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황]다가가다.

쿠로바스 | 2015. 3. 1. 00:35
Posted by 물빛녘

※아오키세


[쿠로바스/청황]다가가다.

written by. 티토


 

5년. 키세, 너를 짝사랑하게 된 지는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래, 너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의아해 하겠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된지는 2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니까. 그것도 내가 너에게 농구공을 고의로 던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남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는 모델로서, 나는 농구선수로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었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나는 언제까지라도 너를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키세, 내가 너를 처음 본 것은 첫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눈이 소복히 쌓인 공원에서 사츠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너는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건 단연 키세, 너였다. 그 당시 나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를 본 순간 깨달았다. 이게 좋아한다라는 거라고.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이라고. 입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무료함이 깃들어 있던 너의 모습에 반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틈날 때마다 너를 보았던 공원을 맴돌았다. 그러나 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 금빛 눈동자, 그리고 찰랑거리던 샛노란 머리카락. 계속해서 너의 모습을 그렸다. 금발이 보일 때마다 고개는 저절로 돌아갔고, 너가 아닌 걸 확인할 때마다 실망감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테이코중에 온 건 순전히 농구때문이었다. 농구는 어릴 적부터 좋아해 오던 지라 입학을 결정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 너가 있었다. 입학식, 교장의 연설이 지겨워 고개를 돌려보니 옆 반 줄에 너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내 키가 자랐 듯, 너의 키 또한 자랐으며, 내 골격이 다부지게 변했 듯, 너 또한 그랬다. 어릴 때 귀엽기만 했던 너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운 남자의 모습으로,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너가 좋았다. 어릴 때 표정이 남아있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저 너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뒤로 나는 너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는 눈치채지 못 했고 나는 말을 걸지 못 했다. 너는 여전히 따스한 봄날같은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얼음장같은 눈빛도 여전했다. 하지만 너의 주변에 있는 여자아이들은 너의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했다. 너는 여전히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너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나는 결국 너의 뒷통수에 농구공을 던졌다. 물론 너는 아직까지도 고의인 것을 모르겠지.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잇을 텐데, 그 곳에서 뒷통수를 맞았다는 게 이상하지도 않은 건지. 모르면 나야 좋지만 말이다. 그 일을 계기로 너는 농구부에 들어 왔다. 2주 후 1군 연습 때 보았던 너의 표정에 좀 더 일찍 했을 걸 후회가 들었다. 그만큼 너의 눈동자는 빛났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처음은 대부분 키세, 너가 가져갔다. 첫사랑도 너였고, 첫 몽정 상대도 너였으며, 첫 자위도 너를 떠올리며 했다. 너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들뿐이겠지만. 나는 너와 1 on 1 할 때마다 흥분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흰 뒷덜미, 목선을 타고 흐르는 땀, 너가 점프할 때마다 보이는 복부, 그리고 쇄골. 너의 모든 것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너는 계속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빨리 끝내고 싶었다. 매일 매일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너가 테츠를 싫어할 때, 나는 안심했다. 너가 나에게 보여주는 호의, 웃음- 온전히 나만 보고 싶었다. 그래서 너가 테츠에게 호의를 보여주게 되었을 때, 나는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때부터 나는 너와 테츠를 떼어 놓으려 애썼던 것 같다.

 

너에게 호감을 사려 애썼던 일, 남녀 구분하지 않고 너에게 다가가는 녀석들을 떼어 놓으려 애썼던 일. 그 모든 일들은 의미가 없었다. 너는 내가 무얼하든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는 남자와 남자라는 벽에 막혀 좌절했다. 너와 나, 둘 중 한명이 여자였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글쎄, 그것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우리 둘은 남자였으니까.

 

키세, 나는 이제 너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 오랜 짝사랑에 나는 이미 지쳤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은 결코 보답받지 못 한다. 나는 너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키세, 나는 지금 카가미에게 가고 잇다. 며칠 전, 테츠를 보는 카가미의 눈빛에 내 심장도 두근거렸다. 아아, 그래. 나는 카가미가 좋아진 것이다.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카가미에게 간다. 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응원해줄까, 경멸할까, 아니면……날 붙잡지는 않을까. 어떤 반응이라도 내 마음은 무너질 것 같다. 어떤 일이 생기든 내 첫사랑이 너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어이, 아오미네. 할 얘기라는 건?"

 

아아, 실타래는 이미 엉키기 시작했다. 키세,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말하지도 못 한 채 그 마음을 접어 버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너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카가미, 너가 좋아. 사귀자."

 

내 말에 미묘한 표정으로 변하는 카가미의 모습에 마음 한 구석에서 거절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키세, 너에게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 ……웃기는 생각이다. 나는 분명 너를 향한 짝사랑을 포기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너에게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카가미가 좋다. 그래. 이제부터 카가미를 좋아할 것이다. 키세, 너가 아닌.

 

"좋아."

 

키세, 이제 모든 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

 

"네? 뭐라고 했슴까?"

 

멍한 표정의 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너를 끌어 당겨 진한 입맞춤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너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너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출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다. 너는 나와 카가미를 보더니 입술을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탁이다, 키세. 아무 말도 하지 마, 제발.

 

"나랑 카가미, 사귄다고."

 

나는 또 다시 너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내 말에 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런건가.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키세, 이제 됐다. 말하지 않아도 너가 하려는 말은 알 것 같다. 너는 그저 남자와 남자, 그것도 나와 카가미가 사귄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너에 대한 마음을 온전히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카가미를 만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얘기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 그만, 이제- 그만.

 

"깜짝 놀랐잖아요. 에-, 축하함다. 쿠로콧치도 그렇죠?"

 

 너는 당연하다는 듯 옆에 앉아 있는 테츠에게 물었다. 아아, 이제 별 감흥이 없다. 중학교 때부터 봐 왔기 때문일가, 내가 카가미를 좋아하게 된 것 때문일까. 너의 질문을 받은 테츠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렇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연인끼리 데이트할 때 저희가 끼면 민폐니까요. 가죠, 키세 군."

 

너는 테츠의 손에 이끌려 카페 밖으로 나갔다. 너의 뒷모습은 떨리고 있었다. 아아, 키세 너에게는 미안하다. 너는 친구인 나와 카가미를 위해, 우리가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혐오감을 누른 채 축하해 줬을 것이다.그만큼 너는 마음을 연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퍼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녀석이니까.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그 일면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

 

카가미와 나의 관계는 별로 진척이 없다. 손잡기, 포옹하기. 그 뿐이다. 건장한 남학생이라면 욕구가 남다를 것이 분명하건만. 아아, 물론 키스하려고 한 적은 있다. 문제는 내가 먼저 피했다는 사실이다. 입술이 닿으려고 하면 키세, 너가 생각났다. 젠장, 나는 아직도 너를 잊지 못 하는 걸까.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단지 너를 짝사랑하던 기간이 길어 적응하지 못 할 뿐이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너가 아닌 카가미를 좋아하는 것이.

 

오늘은 너와 테츠가 나와 카가미를 불러 냈다. 약속장소로 가면서 카가미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평소라면 실없는 대화를 나눌 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대체 왜일까. 너가 아닌 너와 테츠가 불렀다는 사실이, 내가 아닌 나와 카가미가 불러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불안해 할 이유가 되는 걸까.

 

"저 쿠로콧치랑 사귐다. 둘이 얘기해줬으니 저희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아, 결국 우리는 이렇게 되는 구나, 키세. 너는 역시 테츠를 좋아했던 거구나. 짐작했던 것인데, 나는 널 포기했는데, 나에겐 카가미가 있는데도 내 마음은 왜이리 아픈 것인지.

 

"테츠가 아깝네. 뭐- 축하한다."

 

키세,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너가 웃는 지 우는 지 조차도.

 

*

 

"아오미네? 어이, 야!"

 

다짜고짜 카가미의 집으로 찾아 갔다. 너가 나에게 테츠와 사귄다고 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날이었다. 카가미가 보이자 마자 그 녀석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카가미를 침대에 눕히고, 허리춤을 더듬었다. 놀란 듯 버둥거리던 카가미는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내 입술을 카가미의 입술로 가져 갔다. 아니, 그럴려고 했다는 게 정확하다. 이번에도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키세, 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 서 내 첫 몽정은 너로 인해 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꿈에서 나와 너는 키스를 했다. 그래, 그것뿐이었다. 일어나 보니 내 바지는, 이불은 흥건했다. 아버지께서 우스겟소리로 예쁜 누나라도 나왔냐고 하셨지만, 내 꿈에 나온 건 키세, 너였다. 내 목에 팔을 두른 채 나와 입맞추던 너 말이다.

 

"아오미네."

 

카가미는 나를 밀어냈다. 나는 별다른 저항없이 물러났다. 너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 나는 좌절했다. 몸을 바르르 떠는 나를 힐끔 보더니 카가미가 말을 이었다.

 

"솔직해지는 게 어때?"

 

"뭐?"

 

그 순간 떨던 몸도, 사고 회로도 정직했다. 솔직? 무슨 의미일까, 대체-.

 

"너- 나에게서 닮은 모습을 봐서 내가 좋다고 착각한 거 같아."

 

닮은 모습? 멍하니 카가미를 보니 씁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저 웃음이었다. 내가 카가미가 좋다고 생각이 든 것은 테츠를 향해 웃고 있는 저 모습에 나는 카가미에게 반했다.

 

"좋아하는 데 다가가기 무서워하는 내 모습에. 아오미네, 난 쿠로코가 좋아. 너는 키세가 좋잖아."

 

좋아하는데 상처받는 게 무서워 뒷걸음치던 모습에? 아아, 그랬던 것일까. 나는 카가미에게 두근거린 게 아니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던 것이다. 너무나도 씁쓸하고 외로운 짝사랑을 하는 모습에. 나는 테츠를 보는 카가미의 모습에서 키세를 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저번에 넷이서 길거리 농구했던 곳. 거기에 키세 있을 거다. 어서 가, 바보미네."

 

"뭐래, 이게."

 

누가 바보미네라는 거냐. 벌떡 일어나서 허겁지겁 신발을 신었다. 힐끔 뒤를 보니 씨익 웃는 카가미가 보였다. 고맙다. 나도 씨익 웃어 줬다. 내가 가고 나면 카가미 또한 테츠에게 한 발자국 다가갈 것이다. 나와 카가미는 뒷걸음질쳤을 뿐 계속 앞을 보고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좋아하는 감정을 접으려 했지만 접은 게 아니었다. 키세,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키세, 생각해보면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한 게 많은 것 같다. 너에게 거유가 좋다고 했지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춘기에 접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너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지 농구를 같이 했던 동네 형이 거유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길래, 이상형을 묻는 너에게 둘러 댄 것이었다. 호리키타 마이는 그 형이 말해준 사람일 뿐이고.

 

그나저나 키세, 너가 알면 화낼 만한 몹쓸 생각도 많이 했다. 그-, 그거할 때. 아아, 진짜 알면 화내겠네.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거나, 에이프런을 입고 있다거나, 고양이귀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너를 떠올리곤 했다. 평범한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애의 모습을 떠올리듯 나는 너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약 너와 나의 감정이 같다면, 그런 모습을 볼 날이 있을까. 분명 너는 화내면서 해줄 것 같은데. ……젠장, 그런 생각 버릴게. 안 그러면 넌 그것때문에 한동안 삐져 있을 테니까.

 

저 멀리 농구골대에 기대어 하늘을 보고 있는 너가 보인다. 파란 피어싱을 한 너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 사랑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너다, 키세. 나는 이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한 발자국씩 너에게 다가선다면, 너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는 않을까.

 

"키세!"

 

사랑한다, 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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