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황]또 하나의 시선

쿠로바스 | 2015. 3. 1. 10:47
Posted by 물빛녘

※[쿠로바스/청황]시선(http://teato263.tistory.com/17)의 외전 격 스토리

※아오키세


[쿠로바스/청황]또 하나의 시선

written by. 티토



 나는 사람의 호감에 예민하다. 그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악의를 품고 있는지는 척 보면 척.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해놓고 모르겠지 생각하는 녀석들도 간혹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다 보이거든? 연기를 하고 있는 그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아, 바보같아.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대에 부흥해 모른 척 연기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른 척,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 한 척 하면 상대방의 표정은 의기양양해지곤 한다. 아, 우습다. 내가 이렇게 속으로 비웃는 줄 모르는 채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로 인해 조소가 입가에 머문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정도로 여김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시큰둥한 척 했지만 못 이기는 척 1 on 1을 해주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그를 비웃었다. 아닌 척 해도 결국 그도 똑같았다. 나에게 호감을 사려고 하는 부류에 속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흥미가 떨어졌어야 했건만, 나는 그를 쫓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떨어지긴 무슨. 오히려 그를 더 알고 싶었고 넘어서고 싶었다. 가슴을 간질이는 이 느낌을 나는 동경하는 그를 뛰어넘고 싶다는 열망으로 치부해버렸다.


 그가 변했다. 간단하다. 재능이 넘쳐나던 그는 내면의 잠재력마저도 끌어냈다. 능력이 개화했다. 그리고 그는 연습에 나오지 않았다.


 치사하다. 정말 치사해. 아직 그를 이긴 적이 없던 나는 약이 오른 채 그가 잠들어 있을 옥상으로 달려가 1 on 1을 하자고 졸랐다. 못 이기는 척 해주는 건 여전했다. 그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그는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이건 그가 아직까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약간의 오만함.


 능력이 개화한다면 농구가 재밌어질 거라 생각했던 나는 곧 그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생각인지를 깨달았다. 이젠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연습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일의 첫시작은 모델일이 연습과 겹치게 되어서였다. 어차피 연습은 내게 필요없었다.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연습도 모델 일도 없는 날이면 그를 떠올렸다. 그를 만난 지 꽤나 오래되었다. 학교 내라면 언뜻 스쳐지나갈 법도 했건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애써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다. 그가 아직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불안감은 점점 불어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의 반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는 볼 수 없었다. 졸업식장에서도.


 카이조에 입학했다. 이런 저런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실로 단순했다. 교복, 유니폼의 색. 푸른 바다같은, 파란 하늘같은 그 색에 매료되서였다. 이렇게나마 그를, 그의 색을 곁에 두고 싶었다. 8월 30일, 그의 생일 전날에 했던 피어스색도 그와 같은 이유로 파란색.


 인터하이에서 그를 만났다. 틀에 박히지 않는 농구도 여전했다. 인상이 험해진 것을 빼면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보였다. …아니, 이젠 그가 나를 보고 있는지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를 카피했지만 결국 그를 넘어설 수 없었다. 동경하는 것을 그만뒀지만 간질간질한 이 감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카이조는 인터하이에서 아오미네라는 벽에 막혀 패배했다.


 돌아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코보리 선배가 윈터컵이 남았다며 위로해주셨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슬픈 건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켠의 응어리는 점점 커졌다. 이유도 모른 채 불어났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울린 전화를 통해서였다. 믿을 수 없었다. 누가 죽어? 지금 장난해? 아무 죄없는 전화 건너의 사람에게 소리쳤다. 난 아직 그를 넘어서지 못했단 말야. 아직, 아직…. 대체 어딨는 거야, 아오미넷치. 근처 구급실로 달려간 나는 흰 천으로 덮힌 그를 보며 울분을 토했다. 영원히 내 곁에 어떤 형태로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다. 차갑게 식은 그의 손을 어루어만졌다. 기억의 바다 저편에 있던 그와의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그를….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죽음으로 하나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이게 꿈이라면 좋을텐데.

 

 꿈?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 꿈일지도 몰라. 꿈. 분명 그의 장례식까지 마쳤지만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잖아.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테이코라면 있을 지도 몰라. 왜냐면 그와 나의 추억이 있는 장소니까.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그에게도 분명 기억에 남는 장소임에 분명했다. 그 길로 한걸음에 테이코 중학교로 달려갔다. 아아.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체육관이었다. 1군 주전들이 연습하고 있을 체육관으로 찾아갔지만 얼굴 모를 사람들만 있을 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을 애써 감추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외에 그가 갈 곳이 어디일까. 곰곰히 머리를 굴렸다. 양호실? 옥상? 옥상. 그가 땡땡이를 치고 찾아갔던 곳은 옥상이었다. …하긴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진 그가 얌전히 연습하고 있을리가. 바보같네. 나 자신을 향해 핀잔을 준 나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푸른 하늘이 한 폭의 그림인양 눈에 담겼다. 살짝 웃음을 머금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내가 찾는 그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없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건만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찾을 수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다. 지나치게 맑은 하늘이었다. 아, 그가 오늘은 여기에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일이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에 미쳤다. 그리고 나는 매일마다 테이코 중학교 옥상으로 향했다.

 

"키세군, 아오미네군은 …죽었습니다. 아무리 이곳에 와도 찾을 수 없어요.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세요."

 

 떨리는 음성. 쿠로콧치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연습도 빼먹고 이곳을 찾는 나에게 가차없는 말을 날린 그는 손에 들린 바닐라쉐이크를 한 모금 마셨다. 

 

"에에, 그럴 리가 없슴다. 그 아오미넷치라구요. 분명 올 검다. …진짜 굼뜨다니까."

 

"키세군."

 

"아아, 쿠로콧치, 오늘도 안 보이네요."

 

"키세군."


"빨리 얘기해주고 싶은데. 좋아한다고."


 갑자기 쿠로콧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아오미넷치처럼 푸른 빛이었다. 아아, 보고 싶어. 활짝 웃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쿠로콧치, 아오미넷치는 오늘도 안 보이네요. 언제쯤 올까요?"


 고개를 돌려 옥상 문에 기대에 서있는 쿠로콧치를 바라보았다. 핏기가 없는 창백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낙담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는 이내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입은 웃고 있는 일그러진 미소를 내게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네요. 아오미네군은 오늘도 보이지 않네요."

 

'쿠로바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바스/청황흑]살인  (2) 2015.03.01
[쿠로바스/청황]거짓  (0) 2015.03.01
[쿠로바스/화황청]마지막까지 너의 곁에 있는 건  (0) 2015.03.01
[쿠로바스/청황]실명  (0) 2015.03.01
[쿠로바스/황립]단추  (0) 2015.03.01
 

블로그 이미지

물빛녘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7)
공지 (0)
겁쟁이 페달 (0)
다이아몬드 에이스 (1)
오오후리 (0)
쿠로바스 (33)
하이큐 (32)
Fre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