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카게히나]다시 만나자
※진단메이커 돌림-
카게히나의 소재 멘트는 '닿아버리면 데인듯 아려와요', 키워드는 촛불이야. 서늘한 느낌으로 연성해
[하이큐/카게히나]다시 만나자
written by. 티토
네게 닿인 부분은 언제나 화상을 입은 듯 아려왔다. 그 부분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확연하게 높은 너의 체온은 눈을 감고있어도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랬었다. 분명 그랬었다. 이제는 더이상 네 체온은 나보다도…….
너를 처음 봤던 건 학교에서 단체로 등산을 하러 갔다가 나만 일행들과 떨어졌을 때였다. 전화를 위해 핸드폰을 꺼냈을 때, 실망을 감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통화권 이탈, 선명한 문구가 화면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파도 닿지 않는 곳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어두컴컴한 산중턱, 정처없이 길을 헤매던 나에게 검은 털을 가진 늑대가 다가왔다. 그래, 그게 너였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털에 헤에-하며 두려움도 모른 채 너를 바라보았다. 남색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 너는 머리를 내젓더니 몸을 틀었다. 몇발자국 걸어가던 네가 뒤를 돌아봤다. 따라오라는 걸까. 험한 길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핸드폰의 플래시로 앞을 밝혀가며 너의 뒤를 따랐다. 이내 네가 멈춘 곳은 낡은 오두막집의 앞이었다. 들어가도 되려나. 아침이 될 때까지 있어도 되려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너를 바라보았다. 계단의 앞에 자리잡고 앉았던 네가 나를 바라보았다. 에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니 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큰일났다.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아니, 그건 모르겠는데. 애초에 늑대가 사람에게 우호적이였나?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힐 때, 내 어깨에 온기가 느껴졌다. …어라? 다른 사람들보다 확연하게 높은 체온이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것은 흑발의 남성이었다. 키도 크고, 눈매는 뭐…,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남자였다. 닮은 건 검다, 라는 것뿐이였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모습 또한 너라고. 바보냐, 라고 중얼거린 너는 내게서 손을 떼며 계단 위를 올라갔다. 문을 연 너는 나를 돌아보았다. 거기 계속 있을 거냐. 날이 선 목소리에 입을 삐죽이며 갈 거 거든, 이라고 답해버렸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나, 늑대를 만나질 않나, 늑대가 사람으로 변하질 않나. 분명 평소의 자신이라면 두려워했음직함도 한데, 그 때는 공포감 따윈 없었다. 그래, 네가 나를 해치질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대로 너는 내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줬을 뿐이다.
다음날이 되었다. 너는 나를 흘겨보더니 터벅터벅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어제와 같이 따라오라는 듯한 행동에 네 뒤를 따라가니 등산로가 나왔다. 이 길을 주욱 따라 내려가면 될 거야. 아래를 가리키며 말한 너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무섭지 않냐. 네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글쎄. 그 때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무섭지 않아. 내 대답에 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너는 다시금 나를 보며 재차 질문했다. 무섭지 않냐.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좀 전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였다.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날이 선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너는 내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매서운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 너는 다시금 물었다. 정말로 무섭지 않냐. 얼떨결에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질문을 그만둔 너는 어깨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핀 너는 손을 내려두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고마워.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웃으며 묻자 너는 짧게 카게야마 토비오, 라고 답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구나……. 네 이름을 나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게도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이름에 나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나왔다. 난 히나타! 히나타 쇼요. 웃음을 참으며 말한 내 이름에 너는 입술을 달싹하다 이내 꾹 다물어버렸다. 어라, 기분을 나쁘게 했던 건가. 너는 내게서 등을 돌렸다. 몇발자국을 옮긴 너는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그리고선 말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 점점 멀어지는 네 뒷모습에다 대고 외쳤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 대답은 어땠더라. 아아, 그래. 너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다시 만날 일은 없길 바란다, 고. 그 때의 너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우린 만나선 안 될 사이였다는 사실을. 결국엔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축 늘어진 네 몸을 끌어안았다. 등을 받친 내 손에서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지혈할 게 필요해. 너를 조심스레 내려놓기 위해 움직인 순간 식은땀을 계속해서 흘리던 네가 눈을 뜨며 나를 응시했다.
"소용없어, 멍청아."
"…지금같은 상황에서 멍청이는 너거든?"
"됐고, 넌 여기서 나갈 준비나 해."
내가 죽으면 그것들이 몰려올테니까.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은 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너는 눈을 도로 감았다. 입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너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히나타, 너, 우리 둘이 만났을 때 기억 나냐?"
"나 길 잃어버렸을 때?"
"아니, 두번째로."
두번째? 미간을 찌푸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우리가 만난 건 한두번이 아니잖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처음 만난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 그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날은 그저 마트에 생필품을 사러 가고 있었다. 평소에 늘 다니던 길이었던 터라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긴 대체 어딜까. 황급히 눈동자를 굴렸다. 어렴풋이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어.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움직이기라도 해야할까 싶어 조심스레 발을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었다. 무서웠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익숙하면서도 이건 아닌 듯한 미묘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여긴 어디지. 몇년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름 동네지리에 빠삭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사람인가. 아니, 아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듯한, 평소에 느꼈던 시선들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자신이 움직이든지 달려가든지 해봐도 시선들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 있는 자신이 무서웠다. 나가야 해. 아니, 여기 있어야 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네가 있을 곳은 어디야, 쇼요? 넌 여기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니? 귓가에 달콤한 유혹의 말이 들려왔다. 아니,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내가 있을 곳은 이런 곳이 아냐. 정말로 그래? 이곳은 널 필요로 하고 있는 공간이야. 너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 오직 너만을 원하는 곳이라고. 평소에 불안하지 않았어? 네가 없어도 저 세계는 돌아가지. 그래, 네가 없어도 말야. 그런데 말야, 여긴 널 필요로 한다고. 네가 이 세계의 주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니?
시끄러운 게 달라붙었군. 온갖 시선들과 이상한 마력을 지닌 말에 혼란스러워질 때 즈음 네가 나타났었다. 며칠 전 헤어졌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차분한 흑발과 날이 선 눈빛은 여전했다. 너는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였다. 언제 놀랐냐는듯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노려봤다. 그제야 나는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그 때,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실들이 엉켜 있었는데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일 듯할 실루엣이었다. 마치 부정한 것들이 뭉쳐있는 것같은…….
"…실뭉치?"
"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입밖으로 내뱉었는지 내 무릎 위에 누워있던 네가 나를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것보다 상처는 어때?"
"…내 상처는 신경쓰지 말고 나갈 준비나 해. 너 나갈 수 있게 할테니까."
"그, 그렇지만 내가 가면 너, 너… 죽는 거야?"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그게 피부에 와닿자 두려움이 앞섰다. 진짜로 죽는 거야? 좀 전에 죽는다, 라고 했을 때, 그래도 너라면, 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아무리 심하게 다쳤더라도 금방 치료되고 그랬던 너였다. 그랬던 네가 어째서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걸까. 언제나처럼 이 정도 상처쯤이야, 라고 해도 되잖아.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런 상황을 가져온 게 누군데. 나잖아.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네가 다칠 일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된 것도 다 내 탓이잖아.
"히나타, 이 멍청아. 너, 지금 자책하고 있지?"
"……야, 씨. 너 자꾸 나보고 멍청하다고 할래?!"
"멍청이 보고 멍청이라 하지, 뭐라 하냐."
너랑 말을 말아야지. 입을 삐죽 내밀고 있으니 네가 숨을 짧게 들이마쉰 뒤 말했다.
"니가 여기에 오게 된 것도, 그 놈들이 널 노리는 것도 네 탓이 아냐. 니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고."
"그렇다고 해도……"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네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너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카게야마는 '떠돌이'지?"
새삼 무슨 소릴 하냐는 듯 네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떠돌이. 정확한 명칭을 붙일 수 없는 그들에게 붙여진 별명. 언젠가 네가 말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간에서 존재하는 그들은 가끔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잡아먹거나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든다. 먹을 필요없는 그들이 사람을 먹거나 굳이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너조차도 모른다고 했었다. 간혹 가다 자신과 같은 이형의 존재가 생겨난다고 네가 쓰게 웃으며 말했었지. 처음 만났을 때, 나를 되돌려보내려 한 것도 이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서였고, 두번째 만났을 때도 너는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비록 그 때 처치한 떠돌이 말고도 다른 떠돌이들이 있어서 내 존재는 이 세계에 명확하게 각인된 듯 싶었지만. 세번째도, 네번째도 물론, 그 이후로도 너는 나를 돌려보내려 했었다. 너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걸 네게 들었던 터라 조심을 했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횟수가 10번을 넘었을 때, 결국엔 포기를 하고 너는 내가 이곳에 있을 동안 안전하도록 옆에 있어줬었지.
오늘도 그랬다. 학교에 가다가 이곳에 들어온 나는 여태껏 쌓아뒀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우선 초를 꺼냈다. 불이 있으면 그나마 안전한 결계를 칠 수 있다고 네가 말하며 초라도 들고 다니라고 한 이후로 가방에 여러개 넣어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붙어라, 붙어라. 조용히 중얼거리자 불이 켜졌다. 여긴 환상이면서도 현실인 공간이기에 이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 그럼 너를 찾아봐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너를 찾았지만 너는 나를 추격하던 무리들과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그곳에 내가 끼어들었고, 당황한 너는 나를 지키려다…….
다행이도 근처에 네가 만들어뒀던 오두막집이 있었다. 너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자동으로 결계가 펼쳐졌다. 지금도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결계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좀 전에 네가 중얼거렸던 말이 결계를 덧붙이는 주문이었음을 모르진 않았다. 네가 사라진다면 나는 너를 버리고 떠나야하는 걸까. 나중에 다시 이곳에 들어오면 이제 어쩌나, 하는 걱정보단 너를 버리고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원망이 더 컸다. 차라리 나도 여기에 남는다면? 하지만 그건 네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거잖아.
똑, 똑, 똑.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털이 쭈볏 서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있니, 쇼요? 다정한 말투였지만 간간히 섞여들어오는 음침한 웃음소리에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그러자 네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듯 바라봐주었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나보다도 높은 체온을 가졌던 너의 손은 나보다도 차가웠다. 너와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똑, 똑, 똑똑똑똑똑.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세졌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단다. 자, 어서 나오렴, 아가. 어서 빨리.
나와, 나와나와나와나와. 다정한 목소리 대신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신히 심호흡을 한 뒤 네가 잡은 손이 아닌 반대손으로 옆에 놓아뒀던 가방 안을 뒤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터칼을 꺼냈다. 네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커터칼로 너와 잡고 있는 손을 몇번이고 긋고, 배를 몇번이고 찔렀다. 더 이상 도망치는 것도, 너를 힘들게 하는 것도 싫어. 차라리 너와 같이 갈래. 응, 카게야마? 제발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줄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어쩔 수 없네. 너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내 손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조그만 승락의 표시에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허락해줘서 고마워. 너와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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