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하루마코]성장
[Free!/하루마코]성장
written by. 티토
너는 겁이 많았다. 언제나 내 뒤에 숨어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귀신 얘기에 쉽게 겁에 질려 내 옷자락을 잡았던 너였다. 두려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붙잡던 너였다. 분명 그랬던 너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너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내 뒤에 숨어 앞을 바라보던 너는 이제 없었다. 옷자락을 잡았던 손은 어느 사이엔가 나보다 커져 있었다. 너는 그렇게 마음도, 몸도 자라 있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욕조에 앉았다. 물에 몸을 담그며 네 모습을 떠올렸다. 선이 곱기만 했던 어릴 때와는 다르게 확연히 남자라는 것을 알리는 듯한 잘 잡힌 몸, 순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축 처진 눈꼬리, 입에 연신 달고 다니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나 고등학생이 된 지금이나 너는 꽤나 인기가 많았다. 천성이 다정함으로 들어찬 너는 동생들이 생김에 든든한 오빠같은 이미지까지 생겼는지 그것에 반해 너에게 고백했던 여자애들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넌ㅡ.
"좋은 아침, 하루."
얼굴을 반쯤 물 속에 담그고 있을 때 너가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생글거리는 미소를 얼굴에 띄운 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욕조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네 손을 잡을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뭔가에 홀릴 거 같아 손을 내렸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서 욕조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물끄러미 그 미소를 보다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네 미소는 심장에 안 좋아.
"정말, 오늘도 고등어야?!"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내게 물은 뒤 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담담하게 대꾸하며 접시 위에 잘 구워진 고등어를 올려놓았다. 어쩔래, 라는 눈빛으로 너를 쳐다보니 너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베시시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결국은 앉을 거면서. 젓가락을 들고 잘 먹겠습니다, 라며 말하는 네 모습을 흘깃 보다 이내 나도 자리에 앉았다.
"하루, 준비 덜 됐어?"
식사를 마치고 싱크대에 사용한 식기들을 넣은 다음 옷걸이에 걸어뒀던 교복을 손에 들자 네가 마당에서 외쳤다. 먼저 가도 되겠건만 너는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렸다. 어릴 때부터 쭉, 너는 그래왔었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안도했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끼운 후 넥타이를 맸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서자 싱긋 웃으며 서 있는 네가 보였다. 현관문을 닫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너와 함께 등교길에 올랐다.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공책에 낙서를 끄적였다. 샤프펜슬로 선을 몇번 휙휙 그었더니 네 얼굴이 그려졌다.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진 네 웃는 모습. 흘깃 옆으로 시선을 건네니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네 모습이 보였다. 공책에 그려진 낙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내가 알던 네 모습은 어땠더라. 괜히 심통이 나 마구잡이로 낙서 위에 선을 그었다. 너를 그린 낙서는 검은 선들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 하루, 준비운동 해야지, 라며 한숨을 내쉬는 네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한 귀로 흘렸다. 아아, 역시 물은 좋다. 물 속에 잠겨 있으면 요람 속에 들어온 양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물의 감촉을 느끼면 된다.
한바탕 물 속을 헤집어 놓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니 네가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도 물이 좋아? 네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물의 감촉이 좋아. 그렇게 대답하자 예상했다는 듯 네 눈이 부드럽게 접혔다. 역시나 어릴 때보다 어른스러워진 미소였다. 그 때처럼 활짝 웃는 네 모습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걸까.
고우가 연습 메뉴가 적힌 종이더미를 들고 오더니 너에게 내밀었다. 둘이서 뭔가를 얘기하는가 싶더니 모두를 불러 모았다. 나기사도, 레이도 준비운동을 하다말고 너에게 다가갔다. 나는 약간 떨어져서 그 모습을 응시했다. 하하, 웃으며 말하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와 나는, 우리는 어릴 때와는 같을 수 없는 걸까. 내 뒤에 숨어 내 옷자락을 붙잡던 너는 이제 없는 걸까. 그런 거야, 마코토? 왠지 그 사실이 슬퍼져 고개를 숙였다.
"하루?"
조심스레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일 있어? 괜찮아?"
부드러운 음성에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봤다. 척 봐도 걱정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네 모습이 보였다. 아, 예전에도 이랬었는데.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던 내게 너는 이렇게 물었었는데. 친구라면 보일만한 당연한 행동에서 예전의 너를 끄집어내려는 내 모습에 조소가 절로 나온다.
"마코토, 너도 나도, 어릴 때와는 다르구나."
뜬끔없는 말에 놀란 듯 네 눈이 커졌다. 그러나 이내 너는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사람은 성장을 하니까 말야. 그렇지만 내가 하루랑 친구라는 건 변하지 않는걸."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건 변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