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카게히나]잿빛 하늘, 그리고 인연

하이큐 | 2014. 6. 23. 01:19
Posted by 물빛녘

지언니와 둘이서 하는 하이큐 전력 글연성 60분

※카게히+이와오이 

 

[하이큐/카게히나]잿빛 하늘, 그리고 인연

written by. 티토

 

 

 뭔가 이상한데. 카게야마는 손을 하늘로 뻗었다. 파랗다. 아니, 흐린가. 맑고 선명한 하늘임이 분명한데, 무언가 필름을 덧씌운 것처럼 회색빛으로 보이는 듯 했다. 눈을 비벼 다시 하늘을 봐도 선명한 푸른빛이다. 아니, 잿빛이다. …어쩌자는 거야. 카게야마는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피곤해서인가. 뒷목을 긁적였다. 

 

 불안하다. 빨리 집에 가야겠는걸. 카게야마는 입가를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거 맞겠지. 카게야마는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졌다. 역시 이 때가 제일 좋아. 자신의 등에 힘을 집중했다. 파악, 하는 느낌과 동시에 검은 날개가 튀어나왔다. 만족스럽게 자신의 까마귀 날개를 보던 카게야마는 누군가 이것을 봤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주황색 머리의 남학생이 자신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것도 부활동에서 마주치는 동료가. 정확히 말하자면 카라스노 고등학교 1학년 히나타 쇼요, 라는 남학생이.

 

 기절시킬까, 협박할까, 기억을 조작할까.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정작 카게야마가 택한 것은 도망이었다. 날개짓을 해 단숨해 상공으로 날아간 카게야마는 자신의 집 쪽으로 황급히 향했다. 분명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울창한 숲이 보이자 카게야마는 속도를 줄여 아래로 내려갔다.

 

"토비오쨩, 오늘은 늦었는걸!"

 

"평소랑 비슷한데요."

 

 카게야마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랬더니 앞의 사내는 히죽 웃었다. …정말,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오이카와를 힐끔 보다 가방을 나무 밑에 내려 놓았다. 오이카와는 연신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왠지 이런 거 해야 할 거 같은 상황 아니었어? 늦은 귀가를 탓하는 마마쨩!"

 

"아니다, 바보 오이카와."

 

 나무 위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신랄한 어조로 대꾸했다. 이와이즈미의 반박에 오이카와는 자신의 날개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 손으로 돌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와쨩, 너무해."

 

"시끄러."

 

 또 시작이구나. 카게야마는 담담하게 그 상황을 외면했다. 늘상 있는 일이니만큼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머리가 차분해지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히나타 녀석이 봐 버렸다. 그것도 날개를 꺼내는 장면을.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도망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대화라도 시도해볼걸 그랬다.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어쩔 수도 없고. 일단 기억조작은 제쳐둬야 하나. 조작하려는 기억이 과거가 되면 될수록 시공간이 뒤틀려 버리기 쉽상이다. 젠장할.

 

"그나저나 토비오쨩은 정말 재밌다니까. 까마귀니까 까마귀 학교에 간다니!"

 

"까마귀 학교가 아니라 카라스노인데요."

 

"뭐 어때. 까마귀 들어가잖아."

 

 …굳이 까마귀라서 들어간 것도 아닌데요.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어쨌든 까마귀잖아,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카게야마는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위에 앉았다.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지한 눈빛이 자신을 향하자 침을 꿀꺽 삼켰다.

 

"카게야마, 너 학교서 뭔 일 있었냐?"

 

"……아뇨."

 

"앗, 토비오쨩! 뭔가 있었구나!"

 

"시끄럽다고, 오이카와, 바보 자식아."

 

"으우, 너무해, 이와쨩!"

 

"너무한 건 너다."

 

 부부만담은 적당히 해주셨으면 하는데.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올려는 것을 간신히 누른 카게야마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어떡하면 좋으려나. 온통 뒤섞여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분명했다. 오이카와에게 일침을 가한 이와이즈미는 다시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있었어?"

 

"……들켰어요."

 

"에, 뭐를?"

 

 저 까마귀는 지치지도 않는 구나. 절로 감탄이 나오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카게야마는 입을 헤, 벌렸다. 오이카와가 날개짓을 해 카게야마의 옆에 앉았다. 카게야마의 볼을 잡아당기며 오이카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까마귀인 거 들킨거야? 에에, 토비오 쨩, 허술해."

 

"넌 좀 닥쳐라, 오이카와."

 

"이와쨩은 내 엄마예요?"

 

 그 말과 동시에 오이카와를 향해 솔방울 여러개가 날라왔다. …여기 소나무가 있었던가. 대체 어디서 공수해 온 걸까.

 

"으악, 이와쨩, 잔소리쟁이!"

 

"니, 남편이다. 이 자식아."

 

"폭력 반대! 후에엥, 토비오쨩, 마마쨩이 이렇게 가정폭력 당하면서 살아."

 

 대체 언제 제 어머니로 등극하신 겁니까, 오이카와상. 카게야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엉겨붙는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찡얼거리던 오이카와는 돌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적응 안 돼. 이와이즈미를 힐끗 보니 그 또한 심각한 표정이었다.

 

"있지, 토비오쨩. 우리가 누구게?"

 

"까마귀요."

 

"정확히 말하면 요괴의 한 부류지."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의 대답을 정정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와이즈미의 말을 긍정했다. 요괴, 라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다. 그게 지금 왜 나온 걸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딱히 나오는 건 없었다. 결국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오이카와는 자세를 바로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는 필요 없잖아. 그저 어느 순간 쨘, 하고 태어나는 게 우리. 인간으로 둔갑할 수도 있지. 그런데 말야, 그거 알고 있니?"

 

 카게야마는 침을 삼켰다. 오이카와는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차분한 음성이 카게야마의 귀로 들어왔다.

 

"우리가 까마귀로 돌아오는 걸 아무도 볼 수 없어. 이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볼 수 없다? 그럴 리가. 분명 그 녀석은 자신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못 볼 수도 있어. 왜냐면 자신은 태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까마귀니까. 그렇다면 뭘 보고 그렇게 놀란 거지. …대체 그 녀석은 뭐야? 혼란스러워 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입을 달싹하더니 와하하, 웃어버렸다. 옆에서 이와이즈미가 혀를 차며 오이카와를 흘겨보았다.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있지, 토비오쨩, 하늘이 어떻게 보여?"

 

 어떻게, 냐니. 카게야마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랗다. 아니, 회색빛이다. …대체 어느쪽? 고개를 갸웃하자 오이카와가 킥킥 웃음소리를 냈다.

 

"잿빛이지? 그건 말야, 토비오쨩이 신부를 맞을 때가 되어서 그렇답니다! 힘이 불안정해서 그런 거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질문! 그 사람은 어떻게 토비오쨩이 변하는 걸 봤을까요?"

 

"정답, 헛것을 봤다."

 

 오이카와가 연극조로 고개를 내저었다.

 

"땡, 틀렸습니다. 자, 이와쨩, 정답은?"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혀를 찼다. 명백히 귀찮다는 반응에 오이카와가 입을 삐죽였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변하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하나는 특출나게 감이 발달한 사람. 다른 하나는 인연."

 

"인연?"

 

 카게야마는 멍하니 반문했다.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박수를 치며 쐐기를 박았다.

 

"들켰다는 그거, 치비쨩이지? 히나타군. 전에 봤을 때, 평범한 감의 소유자였으니까. 그럼 후자네! 우와, 축하해! 토비오쨩이 수컷으로 분류되었으니까 신부겠네! 나랑 이와쨩은 둘 다 까마귀였지만, 토비오쨩은 인간이구나! 뭐, 이젠 까마귀가 될 아이겠지만 말야!"

 

 오이카와의 말을 들은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였다. 히나타, 랑 나랑 인연? 인연이라는 게 뭐더라. 그러니까 운명이었나. 아니, 아닌가. 어찌되었든 히나타가 자신의 신부가 된다? 정말? 걔랑 나랑 잘 지낼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왠지 히나타, 너라면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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