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황]우문현답

쿠로바스 | 2015. 3. 1. 10:55
Posted by 물빛녘

※아오키세


[쿠로바스/청황]우문현답

written by. 티토



​"사람 마음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가 있어?!" 

 

 쇼파에 웅크리고 앉아 울먹이며 애꿎은 쿠션을 쥐어 뜯는 큰누나의 모습에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거실에 감돌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큰누나 옆에 서 있는 작은 누나에게 의아함이 담긴 눈빛을 건넸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던 작은누나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담긴 의미는 불보듯 뻔했다. 남자친구가 바람폈구나. 매번 비슷한 레파토리를 가져오는 큰누나는 어찌된 일인지 사귀던 남자들에게 뒷통수를 맞곤 했다. 용모 우수에 성적도 좋은 편인데다가 성격도 좋은 큰누나를 두고 어찌 바람을 필 수가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진 않지만, 대충 짐작하건데 여자친구가 자신에 비해 너무 뛰어나서 자격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든 오늘도 남자친구의 바람을 목격한 큰누나는 집에 돌아와 울음을 쏟아냈다. 이럴 땐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남자친구를 찾아가서 한 대 날려줘야 하나, 바람 상대를 찾아내서 꼬셔냄으로써 누나의 복수를 해야 하나. 뭐, 두 쪽 다 큰누나가 싫어할 것 같다만은.

 

"료타…."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본 큰누나가 애처로이 말했다. 아, 이제 내 차례인가. 누나의 입에서 남자에 대한 험담이 나오리라 예상한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의외의 말이 튀어 나왔다.

 

"너도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는 게 좋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라!"

 

 그리고선 다시 쿠션에 화풀이하는 큰누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후 아오미넷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

 

"후아, 또 졌슴다…."

 

 한숨처럼 길게 느릿느릿 말한 나는 체육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우우, 힘들어. 손을 깍지 껴서 앞으로 주욱 내밀고 있는 나를 아오미넷치가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나와 등을 맞대고 앉았다. 귀찮다니 뭐니 해도 어찌되었든 간에 같이 어울려주는 모습에 히죽 웃음이 나왔다. 집에서 큰누나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그 웃음도 쏙 들어가버렸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손등에 농구공을 올려놓고 앞뒤로 움직이고 있는 아오미넷치에게 말을 걸었다.

 

"아오미넷치."

 

"엉."

 

 우아, 무신경한 반응. 이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뒤를 살짝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있죠, 만약에 아오미넷치가 무인도에 가게 되었다면 꼭 하나를 들고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뭘 들고 갈 검까?"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확신을 얻고 싶어한다. 그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그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그리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의심이 많은 동물이기에 오히려 더 그럴 지도 모른다. 나도 아오미넷치로부터 확신을,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걸까. 정상적인 사고회로를 거치지 않고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적으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연인에게서 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건 여자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

 

"에?"


 주저없이 들려온 말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얼굴이 급속도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의 입에서 나올 뒷말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딱히 별말이 나오지 않아 내가 다시 물었다.


"왜임까?"


"왜냐니. 무인도에 먹을 게 있던지 없던지 간에 둘만 있다는 게 낭만적이지 않냐."


"전 굶주려 죽긴 싫은데여."


"무드없는 놈."


 당신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진 않거든요. 의외로 로맨티스트인 아오미넷치에게 핀잔을 날리며 그의 손등에 올려져 있는 농구공을 낚아채 품에 안았다. 뺏었다, 하고 히죽 웃었다.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 있을 내 얼굴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뺏었나 싶었지만 그렇게 가지고 싶었냐는 물음이 들려와 실없이 히히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얼굴에 대해 묻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럼 하나 더. 아오미넷치는 제가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검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고 등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사라지자 나는 고개를 돌려 서있는 아오미넷치를 바라봤다. 아오미넷치? 의아함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그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한 손으로 반대쪽 어깨를 잡고 잡힌 어깨쪽 팔을 붕붕 돌리더니 장난스레 말했다.


"하, 뭐냐, 너. 별이 가지고 싶었던 거냐? 진작에 말하지."


"…에?! 진짜 따러 갈 검까?! 것보다 지금 아직 낮이라구여!"

 

"사츠키가 그러던데, 낮에도 별 떠있대."

 

"…괜, 괜찮슴다, 별 따주지 않아도."

 

"그러냐."

 

 다시 등을 붙여 앉은 아오미넷치는 내 품에 안긴 농구공을 빼내더니 히죽 웃으며 빈틈 발견, 이라 말했다. 헐, 뺏겼다! 아둥바둥 공을 돌려받으려 애썼지만 실패한 나는 결국 다리를 끌어안았다. 아오미넷치는 먼저 말을 꺼내려는 생각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체육관 안에 적막이 내려 앉았다. 적막을 깬 건 또 나였다.

 

"만약에 말임다. 저, 공인이잖슴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제가 당신이랑 사귀는 걸 언론에 들키면 어쩔검까?"

 

 이런 비밀연애도 끝까지 가진 못 할 테지. 언젠간 들킬테고 경멸 어린 눈빛들이 나를 향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무릎에 턱을 기댔다. 헤어져야 할까, 아니라고 부정해야 할까, 둘이서 도피라도? 현실성 없는 생각들을 주욱 나열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까지의 장난스러움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라 진지함이 담긴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 때는 모델 일 그만둬. 내가 먹여살릴테니까."

 

"우와, 폭군."

 

"시꺼. …야, 이정도면 나름 우, 뭐더라. 아, 우문현답이지 않냐."

 

"우와, 아오미넷치 입에서 그런 어려운 말이. …우문우답같은데여."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 삐죽 입을 내밀며 그의 장난스런 물음에 대꾸했다. 현명한 대답은 무슨. 둘 다 바보같거든요. 것보다 아오미넷치, 우문현답 얘기할 때 텀이 너무 길었다구요. 그에게서 다시 농구공을 뺏어 온 나는 농구공을 이마에 가져가 대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 만약에 저랑 쿠로콧치랑 모못치랑 바다에 빠졌을 때, 아오미넷치는 두 명만이 탈 수 있는 배에 타고 있다면 누굴 구할 검까?"

 

 왜 세 명 중에 고르는 거냐, 보통 두 명 중에 한 명이 아니냐라는 핀잔이나 왜 하필이면 두 명만이 탈 수 있는 배에 타고 있는 거냐, 라는 핀잔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지만 나름 진지하게 듣고 있는지 그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동안 대답이 없던 아오미넷치가 가벼운 어조로 대꾸했다.

 

"테츠랑 사츠키."

 

"…하? 두 명이 탈 수 있는 배니까 한 명만 가능하지 않슴까?"

 

"그러니까."

 

 강하게 내 어깨를 잡는 손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던지라 미처 반응하지 못한 내 몸은 손이 끌어당겨진 쪽으로 돌아갔다. 아오미넷치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빠지면 둘은 살 거 아냐."

 

 아오미넷치의 얼굴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아이컨택을 하게 된 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 조심스레 그와 시선을 맞췄다. 장난기 하나 없는, 진심이 묻어나오는 푸른 눈동자가 또렷히 보였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지면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남자는 내가 불안한 것을 눈치채고 확신을 주려 하고 있었다.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확신을.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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