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오이카게]어느 겨울날
※겨울합작(http://blog.naver.com/jkt5028s/220204451308)에 낸 글입니다.
[하이큐/오이카게]어느 겨울날
written by. 티토
눈인가. 오이카와는 부엌에 난 작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꽤 춥겠는걸. 실내스포츠를 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 야외스포츠면 오늘 같은 날은 연습쉬려나. 어찌되었든 나가야하는 시간이 되었으므로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두꺼운 외투를 위에 걸치고 우산을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목도리를 단단히 고쳐 두르고 문을 닫았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온통 새하얗게 변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발이 파묻혔다. 푹 푹 빠지는 발을 옮겨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오이카와씨, 오셨네요.”
“안녕.”
인사를 하고 체육관 안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아, 춥다 추워.
자신은 지금 대학 배구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었다. 현재 2학년. 이제 곧 3학년으로 올라가겠지. 그렇다면 역시 그 녀석도 만날 수 있게 되려나. 카게야마 토비오. 중학교 때부터 거슬렸던 녀석. 천재. 배구밖에 모르는 순진함.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고3.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며 내가 몰랐던 그의 모습에 입 안이 쓰게 느껴졌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짓궂게 굴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그 녀석을 좋아했었구나, 하고. 정말이지 한심했었다.
오이카와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체육관으로 다시 돌아가니 3 대 3으로 연습시합을 하고 있었다. 물을 마시면서 경기를 보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발견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늦잖아.”
“아, 이와쨩, 왔어?”
“그래, 왔다, 너보다 일찍 와서 뛰고 있었거든.”
“난 아까 못 봤는데?”
“있었어.”
“거기 시끄럽게 할 거면 끼어!”
연습시합에서 뛰고 있던 한 명이 외쳤다. 이와이즈미는 손을 내저었다.
“난 패스. 조금 쉴래.”
“이와쨩 안 뛰면 숫자 안 맞는데.”
“넌 몸이나 풀어.”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을 돌렸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체육관 안을 돌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이와이즈미의 말이 오이카와의 발목을 붙잡았다.
“카게야마랑은 연락 안 하냐?”
“안 해.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를 피했다. 봄고가 끝난 후였기 때문에 딱히 마주칠 염려는 없었다. 그 뒤에도 그에 대한 소문은 무조건 피했기에 지금 어디로 진학할 생각인지도 몰랐다. 궁금하긴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지금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지도 않냐.”
“알아서 잘 지내겠지. 랄까, 이와쨩, 갑자기 토비오쨩 얘기는 왜 꺼내는 건데?”
다시 이와이즈미의 옆에 털썩 앉은 오이카와가 물었다. 한숨을 내쉰 이와이즈미는 짜증난다는 듯이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약간 움찔한 오이카와는 뒷목을 긁적였다.
“넌 그 녀석 부상당한 것도 모르지?”
연습을 끝내고 가는 내내 좀 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갑작스런 얘기에 머리가 따라가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의 말에 의하자면 몇 달 전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흔한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선수로는―. 엄청난 재능에 자신이 질투했던 남자의 부상. 이제 시합에서 만날 일은 없어졌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수면 위로 떠오른 감정은 슬픔이었다. 울고 싶어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침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그 재능을 질투했었지 않았던가. 답은 지극히도 단순했다. 자신은 그를 사랑했고, 그의 재능 또한 사랑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했었다.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겠지. 그렇다면 쫓기는 입장에서 쫓아가는 입장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좋았다. 그와 함께 시합에 임하는 것이 좋았다. 적이든, 아군이든.
집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장시간 밖에 있어 코가 빨개져 있는 남자였다.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가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씨, 기다렸어요.”
눈 속에서 서있던 남자는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안으로 들어가 황급히 난로를 틀었다. 우산도 안 챙겨 왔는지 눈사람이 된 카게야마의 어깨를 털어주고 부엌으로 가 코코아를 탔다. 카게야마는 현관에서 눈을 턴 뒤 목도리를 풀며 조심스레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오이카와는 컵 두 개를 들고 부엌에서 나와 카게야마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고개를 꾸벅인 뒤 카게야마가 컵을 받았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는 거실에 있는 코타츠 다리를 집어 넣고 앉았다.
“눈 오는데 거기서 얼마나 서 있던 거야. 카페라도 들어가 있던가.”
“그렇지만 오이카와씨 언제 돌아오실 줄 몰라서.”
“아, 그러니까―.”
연락이라도 하지, 라고 말하려던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었다. 연락을 피했던 게 누군데. 의아한 표정으로 카게야마가 바라보자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야.”
“…저, 저도 모르겠어요.”
농담을 하는 건가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니 카게야마 자신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만나고 싶었어요.”
“헤에, 그래? …부상당했다는 얘긴 들었어.”
오늘 들은 거지만. 코코아를 홀짝이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어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눈빛에 오이카와는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들으, 셨나요.”
의문문이 아닌 듯 끝이 내려갔다. 오이카와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번 시합 때.”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잔인할 지도 모른다. 카게야마는 물끄러미 코코아를 내려 보더니 말했다.
“저 시험 쳤어요. 오이카와씨 학교에. 확실히 선수로는 뛸 수 없지만, 아예 못 하는 건 아니니까 후에 학교에서 배구부 코칭이나 할까 하고. 역사교사로도 일해보고 싶고.”
“교사?”
“네, 저 대학교에서는 역사 쪽으로 배워 보려구요.”
역사인가.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어울릴지도.
“오이카와씨는?”
“…난 대기업에서 콜 들어와서, 아마 그 쪽에서 선수로 뛸 거 같아.”
“아, 그렇군요. …저, 오이카와씨, 만약에 제가 대학 합격하면.”
카게야마가 잠시 말을 멈추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이고, 귀여워 보이는 것을 보면 자신도 참 중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몇년간 어떻게 버텼던 것인지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다. 카게야마는 마음을 먹었는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같이 살아도 괜찮을까요?”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부상을 당한 뒤 얼마나 울었을까. 무조건 카게야마의 소문이라면 피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요령 없는 자신의 후배는 혼자 끙끙 앓고 있었겠지.
“좋아. 얼마든지, 토비오쨩.”
왠지 모르게 그 말을 꺼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진 기분이었다.
어느 겨울날 갑작스레 찾아온 너는 밝은 햇살 마냥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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