠거든요. 알잖아요. 저는 남자고, 당신 또한 거유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니까. 당신의 경멸이 무서워 다가갈 수 없었슴다. 커져가는 감정을 애써 무시한 채 카이죠에 진학했죠. 가까이 있으면 버티기 어려우니까요. 아아, 당신이 옆에 있다면……, 참을 수 없을테니까. 언젠가는 말해 버릴 지도 모르니까. 동경, 당신을 향한 제 감정은 거기서 그쳐야 했슴다. 더 이상 커지면 안 돼. 당신에게 '좋아해.'라는 말도 하면 안 돼. 아슬아슬하게 참아오던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은 인터하이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였어요. 그 때 저는 당신을 이겨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을 카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피할 수 없었죠. 이유는 알고 있었슴다. 제가……, 제가 당신을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동경을 그만두기로 했슴다. 근데 말이죠, 아오미넷치. 저는 당신을 동경하는 것을 그만두면 안 되었어요. 알아차리면 안 되었다구요.

 

아오미넷치, 난 당신을 동경하는 게 아니야.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 우습죠? 죽을 때까지 모른 채 살아야 하는 것을, 벌써 알게 되다니. 앞으로 전 어떻게 살아가나 싶네요. 은둔이라도 해야 하나. 아오미넷치, 어느 순간 제가 사라지거든, 은둔해 버렸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찾지 말아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아오미넷치, 전 당신이 좋슴다. 사랑함다, 당신의 모든 것을.

 

있죠, 아오미넷치. 운명을 믿슴까? 전 안 믿슴다. 하지만 운명이란 게 정해져 있다면 당신이 제 운명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슴다.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저는 언제나 당신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슴다. 당신만 제 곁에 있어준다면……, 아아, 행복한 상상이네요. 비록 꿈일 뿐이지만, 행복함다. ……아오미넷치, 사실 당신이 제 첫사랑임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이었던 적은 없으니까.

 

아오미넷치, 저는 사실 조금은 자만했던 것일지도 모름다. 당신에게 저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꿈꾸고 있었을 지도 모름다. 하지만 알고 있슴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고. 저는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당신은 쿠로콧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아아, 제게 소중한 둘이라면 축복해줄 수 있었는데. 근데 아오미넷치, 이건 아냐. 어째서 카가밋치임까? 당신을 먼저 좋아한 건 전데, 왜 저는 봐주지 않는 건가요? ……카가밋치가 좋은 사람인 건 알고 있슴다. 하지만, 하지만 아오미넷치, 정말로 카가밋치를 좋아하고 있어? 당신은 대체 뭐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거야? 나는 줄곧 당신을 봐왔기에 알 수 있어. 아오미넷치의 눈은 카가밋치를 향하고 있지 않아. 당신은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쿠로콧치의 손에 이끌려 근처 공원에 왔을 때,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슴다. 아오미넷치, 알겠슴다. 당신을 포기할게요, 잊을게요. 당신의 경멸이 무서워 다가서지도 못 했으면서 이런 말하는 건 우습네요. 제멋대로 짝사랑을 시작하고, 접었슴다. 이런 사실 나중에 크면 웃으면서 꺼낼 수 있겠죠. 당신을 사랑했었다고. 하지만 이것만은 못 말할 것 같슴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고. 미래의 일이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슴다. 이 감정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진 않다구요. 그건 쿠로콧치도 마찬가지겠죠.

 

아오미넷치, 당신 정말 못 됐슴다. 쿠로콧치가 누굴 좋아하고 있는 지 알고 있어? 카가밋치가 누굴 좋아하고 있는 지 알고 있어? 당신도 알고 있잖슴까. 카가밋치의 마음은 당신을 향한 게 아니라고. 당신도 카가밋치를 향하고 있지 않으면서.

 

우우, 비참하네요. 나름 인기 모델인데, 꼴이 말이 아님다. 아오미넷치, 저 쿠로콧치랑 사귀게 되었잖슴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드릴까요? 공원에서 제가 매달렸슴다, 쿠로콧치한테. 울면서 매달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추하네요. 쿠로콧치한테 살려달라고 말했슴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쿠로콧치가 그러더라구요. 키세 군, 저도 살고 싶어요-. 그 때 쿠로콧치 표정 잊을 수가 없슴다. 비장한 표정이었슴다. 조만간 아오미넷치, 쿠로콧치한테 맞겠슴다. 아, 왠지 고소해라. 이 정도는 이해해줘요. 앞으로는 아오미넷치랑 카가밋치, 축복해줄테니까. 아차차, 그 후 쿠로콧치랑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었슴다. 그리고 쿠로콧치한테 고백받았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던데.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슴다. 황당한 전개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임다.

 

사람은 참 이기적임다. 그렇죠, 아오미넷치? 저와 쿠로콧치가 사귄다고 둘에게 얘기를 한 후, 4명이서 만났던 날 기억남까? 카가밋치가 당신의 옆에 서 있던 날. 당신의 옆. 아아, 욕심이 났슴다. 하지만 알고 있슴다. 저는 겁쟁이라서 아무것도 못 한다구요. 다가서지 못 해. 무서워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당신은 오지 않아. 그러니까 저는 먼발치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겠슴다.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쿠로콧치가 돌아가자고 했었죠. 뒤돌아서 가는데, 당신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했슴다. 그렇지만 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슴다. 아니 돌리지 못 했슴다. 무너질 것 같아 무서웠거든요.

 

아오미넷치, 저는 말임다. 당신이 좋아. 그냥- 말하고 싶었슴다. 당신 앞에서 이 말을 할 수 있을 날이 오기나 할련지. 하더라도 당신이 웃음으로 넘기지 않을까, 거절하지 않을까. 무서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아오미넷치, 말해 주세요. 난……, 난 이제 어떡하면 돼?

 

 "키세 군."

 

"네, 쿠로콧치."

 

마지바에 앉아서 감자튀김만 깨작깨작 먹고 있던 중, 쿠로콧치가 말을 걸어왔슴다. 힘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한숨을 내쉬네요. 우우, 쿠로콧치, 골칫덩어리를 보는 눈빛하고 있슴다.

 

"이 근처에 농구 코트 있죠? 거기 가 있으세요. 기다리면 누가 올겁니다. 그 때는 놓치지 마세요."

 

"네?"

 

"잘 들으세요, 키세 군. 저는 카가미 군이 좋습니다. 그건 키세 군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갈겁니다. 키세 군도 더 이상 바보같은 짓 하지 마세요."

 

"당최 의미를 모르겠는데요, 쿠로콧치."

 

쿠로콧치가 바닐라 쉐이크를 챙겨서 일어났슴다. 아오미넷치,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슴까? 아아, 그렇구나. 아오미넷치, 저는 지금 쿠로콧치가 말한 농구 코트로 걸어가고 있슴다. 문득 하늘을 보니 파랗네요. 꼭 당신같아. 바다. 카이죠 진학을 결심한 것도 당신의 색이 있었기 때문이었슴다.

 

아오미넷치, 계속 말하는 거지만 저는 겁쟁이임다. 그래서 당신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 해. 그렇지만 저, 기다리는 건 잘 함다. 저는 그 날부터 여기에서 줄곧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슴다. 당신이 오기만을. 그리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슴다, 아오미넷치, 알고 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까 계속 여기 있을게.

 

"키세!"

 

어서와요, 아오미넷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