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오이카게이와]스토커
※오이카게, 이와카게
[하이큐/오이카게이와]스토커
written by. 티토
최근 들어 누군가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일까 싶어 히나타나 츠키시마를 비롯한 모두에게 물어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같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내가 요새 잘못한 게 있었던가. 아니면 과거의 원한? 어찌되었든 기분은 나쁘다.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느낌은 썩 좋지 않다.
시선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개 하굣길에서 모두와 헤어지고 난 뒤. 뒤에서 들려오는 저벅 소리에 발을 바삐 움직이면 발소리의 주인공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리에 멈춰서면 그 또한 멈춘다. 명백히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거다. 기분 나빠. 신경 쓰여. 나한테 원한 있는 사람? 딱히 짚이는 사람은 없는데. 아무래도 워낙 미움을 많이 사는 편이라. …어쨌든 대체 왜 나를 스토킹하는 걸까. 발걸음 소리는 남자 발소리같은데. …역시 원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아, 역시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모른 척 걸어가다 커브길에서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없어졌나? 힐끔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떨어진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를 보고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오이카와 상이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뭐야, 토비오쨩?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얼굴이 사색인걸? 저번에도 그렇고, 저저번에도 그렇고. 무슨 일인데?"
흘깃 시선을 뒤로 보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없다. 이상한 일이다.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스토커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마치 그곳에 없었다는듯이, 네 착각에 불과한 존재였다는듯이. 꺼림칙한 기분에 몸을 떠니 의아한 표정으로 오이카와 상이 바라보셨다.
"그냥, 뭐……."
어물적 넘기려는 내 반응에 볼을 긁적이시던 오이카와 상이 근처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곤란하다면 저기서 얘기할래?"
*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딱히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중학교 선배와 내가 왜 여자들만 올 법한 카페에 앉아 있는 걸까. 귀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제발.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보통 넘어가시던 오이카와 상이 이 정도로 해주시는 걸 보면 내 얼굴이 진짜 하얗게 질려 있었던 걸까. 나름 괴한이 나타나면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서워 했다기 보단 그냥 짜증났을 뿐인데 얼굴이 사색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짜증나면 얼굴이 하얘지나? 혼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니 오이카와 상이 레몬에이드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뭔데? 나, 나름 중학교 선배잖아?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몇 번이고 그러니까 궁금증이 유발되서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자자, 토비오쨩, 무슨 일이야?"
말…해도 되나? 그렇지만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스토커가 사라지는데는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나름 해결책을 주실 거 같기도 하고. 괜
…찮겠지?
"사실은 요즘 누가 따라다니는 거 같아서……."
"에, 누가, 토비오쨩을?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근데 그 스토커가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사라지던데요."
오이카와 상이 놀란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놀라실 만도 하지. 저도 좀 놀랐습니다만. 흠, 그런가, 라며 중얼거리던 오이카와 상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문득 불안해졌다. 이와이즈미 상의 말에 의하면 이럴 때의 오이카와 상은 뭔가 꾸미고 있다고. 꿍꿍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던데. 찜찜한 표정을 지으니 앞에서 웃고 있던 오이카와 상이 짐짓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칭얼거렸다.
"그 표정, 너무해! 난 단지 귀여운 후배를 위해 같이 등하교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같이 등하…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오이카와 상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셨다.
"일단 이름모를 스토커가 토비오쨩을 따라다니잖아? 그리고 그 스토커는 나를 보면 도망가고. 그럼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그 스토커가 나를 알고 있어서 들킬 위험을 덜기 위해 도망갔다고. 그렇다면 나랑 같이 다니면 스토커가 안 따라붙을 거라는 거잖아?"
"…하지만 그건 오이카와 상께 민폐가 되는 거 같은데요."
"에이, 괜찮아, 괜찮아. 귀여운 토비오쨩을 지켜주는 선배라니 멋지잖아!"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해맑게 웃은 오이카와 상은 남은 레몬에이드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그래서 토비오쨩 생각은?"
*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진짜로 안 따라 오는 거 같아. …물론 오이카와 상이랑 같이 있을 때 한정이지만. 그래도 누구가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하나. 이제 오이카와 상과 같이 등하교를 시작한 지 한 달 즈음 되어가는 거 같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같이 가주시는 수고로움에 뭔가 보답을 드려야 하나 했지만 거절당했다. …본인이 싫다고 하시는데 자꾸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지만 신경쓰이는데. 어떡하면 부담스러움을 덜어드림과 동시에 감사함을 표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봐도 잘 모르겠다. 음, 스가 상께 여쭤보면 되지 않을까.
폰이 울렸다. 짧게 울렸으니 메일이었다. 가방 속을 뒤져 폰을 꺼냈다. 어라. 폴더를 열자마자 보이는 메일주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와이즈미 상? 어라? 평소에 연락이 올 리가 만무한 중학교 선배였다. 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할 말이 있다, 였다. 할 말? …아, 오이카와 상과 관련된 얘기일까. 어쩌지. 잠시 고민하다 확인 메일을 보냈다. 오이카와 상께는 오늘 같이 하교를 못 할 거 같다는 메일을 보낸 뒤 금방 날라온 이와이즈미 상의 메일에 기재된 장소로 발을 옮겼다.
…신경쓰인다. 정말로 신경 쓰여. 한동안 뜸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 살며시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 길이 보일 뿐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잠시 안을 둘러보니 초조한 얼굴로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와이즈미 상."
"아, 왔냐."
이와이즈미 상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뭐 좋아할 지 몰라서 아이스티로 했는데, 괜찮아?"
"아, 네, 감사합니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좋을까. 주저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 이와이즈미 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카게야마, 너…, 요즘 오이카와랑 같이 다니지?"
"아, 네."
…오이카와 상이 말한 걸까. 아니면 어떻게 아신 걸까. 아무리 가벼운 이미지의 오이카와 상이라도 이런 건 쉽게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순간 스토커가 자신을 알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오이카와 상의 가설이 생각났다. …설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지나친 기우에불과하다. 이와이즈미 상이 어째서 나를?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친한 친구니까 고민상담으로 이와이즈미 상께 말했을 수도 있고. 너무 예민해지지 말자.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잖아.
"……내 기우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조심스레 이와이즈미 상이 운을 띄웠다.
"그 녀석, 내 소꿉친구지만 조금… 뭐랄까, 하나에 관심을 들이면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야. …조심하는 게 좋아. …뭐, 믿는 건 자유지만."
그 말을 끝으로 이와이즈미 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덩달아 반쯤 몸을 일으키자 이와이즈미 상이 손을 내저으며 계산은 했으니까 조금 있다가 나와, 라는 말을 하시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자리에 앉아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의문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이카와 상을 조심하라고? 그렇지만 좋은 분이신데. 스토커가 따라 붙는다고 하니까 같이 등하교도 해주시고. 앉아서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눈 앞에서 뭔가 쑥 나타나더니 앞자리에 앉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오이카와 상이였다. 해맑게 얏호, 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브이를 그린 오이카와 상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이와쨩이었지? 어휴, 혹시나 싶어서 토비오쨩 뒤를 밟았는데 말야. …소꿉친구라도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사실 중학교 때 이와쨩이 토비오쨩을 좋아했거든. 응,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오이카와 상이 말 끝을 흐렸다. 아, 모든 것은 바로 믿으면 안 되는 건가. 설마했던 가설이 들어맞을 줄은. 여태까지 도움을 주셨던 오이카와 상이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으니 스토커는 이와이즈미 상이라는 거다. …뭔가 켕기는 기분인데. 오이카와 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자자, 일단 확실하진 않으니까.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
오이카와 상과는 중간에서 헤어졌다. 터벅 터벅 나 이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방끈을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뭔가 오늘따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뭐가 문제야? 범인은 알아냈어. 그러면 이름을 부르면 놀라서 달아날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발걸음을 빠르게 하자 뒤의 스토커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제가 뭘 잘못했어요? …좋아한다고 이럴 분은 아니잖아요. 이와이즈미 상이라면 뭔가 더 다정하게 해주실……. …어라?
분명 이와이즈미 상은 나에게 오이카와 상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리를 뜨셨다. 스토커가 원래 지켜 보기만 하던가? 좋아한다면 좀 더 가까이서 보는 걸 원하지 않던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불안에 떠는 게 보고 싶어서? 아니,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실 분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지?
지금 나를 따라오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뒤에서 무언가 엄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뒷통수에 강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범인을 확인하기 위해 애썼지만 통증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군가 내 몸을 일으켰다. 누구야. 힘겹게 눈을 떠 얼굴을 확인했다. 아.
"미안, 미안, 아팠지? 그렇지만 조금 걱정이 되서 말야. 괜찮아, 나랑 같이 가면 안 아플 거야. 계속 나만 봐주면 되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분명 스토커가 자신과 아는 사람일 거라며 이와이즈미 상을 조심하라며 했던 건 당신이었잖아. 어째서 이러는 거야. 어째서.
"젠장, 카게야마! 오이카와!"
이와이즈미 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오이카와 상은, 스토커라는 그 사람은 혀를 살짝 차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쨘, 토비오쨩의 스토커는 저였답니다. 자자, 이제 나와 쭉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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