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적황]시험공부
※아카키세
[쿠로바스/적황]시험공부
written by. 티토
사각 사각, 샤프 소리만 들려온다. 눈 앞의 문제에 집중하려했지만 검은 건 글이요 흰 건 종이일 뿐, 문장으로 도저히 다가오지 않았다. 우우, 집중 안 돼. 시무룩한 표정으로 문제집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들자마자 붉은 눈동자와 아이컨택. 흠칫 몸을 떨자 '추워?'라는 물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나를 향했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학문제가 저렇게 쉽게 풀리는 거였던가. …아니, 전혀. 너는 공부에 가망이 없다며 지금부터 살 길을 찾자고 모델 일을 권유했던 것이 바로 큰누나였다. 가족 회의에서 연설하다시피 말한 큰누나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ㅡ. 아, 암울해졌다.
"키세?"
걱정스런 목소리로 눈 앞의 남자가 물었다. 칭얼거리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죄송함다, 아카싯치! 이번 시험은 무리임다! 낙제 확정……. 히터도 제대로 안 틀어주는 교실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은 확정. 울고 싶다, 진짜……. 방전상태에 돌입한 내가 웃겼는지 풋, 하고 내 머리 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우우, 너무 함다. 저는 나름대로 심각한데."
"하하, 미안. 뭔가 모르는 문제라도 있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좀 전까지 관찰하고 있던 문제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카싯치가 문제집을 받아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자 손을 뻗어 이번 시험범위의 맨 앞부터 문제집 제일 뒷장까지 팔랑팔랑 넘긴 뒤 당당하게 외쳤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아 모르겠슴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데."
아카싯치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중얼거렸다. 저번 시험에 낙제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기적이었슴다, 라고 하면 아카싯치는 무너지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에 애꿎은 지우개만 잡아 뜯었다.
내가 아카싯치의 초호화 저택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까닭은 시험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나와 같이 아슬아슬한 성적의 소유자인 아오미넷치는 미도리맛치와 모못치가 달려들어 교육 중이라고 한다. 나는 입학 이래 수석을 놓치지 않는 아카싯치가 맡게 되었다. …죄송함다, 아카싯치. 힘내세요, 미도리맛치, 모못치. 농구부 주전인 나와 아오미넷치가 전교 뒤에서 노는 성적의 소유자여서 피해를 받고 있는 세 사람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정말 곤란한걸, 이 상태로 가다간."
여유로움을 되찾았는지 싱긋 웃으며 말한 아카싯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투명단권파일을 몇장 꺼내 들고 와 그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게 뭐지?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 시선을 내려 글을 확인하니 요점정리였다. 그것도 보기 쉽게 정리된. 입이 쩍 벌어졌다. 종이를 한 장 꺼내 글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아카싯치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대단함다, 아카싯치! 지, 지리가 이렇게 쉬울 줄은!"
"너무 띄워줘도 곤란한데. 자자, 귀로 듣는 게 더 효과적일테니까 설명해줄게."
종이를 여러장 들고 온 아카싯치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카싯치, 정말 좋아!
*
"오늘은 이정도로 할까."
수많은 종이들을 정리하며 아카싯치가 오늘의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우아아, 힘들다. 테이블에 엎어졌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노트에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최고의 수업이었다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움직이지 않고 집중한다는 것은 더더욱. 팔을 주욱 내밀며 몸을 풀었다. 불평 안 하고 잘들어줬는걸, 이라는 말에 히죽 웃었다. 아카싯치의 드문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정말 저 잘했슴까?"
"응. 지루할텐데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잖아. …그나저나 아오미네 쪽이 걱정인걸. 미도리마와 모모이를 붙여놓긴 했지만……. 미도리마와 아오미네는 상성이 안 맞으니까."
"아카싯치 설명 재밌었슴다! …에에, 그렇네여. 근데 그렇다고 무라사키바랏치에게는 조금……. 아, 쿠로콧치는요?"
"쿠로코는 아오미네와는 농구 이외에 안 맞는 편이니까. 더군다나 부족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먼저 거절 의사를 밝혔거든."
흐음, 그렇슴까.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하기야 아오미넷치나 쿠로콧치, 둘의 말에 따르면 농구 이외에는 전혀 맞는 구석이 없다고 했으니까. 아카싯치가 정리한 파일들을 내게 내밀었다. 어라, 이거 뭠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보자 싱긋 웃으며 들고 가라는 말이 들려왔다.
"에, 힘들게 정리한 건데 저 주셔도 되는 검까?"
"아아, 이거 키세 주려고 따로 정리한 거니까. 내 껀 여기."
다른 파일 뭉치를 가리키며 살짝 웃은 아카싯치가 입을 다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그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아 멀뚱히 지켜보고 있자 이내 아카싯치가 고개를 들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뭐야?
"열심히 했으니까 상을 줘야겠지?"
"상……임까?"
얼떨떨한 기분이 들어 뜸을 들이며 반문하자 아카싯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나를 향해 뻗었다. 응? 뺨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뭔가 말랑한게 뺨에 와닿았다. 응, 뭐야? ……어라?
"아, 아카싯치?!"
"수고했어, 키세. 내일도 열심히 하면 해줄게."
아카싯치의 미소에 나는 또다시 테이블에 엎어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우, 반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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