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키세아오

※화황, 청황

[쿠로바스/화황청]마지막까지 너의 곁에 있는 건

written by. 티토

 

 따사로운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인가. 게슴츠레 눈을 뜨니 하늘색 천장이 보인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다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아아, 일어나기 싫다. 그러나 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몸짓이 느껴지자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옆을 보니 곤히 잠들어 있는 금발의 남성이 보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 속눈썹 정말 길구나. 빤히 들여다 보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잠에 취한 키세는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도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유혹을 뿌리쳤다. …아침, 아침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니 식모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았지만 키세가 아침을 거르게 할 수는 없으니까. 사명감에 불타올라 침대에서 내려섰다.

 

"우음."

 

 갑자기 키세가 몸을 돌리며 움찔거리기에 순간 몸을 정지시키며 키세를 주시했다. 내가 침대에서 내려갈 때의 반동으로 깬 건가 싶어 침을 꿀꺽 삼키며 일어나나 확인했지만 다행인지 키세는 베시시 웃으면서 입을 쩝쩝 다셨다. …깨는 줄 알았네.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키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다음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좀 더 자, 키세.

 

 문득 키세가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로부터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는 것이 떠올랐다. 5년인가-, 빠르네. 같이 살자 권유했을 때는 이렇게 평화로운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 미치자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나는, 키세에게, 도대체 어떤 존재지? 

 

 순간 그의 대용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키세와 동거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 날도 먼저 일어났던 건 나였다. 현실이 아직 피부로 와닿지 않던 날들의 연속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색 색 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던 키세가 눈물을 흘리기 전까진 나름대로 평화로운 이런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뽀얀 얼굴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있을 때 키세의 미간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키세를 깨우려 손을 뻗었지만 키세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그 손은 키세에게 닿기 전에 거두어지고 말았다.


"아오미넷치…."

 

 아오미네는 떠났다. 키세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혼자 가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키세는….

 

 머리가 점점 아파왔다. 결국 예전일은 묻어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자 무거운 것에 눌린 듯한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이제 아침이나 하러 갈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발을 들었을 때 키세의 핸드폰이 울렸다. 짧은 진동음에 수납장 위를 보니 문자였는 듯 고요해진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누구지?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 중앙에 떠오른 것은-.

 

"아오미네."

 

 키세가 아직까지도 번호를 지우지 않은 건지 '아오미넷치'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로 온 문자였다. 힐끗 잠들어 있는 키세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움직여 메세지 창을 띄웠다. …실로 간단한 내용의 문자였다. 할 얘기가 있어, 만나자, 라는 내용의. 엄지손가락이 삭제 버튼 위를 맴돌았다. 지워도 될까. 내가? 키세가 그렇게 기다렸는데? 나에게 그럴 권리라도 있는 걸까. 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키세가 잠들어 있는 침대 앞에 섰다. 키세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히죽히죽 웃는 키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놓아주는 게 맞는 거겠지. 노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답장을 보내려는 순간.

 

"카가밋치."

 

 고요한 방 안에 키세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그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지금, 키세가, 어라? 혼돈 속에 갇힌 내가 멍하니 있을 때 부시시 키세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졸음이 가득한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을 살짝 감고 베시시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쌌다.

 

"잘 잤어여?"

 

 잠에 잠겨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얼빵한 표정을 짓는 내가 우스운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어보이는 키세로 인해 나 또한 살며시 웃음을 흘렸다. 손을 들어 내 뺨에 위치한 키세의 손에 가져가 덮었다. 좀 전의 고민이 우스워졌다. 아오미네에게 버림받았던 키세의 손을 잡은 건 나였다. 이 손을 뿌리친다면 나 또한 키세를 버리는 게 되겠지. …아오미네에게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넌 이미 키세를 떠났잖아. 이미 늦었어.

 

"잘 잤어, 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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