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켄마히나]기약
※과거 날조.
※여우요괴 켄마x인간 히나타
[하이큐/켄마히나]기약
written by. 티토
아무도 없지? 켄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얼굴을 쭈욱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중히 탐색했다. 쿠로는 조용할 틈을 안 준다니까. 가끔은 혼자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뭐가 그리 걱정인건지 모르겠어. 켄마는 자신의 여우귀를 만지작거리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간만의 자유시간이었다. …일단 낮잠부터 잘까.
켄마는 여우요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마를 잡아먹는 긍지높은 여우 일족의 구성원이었다. 인간과의 교류가 많았다던 선대분들은 인간들에게 달라 붙어 있는 병마를 잡아먹고 보상으로 여러가지 생필품을 얻었다고 했다. 물론 그건 선대 때의 이야기였다. 탐욕에 물든 소수의 인간들로 인해 여우 일족은 숲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다시는 인간을 돕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우 일족의 몸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기운을 받고 자란 식물들이 약초로 변했다던가 해서 이 숲은 신령의 숲이라 불리는 듯 했다. 간혹 숲에서 놀다가 약초를 캐러 온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황급히 귀와 꼬리를 숨기지 않았더라면 켄마와 쿠로오는 필히 인간들에게 끌려 갔으리라.
인간을 돕지 마라, 인간에게 귀와 꼬리를 보이지 마라. 일족 내에서 이것은 꼭 지켜야 할 계율이었다. 인간은 탐욕스럽다. 언제나 경계해야 할 존재다.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소리다. 호기심에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한테 혼났다. …뭐, 나는 관심없지만. 켄마는 몰려오는 잠에 몸을 맡겼다. 눈은 스르르 감기고 있었다. 그러나 켄마의 잠은 이방인의 방해로 달아나버렸다.
"우와, 너 누구야?"
"……?!"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 뜨자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5,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큰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고 있는 모습에 켄마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조심스레 시선을 맞추었다. 아, 정말 몽실몽실해 보이는 머리다.
"귀?"
"…귀?"
소년에 입에서 나온 말에 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귀? 귀가 어쨌다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흠칫 놀랐다. 자신은 분명 평소처럼 여우귀를 내놓고 있었다. 더군다나 꼬리도. 침통한 표정의 켄마와는 달리 켄마의 꼬리는 살랑 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빳빳하게 굳은 켄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계율 하나를 어겼다. 눈에 안 띌 자신이 있었는데. 숨바꼭질을 하면 끝까지 숨어 있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쿠로한테는 잡혔겠지만.
"이름이 뭐야? 난 히나타 쇼요!"
"……코, 즈메 켄마."
켄마의 여우귀에 흥미가 사라졌는지 히나타는 헤실헤실 웃으며 켄마의 이름을 물었다. 엉겁결에 대답한 켄마는 히나타의 주변에 흰 연기가 보이는 것 같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라, 켄마 왜 그래? 히나타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지만 켄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히나타의 주위에는 병마가 맴돌고 있었다. 인간에게 붙은 병마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히나타의 몸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약해져 있었다.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로.
"…쇼요,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아! 길 잃었어."
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고 히나타가 말했다. 길을 잃은 건 자랑스러운 게 아냐, 쇼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켄마는 애써 그 말을 삼켰다. 대신 히나타에게 붙은 병마를 응시했다. 신경 쓰인다. 희끄무리한 연기는 어느새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병마는 히죽 웃었다. 분명 알고 있는 것이다, 여우 일족은 인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히나타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재채기라도 하는 양 켈록거렸지만, 어느새 격해져 숨 넘어갈 듯 보였다. 어쩌지. 인간들을 도우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살다시피 한 켄마였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이 수많은 병마들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불투명했다. 켄마가 고민하고 있을 때 간신히 진정한 히나타는 히죽 웃었다. 그 모습에 켄마는 귀를 축 늘어뜨렸다. 누가 봐도 아파보이는데 히나타는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
"아, 켄마는 그거지? 여우님! 나, 엄마한테 들었어. 여기 숲에는 신령님들이 산대! 예전에는 사람들이랑 같이 살았는데 우리가 못된 짓 해서 실망해서 숲에 들어가셨다고. 우음, 근데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런 걸까?"
"…글쎄. 쇼요, 몸은 괜찮아?"
"응? 응!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 일 년도 못 살 거라 그랬대. 근데 일 년이 3년이 되고, 그랬다나 봐. 지금 나, 7살이라구!"
7살…….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켄마는 병마를 보다가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격한 기침을 하고 난 뒤여서 그런지 히나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민에 빠진 켄마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지 히나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있지, 켄마! 나랑 놀자!"
"…아, 응. 뭐하고?"
"……그러게."
히나타는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켄마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히나타를 보다가 좀 전에 기대 자려고 했던 나무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큰 구멍이 보이자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공을 하나 꺼낸 켄마가 히나타에게 공을 내밀었다. 공? 그게 뭐하는 거야? 히나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배구공. 딱히 뭐 하고 놀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쿠로랑 하고 놀던 배구를 하자는 의미에서 내밀었는데 쇼요는 생각보다 관심을……. 켄마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먼저 무슨 놀이를 하자, 라는 건 자신이랑 너무 동떨어졌다. 더군다나 배구에 대해서 모를텐데, 설명해주려면……. 그래도 왠지 쇼요랑 배구하고 싶어…….
"우와, 신기하다!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이렇게?"
공을 들고 하늘로 던졌다가 얼굴로 받는 히나타의 모습에 켄마가 살짝 웃었다. 앗, 웃었다! 히나타가 해맑게 외쳤다. 히나타의 반응에 켄마가 눈을 깜빡이다 공을 주워 들었다.
"차근 차근 하나씩 하자."
*
가끔 기침을 심하게 하는 것을 빼고는 아이처럼 신나게 노는 모습에 켄마가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었다. 병마를 잡아 먹는다, 라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본능에 맞기자. 배운 게 없다 할지라도 자신은 여우요괴였다, 병마를 잡아먹는 긍지 높은 여우 일족의 한 명이었다. 공을 끌어 안으며 해맑게 웃는 히나타에게 켄마가 입을 열었다.
"…쇼요, 내일도 여기로 올 수 있어?"
어른들한테 걸리면 된통 혼나겠지만, 어째서인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는 싫었다. 켄마는 히나타의 주변을 맴도는 병마를 노려보았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
히나타와 헤어진 뒤 켄마는 재빨리 마을로 달려갔다. 아차차. 마을로 들어가려다 켄마는 자신의 옷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쇼요 냄새 안 배겼겠지? …잘 모르겠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마을 도서관이다.
걸어가는 도중 쿠로오와 마주친 켄마의 몸이 굳어졌다. 뭐라 설명하지. 찾았을 건데. 장래에 일족을 이끌 쿠로오는 유난히 켄마를 챙겼다. 부모님끼리 친분이 있기도 하고, 이웃사촌이기도 하고, 성격 상 소외되다시피 있는 켄마를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이유다. 어찌되었든 쿠로는 눈치가 빠르다.
"찾았잖아, 켄마. 어딨던 거야?"
"…숲에."
"숲?"
"응, 숲."
쿠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응, 그래?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쿠로오는 잠시 켄마를 응시하다 나중에 보자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아, 책. 자신이 달려가던 이유를 상기시킨 켄마는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
조심스레 어제의 그 장소로 걸어갔다.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켄마는 갑자기 앞에서 뭔가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푹신한 꼬리에 앉은 켄마는 튀어나온 뭔가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앞에는 히나타가 서 있었다.
"안녕, 켄마!"
"…안녕, 쇼요."
어김없이 주변에 병마를 매달고 다니는 히나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는 건지 해맑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병마를 보니 어제보단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숲은 여우들의 기운이 넘쳐나니까. 켄마가 납득하고 있을 때 히나타가 공을 내밀었다. 물끄러미 공을 보자 쇼요는 활기차게 외쳤다.
"어제 거 또 하자!"
*
"좀만 쉬었다 하자, 쇼요……."
몸도 안 좋으면서 지치지도 않는 걸까. 켄마는 나무에 기대 숨을 몰아쉬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쿠로랑 놀 때도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다고…….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켄마는 땅바닥에 난 풀을 뽑았다. 히나타는 뭐야, 뭐야, 하며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켄마를 보더니 따라 뽑기 시작했다. …쇼요, 너는 뽑을 필요없는데. 뭐…, 상관없을려나. 양 손에 한 웅큼 풀을 쥔 켄마는 병마를 노려 보았다.
"쇼요, 이건 우리 일족들만의 풍습인데 말야……. 그러니까 친한 사람한테는 이 숲의 풀을 뿌려 주는 거야."
말이 되지도 않는 소리지만 어젯밤부터 끙끙거리며 지어낸 변명을 한 켄마는 히나타에게 풀을 뿌렸다. 우와와, 감탄하던 히나타도 켄마에게 풀을 던졌다. …글쎄, 나는 괜찮은데. 어색한 표정으로 쇼요의 주변을 보니 몇 명은 줄어들어 있었다. 다행이다, 효과가 있어서. 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요즘 자꾸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으응, 그냥……."
풀밭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던 쿠로오가 공기놀이를 하던 켄마에게 물었다. 어물쩍 대답한 켄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만나는 시각까지는 아직 멀었다. 쇼요,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아, 놓쳤다. 돌멩이에 손을 맞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딱히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쇼요를 만나고, 배구도 하고, 병마도 쫓아내고. 어느 정도 세력이 약해진 병마는 켄마가 잡아 먹을 일만 남았다. 그나저나 병마가 없어지면 쇼요는 건강해지겠지? 켄마의 귀가 축 늘어졌다. 헤어지게… 되는 걸까.
"앗, 켄마!"
어김없이 먼저 나와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히나타가 손을 붕붕 흔들며 켄마를 맞았다. 평소라면 바로 공을 가지고 놀았겠지만 오늘따라 쇼요의 분위기가 달랐다. 어라? 혹시 부작용이라던가? 켄마는 얼굴을 굳혔다. 역시 어른들의 도움없이 자신이 해결하려고 했던 게 쇼요한테 독이 된 걸까.
"있지, 나 몸이 점점 건강해져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나 봐."
"……응, 그렇구나."
히나타는 훌쩍였다. 켄마는 바닥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들어 히나타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또 만나자, 그리고 같이 또 배구하자."
"……응."
켄마는 살짝 웃으며 가져왔던 둥근 물체를 히나타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울음과 같이 나온 목소리에 맛있는 거야, 라고 대답했다. 나만 먹어도 돼? 히나타가 조심스레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의 입에 그것이 들어갔다. 몇 번 씹는가 싶더니 쇼요가 잠들었다. 쿠로한테 사정을 얘기하고 부탁한 망각제였다.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켄마는 눈을 감았다. 몸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언제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뒤 눈을 떴다. 벌벌 떨고 있는 병마가 보였다. 크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꿀꺽.
*
켄마는 몸을 웅크린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다. 쿠로의 실력은 확실하니 쇼요는 나를 잊었겠지. 그 생각이 들자 움직이기 싫어졌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렸다. 힐끔 문 쪽을 응시하니 쿠로가 서 있었다. 뭐야, 쿠로. 추워. 문 닫아.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쿠로는 닫을 생각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짐 싸, 켄마."
"…짐?"
"응. 아버지 명령으로 인간들 사회에 나가게 되었거든. 몇 명 데려가는데, 거기에 너도 포함."
"…귀찮아."
그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쿠로오가 진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인간들 사회에 있다 보면 언젠가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그 꼬맹이."
눈이 번쩍 뜨였다. 쇼요를, 다시, 만나?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갈래, 쿠로. 쿠로는 짐이나 어서 싸라며 밖으로 나갔다. 벽장에서 가방을 꺼내 간단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쇼요, 다시 만나자. 그리고 또 배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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