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카게히나]좋으니까

하이큐 | 2014. 9. 28. 23:40
Posted by 물빛녘

※바렛님이랑 트위터에서 역극한 내용을 토대로(22일 밤~23일 새벽 버닝)

 

 

 

[하이큐/카게히나]좋으니까

written by. 티토


카게야마는 손목시계를 보다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했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지만 자신이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 젠장.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오른쪽 발을 바닥에 구르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라도 해보는 게 좋으려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주황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 왔다. 반가움에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왔냐? 완전 느리잖아, 히나타 멍청아!"


"갑, 갑자기 부른 건 너잖아! 그래서 무슨 일이야?"


헥헥 숨을 몰아쉬며 카게야마의 앞에 도착한 히나타는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간만의 휴일이라 늦잠을 잤는데, 그것때문에 메일을 좀 전에 막 확인했단 말야. 약속을 잡으려면 며칠 전부터 말해 달라고. 간신히 속 마음을 삼켰다. 분명 이 말 하면 또 화낼 거야. 히나타의 말에 당황하는가 싶더니 뭐라 중얼거리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이 빨갛다. 어디 안 좋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나와서 화가 났다거나? 전자라면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야하고, 후자라면……, 오, 세상에나. 내 머리 무사할 지부터 걱정해야겠다. 늦게 확인했다고 해도 늦은 건 늦은 거고. 물론 그 약속이 일방적인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배구화나 보러 가자."


"배구화? 너 저번에도 샀잖아. …연습, 많이 하네."

 

그러고보니 최근 카게야마의 신발이 잘 닳곤 했었지. 연습, 많이 하는구나. 나도 따라갈려면 열심히 해야하는데. 분명 같이 연습하는데도 따라갈 수가 없는 느낌이야. 히나타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따라잡고 싶어. 같이 뛰고 싶어. 나란히 앞을 보며 걷고 싶어. 이런 자신의 마음은 카게야마는 알까. 뭐, 저 배구 바보는 또 배구나 하러 가자며 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오늘 복장이 배구하기에는 알맞지는 않은데 말야. 정말로 배구화를 사러 갈 기세인 카게야마의 팔을 황급히 붙잡았다.

 

"어, 음, 잠깐! 배구도 좋지만, …밥부터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그래. 그래서 먹고 싶은 건 있냐?"


먹고 싶은 거? 히나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먹고 싶은 거라.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카게야마가 뭘 좋아하더라? 아, 그래, 카레! 카레 좋아한다고 한 것 같은데. 카레, 나도 좋아하니까, 카레 먹자고 할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레 먹으러 가자. 너 카레 좋아한다 했잖아."

 

"카레? 나야 좋지만, 너는 괜찮냐?"

 

"응? 나, 카레 좋아해! 가자, 가자! 어디 맛있는 데 알아?"

 

카게야마가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꽤나 화려한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소박하다고 볼 수 있는 가게였다. 뭔가 의외다, 싶으면서도 역시 카게야마랑 어울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뚫어져라 간판을 보고 있으니 카게야마가 정말 카레로 괜찮냐고 물었다. 아, 글쎄, 괜찮다니까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저기 자주 가 본 곳이야?"


"어. 가족들이랑 종종. 다른 데 가고 싶으면 빨리 말해."


"카레 먹자! 가자!"


"야, 잡아 끌지 마! 그렇게도 배고팠냐?!"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족들이랑 종종 가는 곳이라. 단골이라는 건가? 카게야마가 단골인 가게에 같이, 라. 아, 뭔가 미묘한 기분. 애써 그 기분을 감추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때가 일러서 인지 가게 내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카게야마는 가까이 온 점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오오, 진짜 뭔가 단골이라는 느낌!


"오랜만이구나, 욘석아! 이쪽은 친구냐?"


"아, …네, 뭐. 부활동 같이 하고 있어요."

 

"부활동이라면 배구? 열심히 하는구나. 그래, 뭐 먹을 거냐?"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히나타는 메뉴를 쭉 훑어 보았다. 으음, 뭐가 맛있으려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카게야마는 메뉴판을 흘깃 보더니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라고 말했다. 아, 진짜 뭐 먹어야 하지. 심각한 표정으로 메뉴를 보던 히나타가 손을 들어 말했다.


"저, 저도 카게야마랑 같은 걸로 부탁드려요!"


점장님은 히나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부엌으로 가셨다. 아, 뻘쭘해. 들었던 손을 슬며시 내리며 눈 앞의 카게야마를 응시했다.


"여기 얼마나 자주 왔어?"


"한달에 두번 정도? 가족들이 카레 좋아하니까. 너네는 외식하면 주로 어디 가는데?"


"음, 외식은 잘 안 하지만 주로 가츠동집? 가끔 레스토랑도 가지만. …레스토랑 불편해."

 

"아, 그렇네. 칼질 어렵고. 우리 집도 어머니께서 음식하는 거 좋아하셔서 카레 먹으러 오는 거 아니면 잘 안 나가."

 

카게야마가 유리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평소 배구 얘기만 하다보니 이런 얘기는 꽤나 신선했다. 히나타는 눈을 반짝이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뭔가 조금은 친해졌다, 라는 느낌. 이런 얘기를 해봤자 얼마나 친해지겠냐만은 그래도 평소와는 조금 다르니까. 이것도 이것나름대로 좋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알고 싶어.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헤에, 너네 어머님 요리 잘 하셔? 먹어 보고 싶다. 아, 나왔다."


카레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우와, 맛있는 냄새.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어 한숟갈 뜬 뒤 입 안에 넣었다. 카레 특유의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여기 진짜 맛있잖아? 우물우물 씹으며 카게야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잘 하셔. 먹어 볼래?"


"엣,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친구 데려온 적 없어서 호들갑 떠실 테니까."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 카게야마는 카레를 입 안에 넣어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정말 가도 되는 건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진짜 놀러 가도 되는 걸까? 카게야마네 집! 가고 싶어! 언제 시간이 되더라? 역시 부활 없는 날이 좋겠지.


"일요일에 가도 돼?"


"응. 그럼 내일 온다고 말씀드린다. 아, 뭐 먹고 싶은 건?"


헉, 진짜 가도 되는 거야? 눈을 크게 깜빡였다. 카게야마의 모습을 보니 딱히 거짓말하는 것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 진짜 가도 되는 거야? …그나저나 내일? 아, 내일 일요일이지. 마음의 준비도 안 됬는데 내일이야? 그렇지만 빨리 가보고 싶다. 카게야마 어머님 음식도 맛보고 싶고, 카게야마 방도 보고 싶고. 어떻게 꾸며져 있으려나. 카게야마 방이면 뭔가 심플할 것 같은 느낌인걸. 아, 빨리 가고 싶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면 나츠랑 무슨 옷 입고 가는 게 좋을지 의논해볼까.

 

"음, 카레도 좋고, 계란밥도 먹고 싶고."

 

"카레는 지금 먹잖아. 계란밥으로 말씀드려 놓는다."

 

카게야마는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마지막에는 경쾌하게 탁, 하고 화면을 찍었다. 메일, 보낸 건가. 빨라! 아직 이쪽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그나저나 정말 민폐는 아닌 걸까.

 

"정말 가도 괜찮아? 민폐 아냐?"

 

"아냐. 괜찮다고 메일 보내셨어."

 

오히려 친구 데려온 적 없어서 반기실 거라니까. 카게야마가 카레를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흘긋 액정화면을 확인하더니 덧붙였다. 히나타는 카레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츠랑 입고 갈 옷을 의논해보는 게 좋겠어.


한동안 둘 다 말없이 카레만 먹었다. 내일 집에 놀러가서 뭐하면 좋으려나. 아, 어색하게 앉아있다 오는 건 아니겠지? 보드게임이라도 들고 갈까? 아, 근데 그건 또 4명이상 하는 거잖아. 아, 게임이라도? 게임 좋아하나? 으으, 뭐로 하지. 그나저나 아까 카게야마가 뭐라 했지? 친구 데리고 온 적 없다고? 내가 처음?! 으아아, 정말?!


"카게야마, 너 진짜 아무도 데려 간 적 없어?"


"응."


세상에나. 그럼 내가 처음이라는 거잖아.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어, 근데 그러면?

 

"카게야마, 너, 친구들이랑 놀러 다닌 적도 없어?"

 

"…딱히. 배구공만 있어도 재밌으니까."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내가 책임지고 놀아주지! 배구는 무지무지 재밌지만, 그 외에도 재밌는 게 많다고!"

 

카게야마가 다 먹은 것을 확인한 히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난 카게야마는 점장님께 인사를 드린 뒤 히나타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친구랑 놀러 다닌 적이 없다고 했으니 어디가 좋으려나. 히나타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장소를 물색하고 있을 때 옆에서 멀뚱히 서 있던 카게야마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 거 없으면, 배구화 사러 가자. 배구도 하고."


"안 돼. 배구도 좋지만, 오늘은 다른 거 할 거야! 좋아, 결정했어! 가자, 카게야마!"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게임센터였다. 시끄러운 내부에 카게야마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히나타는 게임 하나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었다. 농구 게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하자. 이왕 하는 김에 뭐 걸고 하자. 음, 돈은 좀 그러니까, 소원 내기.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야."


"좋아. …그래서 저거 공 넣으면 된다는 거냐."

 

그렇지. 가볍게 대꾸하며 히나타는 게임기에 동전을 넣었다. 먼저 해. 살짝 옆으로 비켜서며 카게야마에게 말하자 카게야마가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능숙하게 폼을 잡는가 싶더니 연신 골에 성공. 어, 어라, 얘 농구 했었어?! 입이 쩍 벌어졌다. 질 것 같은데?! 카게야마의 차례가 끝나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히나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공을 잡았다. 몇 개는 빗나가고, 몇 개는 들어가고. 결국은 져버렸다. 아, 져버렸다. 침울하게 카게야마를 보며 소원을 물었다.

 

"나중에. 이따가 공원에서 하고 싶은 말 있어."

 

"…응? 응, 그래. 그나저나 너 되게 잘 하네. 농구 했었어?"

 

"…체육 시간에 배운 것 정도?"

 

아, 그냥 타고 난 거였구나. 부러운 자식. 입을 삐죽이며 아쉬운 마음으로 농구공을 바라보았다. 다음번에는 안 질테다. 이제는 무슨 게임을 할까. 물어보기 위해 카게야마를 보니 무언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지? 어, 총게임? 아, 저거 좀비 죽이는 게임이었던가. 할래, 라고 물으니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나 이 게임 잘 못 하는데. 동전을 넣고 총을 잡아 들었다. 카게야마 또한 자신을 따라 총을 잡았다. 그러고보니 카게야마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지. 설명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카게야마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니 게임기 한편에 붙은 종이가 보였다. 뭐라 적혀 있는 거지? 어, 그러니까 2인 합산 점수로 1등은 비싼 게임기, 2등은 여행티켓, 3등은 모형총. 상품이 왜 이렇게 비싸?! 뭐야, 뭐지? 그 이유는 랭킹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높잖아!


"이거 누르면 되는 거냐?"


"응. 그거 누르면 좀비 죽일 수 있어. 2인용인데, 1등이 비싼 게임기래."


그러냐, 라고 카게야마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비싼 게임기라는데, 역시 카게야마는 배구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건가. 역시 저 녀석답다니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좋아, 일단 해보자. 이왕이면 순위에 드는 것도 좋지만, 재밌는 게 우선이니까. 그래도 일단 목표는 정상이다. 게임 스타트가 뜨고 나서 좀비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으, 징그러.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서 버튼을 눌렀다. 카게야마를 보니 꽤나 선전하고 있었다. …아니, 나보다 훨씬 잘 해. 뭐야, 혼자 와 본 거 아냐?!

 

"이거 제한시간 있는 거?"

 

"응? 아니, 체력만 버텨주면 계속 할 수 있어. 나는 곧 죽을 것 같지만…." 

 

"하? 벌써? 너 경험자잖아."

 

"경험자라고 해도 난 잘 못 하는걸. 그나저나 너 되게 잘 한다. 으악, 카게야마, 좀비, 좀비!"

 

"야, 이, 멍청아, 시끄러! 소리 안 질러도 알거든?!"

 

"윽, 미안. 그나저나 우리 곧 있으면 순위권 진입할 것 같아! 아, 나 죽었다."


게임오버가 뜬 것을 확인한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능숙한 포즈로 좀비를 쏘고 있었다. 오, 순위권 진입! 조금만 더 하면 3등이야! 흥분하며 게임화면을 응시했다. 곧 죽긴 했다만 3위 기록. 3위면 모형 총이었나. 카운터에 가서 모형총을 받아온 카게야마는 들고 있던 모형총을 히나타에게 건넸다. 어라? 눈을 크게 깜빡이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어? 이거 나 주는 거?"


"응, 나 필요없으니까."


"우와, 땡큐! 아, 그나저나 너무 늦은 거 같다. 이제 나가자."


언뜻 눈에 들어온 시계가 꽤나 늦은 시각을 알리고 있자 히나타는 고개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왔다. 집에 가야지. 인사를 건네기 위해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잠시 딱딱한 표정으로 히나타를 마주 보더니 히나타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로 가기 시작했다. 으악, 얘 어디 가?! 야, 너무 빠르잖아. 스텝이 뒤엉켰다.


"야, 천천히!"


"아, 미안."


"어디 가는데?"


"소원."


소원? 아, 공원 간다고 했었나. 무슨 얘기를 하려고 공원까지 가는 거지. 아까보다는 확연히 느려진 카게야마의 발걸음에 혼자 킥킥 웃으며 뒤를 따라갔다. 역시 어둑어둑해져서인가 공원 내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 으슥한 곳으로 걸어 간 카게야마가 발걸음을 멈췄다. …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으으, 긴장되잖아. 마른 침을 연신 삼키던 카게야마가 결정했다는 듯이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한없이 깊었다.

 

"평생 내 토스를 쳐라, 히나타."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온 뜬끔없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잠깐만. 토스? 평생? 평생이라는 건 어떤 의미? 평생이라는 건 계속 함께라는 거잖아? 계속 같이 배구하고 싶다는 걸까? 하지만 갑자기 새삼 왜? 같이 전국까지 간다고 이미 약속했었잖아?

 

"그거, 어떤 의미?"

 

"말 그대로의 의미. 네 녀석한테 토스할 수 있는 건 평생 나뿐이었으면 좋겠어."

 

어둠 사이로 보이는 카게야마의 볼이 붉다고 느껴졌다. 아, 그렇구나. 얼굴에 열이 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네 토스가 좋아."


평생 너가 올려 준 토스에 스파이크 치고 싶어. 이 말은 내뱉지 않았지만 카게야마라면 분명 알아줬을 거야. 카게야마가 손을 뻗어 내 볼에 살짝 얹었다. 싫으면 밀어내라는 말과 함께, 카게야마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눈을 살며시 감았다. 맞닿은 입술이 뜨거웠다. 무언가 말캉한 것이 치열을 훑는 것 같았다. 아, 녹아 내릴 것만 같아. 한손은 모형총을 들고 한 손은 카게야마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서 있었다. 숨이 찼다 싶을 때 카게야마의 입술이 떨어졌다. 약간은 번들번들해진 카게야마의 입술이 눈에 띄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카게야마에게 안겼다.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으으, 나 변태인가 봐. 좀 더 해줬음 좋겠어.


"으, 부끄러워."


"벌써 부끄러우면 어떡해. 자주 할 건데."


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자주 할 거라고? 이거? 하기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이걸?!


"좋아하면 이런 것도 하고 싶은 거잖아."


그건 그렇다지만…! 다시 카게야마의 얼굴이 다가왔다. 입술이 마주치고 비비적 거리던 입술 사이로 카게야마의 혀가 또 다시 치열을 훑기 시작했을 때, 모형총을 든 손에 힘이 빠졌다. 결국 모형총은 손에서 떨어졌다. 두 팔을 들어 카게야마의 목에 걸쳤다. 혀를 무언가 말캉한 것이 감쌌다. 순간적으로 놀라 뒤로 떨어지려 하자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농밀한 입맞춤이 오고 갔다. 

 

"…흠!"

 

이젠 무리. 숨막혀! 카게야마의 목을 감싼 팔을 내렸다. 두 손으로 어깨를 살짝 밀자 카게야마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숨 막혀."

 

"…코로 숨 쉬면 되잖아. 그나저나 한 번 더 할까."

 

"…. …너 이때까지 어떻게 참았어?"


"한 번 시작하니까 못 참겠어."


정말. 발뒷꿈치를 들어 카게야마의 입술에 살짝 맞춘 뒤 뗐다. 뗐다고 해도 카게야마가 다시 입술을 부딪혀 왔다만. 계속 쪽쪽거리던 녀석이 떨어졌을 때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 정말. 나 이거 첫키스였단 말야. 더는 무리. 심장 터질 거 같아."


순순히 그만두는 건지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 왠지 편안해.


"너, 좋은 냄새 난다."


…이 말만 아니었다면. 오늘 아침에 황급히 씻고 나왔는데.

 

"야, 너, 빨, 빨리 치워."

 

"하아? 왜? …아, 너무 늦었나."

 

힐끔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카게야마가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늦었지. 통금시간은 없긴 하다만 부활 없다는 거 알고 계시니 조금 걱정하시려나. 잔디밭 위에 떨어진 모형총을 주워 든 카게야마가 고개짓하며 말했다.

 

"가자. 데려다 줄테니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카게야마를 쫓아 옆에 나란히 섰다.


"다음 번엔 내가 데려다 줄게!"


"됐거든. 너, 잡혀가기 쉬울 것 같아."


"너, 나 무시한 거지?!"


이래봬도 고1이거든? 사탕 준다고 따라갈 나이는 아니라고! 히나타가 모형총으로 카게야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좋은 생각났어. 카게야마와의 거리를 살짝 띄웠다. 퉁명스런 표정에서 의아함이 담긴 표정으로 바뀐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는 짓궂게 웃으며 총 쏘는 포즈를 잡았다.


"쏜다, 꼼짝 마라!"


잠시 멍한 표정으로 히나타를 보던 카게야마가 덤덤한 표정으로 살짝 팔을 들어 항복 의사를 표하는 듯한 포즈를 지었다. 아, 정말. 그와 동시에 히나타가 끅끅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저거 맞춰 준다고 그러는 거지? 엉성하긴 하지만. 아, 어떡해. 카게야마가 너무 좋아 미치겠어.



 

※오이카게, 이와오이이와, 이와쿠니?, 스가카게 캐붕8ㅅ8

왜 이렇게 컾이 많이 들어간 걸까...?


 

 

[하이큐/오이카게/이와오이/이와쿠니/스가카게]짝사랑

written by. 티토



좋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을 보면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고, 심장이 두근두근 세차게 펌프질을 한다던가. …그거 살 수는 있는 걸까.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데 살 수는 있나. 그건 너무 비약적인 건 아닐까. 아마도 내가 그 기분을 깨닫게 될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사람의 미래는 함부로 단정지을 게 못되는 건가 보다. 자꾸 눈은 그를 쫓고 있었으니까. 그의 어떤 모습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듬직한 선배라 그랬던 것일까 고민했지만 그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한 가장 큰 마음은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 였으니까.


애석하게도 첫사랑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의 소꿉친구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그가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미워졌다. 내가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당신은 받고 있는데, 왜 오이카와상 당신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거냐고. 운명의 장난인 건지는 몰라도, 오이카와상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자신의 중학교 동창이자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던 카게야마였다. 뭐, 그 녀석이라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


아직도 기억난다. 이와이즈미상도, 나도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부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끊임없이 '토오루'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차마 부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지 얼마되지 않았던 그날, 나는 무언의 거절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 라고. 아아,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숨죽여 울었다. 나중에 킨다이치가 울었냐고 물었을 때, 바보같이 눈썹이 자꾸 눈을 찔러서, 라고 변명해버렸다. 이런 변명을 하게 될 지는 몰랐는데.


차라리 둘이 잘 된다면 이와이즈미상도 조금은 주변을 돌아봐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오이카와상을 도와 카게야마에게 연애감정을 자각시켜보려 했지만 역시 왕은 연애감각도 남다른 건지 결국 자각실패로 끝났다. …도움이 안 되요.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을 전할 생각은 없었다. 비겁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힘들 때, 다가가 위로해준다는 어설픈 작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무서웠다. 내가 마음을 전했을 때, 차인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보지? 같은 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어색하게 된다면? 그런 상황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와 이어지고 싶다는 것과 같은 큰 것은 이제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를 돌아봐주지 않는 오이카와상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카게야마와 이어주려 할 때​는 언제고. 중학생 때는 그저 이와이즈미상이 나를 봐주셨으면 좋겠었는데, 이제는 누구의 옆에 있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곁에 설 수 있다면 더 행복하겠지만. 아마 그 때는 심장이 터져버릴 거야.

 

"쿠니미쨩."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나를 오이카와상이 불렀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니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지금 좀 껄끄러운 사람인데. 앞으로 걸어가자 오이카와상이 말했다.

 

"리시브 연습 도와줄까?"


"아뇨, 괜찮은데요."


"응, 이라고? 자자, 그럼 연습할까?"


…내 의견은? 빙글빙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상이 얄미웠다. 정말 저 사람은 이와이즈미상의 말을 가져오자면 경박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와이즈미상은 그를 좋아하는 걸까. 도대체 저 사람의 어디를 보고? ​같은 중학을 나왔지만 역시 이유를 모르겠다.


"…알고 계시죠?"


"응, 뭐가?"


공을 공중에 띄우던 오이카와상이 공을 잡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아, 역시 보이는 그대로가 다는 아니구나. 새삼 그리 느꼈다. 이 사람은 어딘가 뒤틀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경기에서는 믿음직한 선배였다. 알 수 없는 사람. 주먹을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하기야 내가 그에 대해 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이 알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오이카와상의 모습을 이와이즈미상은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 왠지 모르게 진 기분이 들었다.


"이와이즈미상 얘긴데요."


"아, 이와쨩? 응, 알고 있어."


다시 공중에 공을 던지며 오이카와상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그 마음을 외면하는 거죠?


"쿠니미쨩, 생각해 본 적 있어? 짝사랑하는 사람의 부류."


"딱히 없는데요."


"첫번째 부류, 좋아하는 사람이 그저 행복하길 바란다. 두번째 부류, 그의 옆에 자신이 있기를 원한다. 세번째, 행복하길 바라다가 조금씩 욕심을 가지게 된다. 네번째, 그의 옆에 있기를 소망하다 그 마음을 접고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뭐, 나 혼자서 정해본 거지만. 이와쨩은 첫번째 부류이겠고, 쿠니미쨩은 마지막에 속하려나. 예전에 나랑 토비오쨩 이어주려고 했던 적 있었지?"


"…사람을 그렇게 나누는 취미는 없는데요."


퉁명스럽게 대꾸한 내 말에 오이카와상이 웃음을 터트리셨다.


"쿠니미쨩은 이와쨩한테 자신의 마음을 전해보려는 생각해 본 적 있어? 이와쨩은 나한테 단 한 번도 좋아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거든. 그래서야. 그래서 모른 척 중.​ 이와쨩이랑 나는 꽤 오래된 친구 사이니까 말야. 이와쨩도 이 관계가 깨지길 바라지 않고."


오이카와상이 공을 내게 가볍게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기지개를 쭉 편 오이카와상은 말을 이었다.


"나도 이와쨩이 좋아. 하지만 이와쨩이 내게 가진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겠지. 이런 상태에서 받아준다는 것은 오히려 상처가 되는 거라구. 상처받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카게야마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신 건가요?"


"에, 글쎄. 나도 몰라. 쿠니미쨩도 그렇잖아?"


바구니에서 공을 하나 든 오이카와상은 공을 빙그르르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공을 허공에 띄우더니 달려나가 그대로 풀 스윙. 점프 서브를 선보인 그는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곳을 보고 있더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마치 불길함을 느끼고 있는 양 서글펐다. 아마 오이카와상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느 여름날,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른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게 그가 속한 팀에서, 그와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는 사람의 영향이라는 것을.



 

[하이큐/츠키카게]우산 아래

하이큐 | 2014. 9. 14. 22:50
Posted by 물빛녘

※하이큐 여름합작(http://ppss03284.wix.com/hq-in-summer)에 낸 글입니다.

 

[하이큐/츠키카게]우산 아래

wirtten by. 티토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장마인가. 아무래도 며칠째 내리고 있는 터라 눅눅한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아, 젖는 건 싫은데. 츠키시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는 날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조금은 젖게 되어 있었다. 바람 때문에 빗줄기가 대각선으로 와 바지가 젖는다든가, 물웅덩이를 밟아 신발이 젖는다든가. 오늘 같은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겠지. 뭐, 큰 것만 피해간다면야 괜찮겠지만. 우산을 고쳐들고 버튼을 눌렀다. ……어라. 분명 좀 전에 잘만 쓰고 왔던 우산이었건만 갑자기 고장이라도 났는지 버튼이 뻑뻑했다. 억지로 누른 버튼은 나오지도 못하고 더 깊숙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걸 어쩌지. 순식간에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우산을 응시하다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저 빗속을 뚫고 갈 엄두는 안 나는데. 머릿속으로 데리러 와 줄 사람을 짚어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일하시고 계실테고, 형은 아마 과제 때문에 늦는다고 했던가. 아, 이제 어쩐다.

 

“너 간 거 아니었냐?”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아직까지 교복을 입고 있는 카게야마가 서 있었다. 왜 아직까지 교복차림인 거지. 분명 오늘 부활동도 쉬는 날이었다. 남아서 연습을 더 했다거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츠키시마의 시선을 무시하며 현관문 밖으로 걸어 나온 카게야마는 우산을 펴려다 말고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아, 역시 왠지 모르게 이 녀석 불편하다. 츠키시마는 좀 전의 답을 내놓았다.

 

“두고 온 거 있어서 다시 온 거야. 그러는 너는?”

 

“선생님이 도와 달라 하셔서. …너 안 가냐?”

 

카게야마의 시선이 츠키시마의 우산에 닿았다. 츠키시마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한 뒤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고장 났어.”

 

“자.”

 

잠시 생각하는 듯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카게야마가 우산을 펼친 뒤 츠키시마를 향해 손짓했다. ……하? 츠키시마는 안경을 고쳐 쓰고 카게야마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웬일이래. 히나타 녀석이면 성격상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해도 카게야마의 성격상 앙숙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선뜻 우산을 내밀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아냥거리고 으르렁거리는 관계나 다름없는 녀석이 지금 우산이 고장 났다고 하자 씌어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츠키시마의 표정을 본 카게야마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내일 부활 있잖아. 감기 걸리면 곤란해. 그리고 사람이 모처럼 호의를 베푸는데 표정이 그게 뭐냐!”

 

“…그럼 실례.”

 

결국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펼친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높이가 미묘한데.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에게서 우산을 뺏어들었다. 카게야마는 울컥하는 표정이었지만 달리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짓궂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제 좀 높이가 괜찮은 거 같네.

 

조용히 둘이서 교문을 나섰다. 어색하다. 그렇지만 달리 꺼낼 말도 없었다. 원래부터 카게야마와 자신의 사이는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시시덕거릴 사이는 아니었다. 빗소리, 차 경적소리,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부활동이 없는 날이었던 지라 남아있는 학생은 별로 없는 듯 했다. 주변의 소음을 뚫고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언덕밑상점에 들려서 우산 빌려서 가. 코치님께 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아아.”

 

그 말을 끝으로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를 힐끗 쳐다보다 다시 앞을 응시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세차기 그지없었다. 언제쯤 이 장마는 그치려나.

 

“비 많이 오네.”

 

저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카게야마는 살짝 고개를 들어 잠깐 동안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이며 츠키시마의 의중을 파악하려던 카게야마는 이내 그걸 포기한 듯 앞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하다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는지 카게야마가 말했다.

 

“여름이니까. 장마철이잖아.”

 

“…어이, 왕님. 가을에도 장마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름하면 왠지 비, 아닌가.”

 

“더위도 있는데.”

 

“…대화할 의지는 있는 거냐.”

 

카게야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기껏 안 싸우고 대화하려 했더니만. 퉁명스레 중얼거리며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글쎄, 나도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 츠키시마는 담담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건 아닐까. 흘깃 카게야마를 바라보다 어깨에 시선이 미쳤다. …젖고 있잖아. 츠키시마는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생각지도 못한 츠키시마의 행동에 카게야마가 화들짝 놀라 츠키시마를 올려다보았다. 어버버거리는 카게야마를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네 우산인데, 네가 젖도록 할 수는 없잖아.”

 

“…말로 해, 말로.”

 

“네-이.”

 

카게야마가 츠키시마를 째릿 흘겨보며 츠키시마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젖는다니까, 정말. 츠키시마는 우산을 카게야마 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카게야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우산을 뺏어 츠키시마 쪽으로 기울였다.

 

“안 하던 짓 좀 하지 마.”

 

“왕님이야말로 안 하던 짓 하고 있는데.”

 

“……야, 다 젖는다.”

 

서로 뺏어서 상대방 쪽으로 기울여주다보니 어깨 한쪽이 젖어버린 상태였다. 멈춰 서서 시선을 맞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 동시에 앞을 바라보았다. 츠키시마는 자연스레 우산을 건네받았다. 그러고 나서 카게야마의 어깨를 잡아 당겼다. 그 탓에 서로의 팔이 부딪혔다. 평소라면 이런 스킨쉽도 싫었을 텐데.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와 닿는 온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스레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아, 장마여서 그래. 자라기 시작한 그 감정을 장마 때문이라 치부해버렸다. 

 

[하이큐/켄카게]전화

하이큐 | 2014. 9. 14. 18:40
Posted by 물빛녘

※카게른 합작(http://lol.ncity.net/tobio/)에 낸 글입니다.

※켄마카게

 

[하이큐/켄카게]전화

written by. 티토

 

켄마는 연습이 끝나자마자 폰을 확인했다. 아, 역시 와 있었다. 손을 움직여 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연습 끝나셨나요. 단순한 메일 내용에 저도 모르게 살짝 웃어버렸다. 확실히 그다웠다. 정중하면서도 꾸밈없는 말투. 매일같이 이 시간만 되면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연습 끝나셨나요, 이제 집에 가시는 건가요, 요전번의 게임―. 단조로운 문장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메일 내용을 확인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는 그가 피곤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고 걱정될 정도로 서로 메일을 주고받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아, 이렇게까지 자신의 생활에 녹아버렸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눌렀다. 응, 방금. …누구보고 단조로운 문장들을 쓴다고 하는 건지. 둘 다 막상막하일지도. 정말 엎치락뒤치락 이잖아. 볼을 긁적이며 옷을 갈아입었다.

 

언제부터 연락을 계속해온 건지 생각해본다면 저번에 있었던 연습경기로부터 며칠이 지난날이었던 것 같다. 먼저 메일 주소를 교환했던 쇼요에게서 메일이 날라 왔었다. 내용이 뭐였더라. 자꾸 부탁해서, 미안, 켄마, 였던가. 처음 봤을 때는 무슨 내용인가 싶었지만 한참 뒤에 날라 온 메일의 주인공을 알고 나서야 쇼요가 사과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카라스노의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라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였던 탓에 아직까지도 그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당황했다고 하기 보단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에 답장을 네코마의 세터 코즈메 켄마입니다, 라고 보낸 자신도 우습긴 했다만. 가벼운 자기소개가 끝나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왔다. 좋아하는 게임이 뭔가요. 최근 하고 있는 게임을 말해주니 잠시 뒤에 생명이 날라 왔다. 그 뒤로 좋아하는 색부터 음악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왜 이런 것을 묻나 싶어 쿠로에게 물어보니 너에 대해 궁금한가 보지, 인기 많은걸, 켄마,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쿠로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결국 직접 물어보니 쿠로에게서 들었던 비슷한 대답이 왔다. 그 날 했던 배구 재밌었다고 좀 더 당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스스럼없는 그 대답에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졌다.


"켄마, 가자."


문 앞에 서서 재촉하는 쿠로오를 힐긋 본 뒤 가방을 챙겨 쿠로오에게 다가갔다. 문을 열고 나서는 쿠로오의 뒤를 쫓으며 폰을 가방 안에 넣었다. 이따가 확인해야지.


"요새 연락 많이 하나 봐? 어떤 얘기 주로 해?"


"어? 응……. 이런저런 얘기."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진중한 얘기. 여러 가지 질문 받았었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그것에 대해 깊숙이 알고 싶지 않았는지 쿠로는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며 편의점을 가리켰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가는 게 어떠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사를 보냈다. 잠시 뒤 편의점에서 각자 하드바 하나씩 입에 물고서 걸어 나왔다.


"공부는 어때?"


"그럭저럭."


"연습은?"


"나쁘지 않아. …쿠로, 명절 때 보는 친척 아주머니 같아."


그런가, 라며 어깨를 으쓱거린 쿠로오는 집 앞에 다다르자 켄마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을 흔들어준 켄마는 자신 또한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오셨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요, 켄마 군. 도움이 필요한데, 잠시 도와줄래요?"


"아, 가방만 방에 놔두고 올게요."


어머니는 생긋 웃으며 부엌으로 사라지셨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아, 맞다, 폰. 지퍼를 내려 폰을 꺼냈다. 메일이 와 있었다. 확인하고 바로 답을 보낼까 하다 이따 느긋하게 확인해야지 하는 생각에 책상 위에 폰을 내려놓고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에 가자 재료를 손질 중이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 켄마 군,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주시겠어요? 오늘 저녁은 샤브샤브랍니다."


켄마는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육수가 끓고 있었다. 식기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고 거실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온 가족이서 티비 시청.
아, 맞다. 연락 온 거 확인해 봐야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폰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 울린다. 갑자기 폰이 웅, 웅, 거리며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누가 있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아.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저편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라, 혹시 전화가 걸린 것을 모르는 걸까. 다시 한 번 소리를 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간은 쭈뼛거리고 있는 것인지 뚝뚝 끊기고 있는 목소리였다.


―여, 여보세요. 늦게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 그런데 무슨 일?"


―어, 음, 저, 그러니까.


자신도 당혹스러운 것인지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가던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답이 늦으시길래, 무슨 일 있으신가 하고.


켄마는 살짝 고개를 돌려 책상 위의 탁상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아, 여자저차 하다 보니 메일이 온 때로부터 3시간가량 지나있었다. 걱정한 건가. 하기야 평소에는 재깍재깍 답을 보내왔으니 갑자기 그러면 놀랐을 지도.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죄송합니다. 물론 답을 바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히나타 녀석이랑 대화하다가 요즘 켄마상이 목소리에 힘이 없다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이만 끊겠습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입을 헙, 하고 다물었다. 아차, 방심했다. 무의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어. 제대로 못 들었는지 '네?'라고 묻는 그가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져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손바닥으로 볼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목소리 듣는 거…… 나쁘지 않아."


오히려 이렇게 목소리 들으니까 좋은걸.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 만나진 못하지만 목소리만이라도 닿았으면 좋겠어. 이런 간질간질한 기분, 사랑이려나. 

 

"…가끔 이렇게 목소리 듣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이큐/오이카게이와]스토커

하이큐 | 2014. 8. 12. 01:03
Posted by 물빛녘

※오이카게, 이와카게



[하이큐/오이카게이와]스토커

written by. 티토


 최근 들어 누군가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일까 싶어 히나타나 츠키시마를 비롯한 모두에게 물어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같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내가 요새 잘못한 게 있었던가. 아니면 과거의 원한? 어찌되었든 기분은 나쁘다.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느낌은 썩 좋지 않다.

 

 시선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개 하굣길에서 모두와 헤어지고 난 뒤. 뒤에서 들려오는 저벅 소리에 발을 바삐 움직이면 발소리의 주인공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리에 멈춰서면 그 또한 멈춘다. 명백히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거다. 기분 나빠. 신경 쓰여. 나한테 원한 있는 사람? 딱히 짚이는 사람은 없는데. 아무래도 워낙 미움을 많이 사는 편이라. …​어쨌든 대체 왜 나를 스토킹하는 걸까. 발걸음 소리는 남자 발소리같은데. …역시 원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아, 역시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모른 척 걸어가다 커브길에서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없어졌나? 힐끔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떨어진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를 보고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오이카와 상이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뭐야, 토비오쨩?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얼굴이 사색인걸? 저번에도 그렇고, 저저번에도 그렇고. 무슨 일인데?"

 

 흘깃 시선을 뒤로 보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없다. 이상한 일이다.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스토커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마치 그곳에 없었다는듯이, 네 착각에 불과한 존재였다는듯이. 꺼림칙한 기분에 몸을 떠니 의아한 표정으로 오이카와 상이 바라보셨다. 

 

"그냥, 뭐​."

 

 어물적 넘기려는 내 반응에 볼을 긁적이시던 오이카와 상이 근처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곤란하다면 저기서 얘기할래?"

 

*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딱히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중학교 선배와 내가 왜 여자들만 올 법한 카페에 앉아 있는 걸까. 귀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제발.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보통 넘어가시던 오이카와 상이 이 정도로 해주시는 걸 보면 내 얼굴이 진짜 하얗게 질려 있었던 걸까. 나름 괴한이 나타나면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서워 했다기 보단 그냥 짜증났을 뿐인데 얼굴이 사색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짜증나면 얼굴이 하얘지나? 혼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니 오이카와 상이 레몬에이드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뭔데? 나, 나름 중학교 선배잖아?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몇 번이고 그러니까 궁금증이 유발되서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자자, 토비오쨩, 무슨 일이야?"

 

 말​해도 되나? 그렇지만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스토커가 사라지는데는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나름 해결책을 주실 거 같기도 하고. 괜

​찮겠지?

"사실은 요즘 누가 따라다니는 거 같아서​."

 

"에, 누가, 토비오쨩을?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근데 그 스토커가 오이카와 상을 만나면 사라지던데요."

 

 오이카와 상이 놀란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놀라실 만도 하지. 저도 좀 놀랐습니다만. 흠, 그런가, 라며 중얼거리던 오이카와 상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문득 불안해졌다.​ 이와이즈미 상의 말에 의하면 이럴 때의 오이카와 상은 뭔가 꾸미고 있다고. 꿍꿍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던데. 찜찜한 표정을 지으니 앞에서 웃고 있던 오이카와 상이 짐짓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칭얼거렸다.

 

"그 표정, 너무해! 난 단지 귀여운 후배를 위해 같이 등하교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같이 등하​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오이카와 상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셨다.

 

"일단 이름모를 스토커가 토비오쨩을 따라다니잖아? 그리고 그 스토커는 나를 보면 도망가고. 그럼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그 스토커가 나를 알고 있어서 들킬 위험을 덜기 위해 도망갔다고. 그렇다면 나랑 같이 다니면 스토커가 안 따라붙을 거라는 거잖아?"

 

"​하지만 그건 오이카와 상께 민폐가 되는 거 같은데요."

 

"에이, 괜찮아, 괜찮아. 귀여운 토비오쨩을 지켜주는 선배라니 멋지잖아!"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해맑게 웃은 오이카와 상은 남은 레몬에이드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그래서 토비오쨩 생각은?"

 

*

 

​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진짜로 안 따라 오는 거 같아. ​물론 오이카와 상이랑 같이 있을 때 한정이지만. 그래도 누구가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하나. 이제 오이카와 상과 같이 등하교를 시작한 지 한 달 즈음 되어가는 거 같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같이 가주시는 수고로움에 뭔가 보답을 드려야 하나 했지만 거절당했다. …본인이 싫다고 하시는데 자꾸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지만 신경쓰이는데. 어떡하면 부담스러움을 덜어드림과 동시에 감사함을 표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봐도 잘 모르겠다. 음, 스가 상께 여쭤보면 되지 않을까.

 

 폰이 울렸다. 짧게 울렸으니 메일이었다. 가방 속을 뒤져 폰을 꺼냈다. 어라. 폴더를 열자마자 보이는 메일주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와이즈미 상? 어라? 평소에 연락이 올 리가 만무한 중학교 선배였다. 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할 말이 있다, 였다. 할 말? …아, 오이카와 상과 관련된 얘기일까. 어쩌지. 잠시 고민하다 확인 메일을 보냈다. 오이카와 상께는 오늘 같이 하교를 못 할 거 같다는 메일을 보낸 뒤 금방 날라온 이와이즈미 상의 메일에 기재된 장소로 발을 옮겼다.

 …신경쓰인다. 정말로 신경 쓰여. 한동안 뜸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 살며시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 길이 보일 뿐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잠시 안을 둘러보니 초조한 얼굴로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와이즈미 상."

 

"아, 왔냐."

 

 이와이즈미 상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뭐 좋아할 지 몰라서 아이스티로 했는데, 괜찮아?​"

 

"아, 네, 감사합니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좋을까. 주저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 이와이즈미 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카게야마, 너…, 요즘 오이카와랑 같이 다니지?"

 

"아, 네."

 

 ​오이카와 상이 말한 걸까. 아니면 어떻게 아신 걸까. 아무리 가벼운 이미지의 오이카와 상이라도 이런 건 쉽게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순간 스토커가 자신을 알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오이카와 상의 가설이 생각났다. ​설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지나친 기우에불과하다. 이와이즈미 상이 어째서 나를?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친한 친구니까 고민상담으로 이와이즈미 상께 말했을 수도 있고. 너무 예민해지지 말자.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잖아.

 

"……​내 기우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조심스레 이와이즈미 상이 운을 띄웠다.

 

"그 녀석, 내 소꿉친구지만 조금… 뭐랄까, 하나에 관심을 들이면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야. …​조심하는 게 좋아.​ …뭐, 믿는 건 자유지만."

 

 그 말을 끝으로 이와이즈미 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덩달아 반쯤 몸을 일으키자 이와이즈미 상이 손을 내저으며 계산은 했으니까 조금 있다가 나와, 라는 말을 하시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자리에 앉아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의문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이카와 상을 조심하라고? 그렇지만 좋은 분이신데. 스토커가 따라 붙는다고 하니까 ​같이 등하교도 해주시고. 앉아서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눈 앞에서 뭔가 쑥 나타나더니 앞자리에 앉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오이카와 상이였다. 해맑게 얏호, 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브이를 그린 오이카와 상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이와쨩이었지? 어휴, 혹시나 싶어서 토비오쨩 뒤를 밟았는데 말야. …소꿉친구라도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사실 중학교 때 이와쨩이 토비오쨩을 좋아했거든. 응,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오이카와 상이 말 끝을 흐렸다. 아, 모든 것은 바로 믿으면 안 되는 건가. 설마했던 가설이 들어맞을 줄은. 여태까지 도움을 주셨던 오이카와 상이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으니 스토커는 이와이즈미 상이라는 거다. ​…뭔가 켕기는 기분인데. 오이카와 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자자, 일단 확실하진 않으니까.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

 

 오이카와 상과는 중간에서 헤어졌다. 터벅 터벅 나 이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방끈을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뭔가 오늘따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뭐가 문제야? 범인은 알아냈어. 그러면 이름을 부르면 놀라서 달아날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발걸음을 빠르게 하자 뒤의 스토커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제가 뭘 잘못했어요? 좋아한다고 이럴 분은 아니잖아요. 이와이즈미 상이라면 뭔가 더 다정하게 해주실​. ​어라?

 

 분명 이와이즈미 상은 나에게 오이카와 상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리를 뜨셨다. 스토커가 원래 지켜 보기만 하던가? 좋아한다면 좀 더 가까이서 보는 걸 원하지 않던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불안에 떠는 게 보고 싶어서? 아니,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실 분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지?​

 

 지금 나를 따라오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뒤에서 무언가 엄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뒷통수에 강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범인을 확인하기 위해 애썼지만 통증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군가 내 몸을 일으켰다. 누구야. 힘겹게 눈을 떠 얼굴을 확인했다. 아.

 

"미안, 미안, 아팠지? 그렇지만 조금 걱정이 되서 말야. 괜찮아, 나랑 같이 가면 안 아플 거야. 계속 나만 봐주면 되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분명 스토커가 자신과 아는 사람일 거라며 이와이즈미 상을 조심하라며 했던 건 당신이었잖아. 어째서 이러는 거야. 어째서.

 

"젠장, 카게야마! 오이카와!"

 

 이와이즈미 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오이카와 상은, 스토커라는 그 사람은 혀를 살짝 차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쨘, 토비오쨩의 스토커는 저였답니다. 자자, 이제 나와 쭉 있는 거야."

 

※켄히나

※혼자서 이 밤중에 전력 60분, 캐붕캐붕

 

[하이큐/켄마히나]푸른 새벽이 그려진 저 너머의 세계

written by. 티토



아, 예쁘다. 히나타는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응시했다. 그림 속에 담긴 푸른 새벽 하늘, 이슬이 맺힌 풀잎, 그리고 여우. 무의식적으로 그림에 손을 뻗었다. 아, 이런 곳이 정말로 존재할까.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그저 푸른 풀내음만 가득찬 그런 곳이 존재하고 있을까. 뻗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넓은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긴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그런 감옥같았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높은 빌딩,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자가용 자동차, 기차, 하늘을 걷는 인간.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은 없어, 절대로.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한 이곳에는 이런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리가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라. 히나타는 몸을 굳혔다. 이곳에는 저 하나뿐이었다. 시종들도 휴가를 가버렸고, 부모님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이 거대한 저택에는 히나타 혼자뿐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자신 외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환청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림을 보았다. 정확히는 그림 속에 그려진 여우를 보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노란 털을 가진 여우는 하늘을 바리보고 있던 고개를 돌려 히나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소름이 쫙 돋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림이 움직일리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요즘 이상한 것들도 많이 나오니까. 움직이는 그림, 뭐 나올 수도 있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애써 그 시선을 외면했다.

 

"쇼요, 너무해. 그렇게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제는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는 목소리에 히나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지? 진짜 누구야? 시종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친우도 성으로 부르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 ​설마. 히나타는 삐걱거리며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축 처진 귀를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던데.

 

"아, 다시 봐줬구나."

 

"으아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자 히나타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그림 속의 여우가 말했어! 물, 물론 요새 이런 것들 많이 나오지만 요 몇년간 아무말도 하지 않던 게 말을 한다고?!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진정하자, 진정해, 히나타 쇼요! 요즘 문명은 빠르게 발전한다고 한다잖아? ​근데 문명이 뭐지. 아니, 이게 아니라. 인상을 팍 쓰고 여우를 노려보았다. 여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 작아졌다고 해야하나. 여우는 꼬리로 바닥을 탁 치더니 귀를 쫑긋거렸다. ​계속 보고 있으니까 귀여운데?

 

"혹시 네가 말 건 거야?"

 

"응."

 

"무슨 일로?"

 

 히나타의 물음에 여우가 잠시 주저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지?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여우가 말했다.

 

"쇼요, 여기로 손을 뻗어 볼래?"

 

"응."

 

 거리낌없이 대답한 히나타는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왜, 라든가 뭘 믿고, 라든가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해야하니까, 라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히나타의 손이 그림에 닿았을 때 여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쇼요."

 

*

 

 환한 빛이 엄습해왔다. 히나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뒤 눈을 뜨자 히나타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림 속의 풍경이었다. 푸른 새벽 아래 녹빛의 풀밭, 그리고 안이 보이지 않는 숲. 아, 맞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우는, 여우는 어딨지? 여우 녀석, 나를 여기로 불러내서 어쩌자는 거야!

 

"나는 여깄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내가 본 여우가 아닌 거 같은데. 분명 여우 귀도 있고 꼬리도 있는데. 알맹이는 사람인 거 같고. …어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뭐냐, 코, 코스프레? 여우귀랑 꼬리 단 걸까? ​아니,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진짜같고.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우소년은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숲에 멈춘 여우소년은 무언가 생각하는듯 잠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궁금하게. 입을 삐죽이며 그를 응시하자 생각을 끝냈는지, 아니면 히나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여우소년이 히나타를 응시했다.

 

"너, 뭐야?"

 

"…나? 여우…​인데."

 

"​나는 왜 부른 거야, 그, 그러니까​."

 

 ​이름이 뭐지. 히나타가 눈동자를 굴리면서 끙끙거리자 상대방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켄마. 코즈메 켄마."

 

"아, 그래, 켄마! 나는 무슨 일로 불렀어?"

 

"쇼요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

 

"응, 쇼요밖에 못 하는 일."

 

*

 

 켄마와 함께 숲 앞에 섰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마치 눅눅하고 끈적한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인상을 찌푸리자 켄마가 숲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어, 우리의, 모두의, 소중한, 것이. 켄마 또한 긴장이 되는 지 말이 뚝뚝 끊기고 있었다. 소중한 것?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는 켄마가 자신을 불러내 도움을 청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기에 불러낸 것일까.

 

"소중한 게 뭔데?"

 

"구슬, 조그만 구슬. 그걸 뱀들이 삼켜버렸어. …안타깝지만 우린 뱀을 이길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해."

 

​"뱀?"

 

 뱀, 이라는 게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켄마가 주저하다 물었다. 혹시 뱀을 몰라?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뱀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걸. 예전에 봤던 책에서는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람 팔뚝 길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켄마는 풀잎 사이를 벌려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긴 줄 같았다. 줄처럼 생겼나?

 

"대충 이렇게 길쭉하게 생겼는데, 사람보다 커."

 

"으엑. 징그러!"

 

"쉿, 쇼요. 뱀들은 밖으로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켄마?"

 

"뱀들은 우리 냄새를 잘 알아, 하지만 인간 냄새는 몰라. 구슬을 가져오는 걸 도와줬음 좋겠어."

 

 히나타가 잠시 주저하자 켄마는 덧붙였다.

 

"걱정마, 계획은 있으니까. 쇼요한테 다 맡길 생각은 아니니까 부담가지지 않아도 괜찮아."

 

 저기에 내 친구들도 잡혀 있어. 켄마가 분한듯 낮은 어조로 말했다. 친구, 인가. 나한테 카게야마 자식이 소중한 친구인 것처럼 켄마한테도 그런 친구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맡겨줘, 켄마!"

 

[하이큐/카게구치]이유

하이큐 | 2014. 7. 30. 22:59
Posted by 물빛녘

※카게야마x야마구치

※+츠키히나 



[하이큐/카게구치]이유

written by. 티토



 이유를 모르겠어. 야마구치는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방금 전에 내가 무슨 말을 들었더라. 좋아해, 라는 말이었던 거 같은데. 상대가 여자라면 우와, 나도 고백받았어,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애석하다 해야 할지 상대는 남자, 그것도 부 멤버. 뭐, 남자라서 싫은 건 아니지만. 츳키도 지금 히나타랑 사귀는 중이고. 응, 딱히 거부감은 없었지. 근데 그게 문제는 아니잖아. 그 상대가 문제지. 응, 그게 카게야마라는 사실이. 대체 내 어디가 좋다는 걸까. 음, 뭐 성적은 좀 그렇다지만 머리가 나쁜 건 아니고. 나름 얼굴도 잘 생겼고. 음, 그리고 배구도 잘 하고.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나를 좋아하는 거지.

 

 그렇다고 싫은 건 또 아니구. 지금 감정을 표현하자면, 나를 놀리는 건 아닐까,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서.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인영을 힐끔 바라보았다. 초조한 듯 빨대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카게야마의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그렇지만 쉽사리 믿어도 괜찮을까. 한순간의 감정이면? 그러면 어떡하지?

 

"야마구치."

 

"흐, 흐악, 어, 어?"

 

 분명 나는 앉아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휘청. 놀랐는지 카게야마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 야마구치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뻘쭘한 표정으로 레몬에이드를 한모금 마셨다. 레몬에이드 특유의 맛이 입 안에 퍼졌다. 그래도 목이 계속 타 몇번이고 마셨다.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정면을 응시했다. 손가락으로 딱딱 책상을 치던 카게야마가 긴장한듯 침을 삼켰다. 덩달아 침을 삼킨 야마구치는 입을 열었다.

 

"…뭐, 뭐가 좋아?"

 

"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카게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몬에이들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내 어디가, 좋냐구."

 

 너무 긴장한 듯 살짝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으아, 진짜 바보같아. 야마구치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살폈다. …어, 멍한 얼굴이다. 아니, 뭔가심각한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거 물어봤던가. 아니, 그냥 어디가 좋은지 물어봤는데. 아, 너무 소녀감성이었나. 야마구치가 혼자 궁리하고 있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좋아하는데​이유가 필요한 거였어?"

 

*

 

"이유를 모르겠어."

 

"이유? 무슨 이유?"

 

 히나타가 감자튀김을 하나 쏙 입에 넣으며 물었다. 야마구치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었다. 꼭꼭 씹어 넘긴 다음 콜라를 마셨다.

 

"그러니까 카게야마."

 

"카게야마? 아, 그 녀석 요즘 뭔가 이상하던데. 아는 거 있어?"

 

 햄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물어 오물오물 씹으며 히나타가 말했다. 그것을 본 츠키시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히 먹은 히나타는 다시 감자튀김을 입 안에 넣었다.

 

"아, 그게​."

 

 말해도 되는 걸까. 물론 이 둘이라면 거부감을 느끼진 않겠지만, 그래도 카게야마가 말하길 원하지 않아 할 수도 있고. 이런 얘기, 내 마음대로 떠벌리기엔 너무 무거운 것 같고. 그렇지만 상담은 받고 싶은데. 아, 나 정말 바보인가 봐. 처음부​터 이름은 꺼내지 말고 물어봤으면 됐을 것을. 그렇지만 이미 말해버렸는걸. 아아, 어떡하지. 참담한 표정으로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햄버거 맛있네.

 

"아니야, 아무것도.​"

 

 얼버무린 야마구치는 콜라를 빨대로 쭈욱 마셨다. 응, 아직은 생각할 시간도 남았고. 조만간 다시 물어볼 거 같지만. 아, 진짜 뭐지? 소심하고, 딱히 잘난 것 없고, 잘 생기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다고 볼 수 있는 내가 어디가 좋다는 거야.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한 거였냐니. …확실히 그도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팟, 하고 왔으니까 좋아지는 거 아닌가? ​아닌가. 

 

"야, 야마구치."

 

"응, 츳키?"

 

"너, 걔랑 뭔가 있었지."

 

 츠키시마가 휴지로 히나타의 볼을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히나타는 살살하라며 투덜거리다 츠키시마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야마구치를 응시했다. 으아, 츳키, 역시 예리해. 어색한 웃음을 짓자 츠키시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말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츳키는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거 같진 않고.

 

"사실은 말야​."

 

*

 

"어쩐지."

 

"바본가."

 

 둘이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무슨 반응이지. 야마구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콜라를 마셨다. …아, 다 마셨다. 말하는 내내 목이 타 계속 마셨더니 벌써 다 마셨네. 마시는 건 포기하고. 앞의 둘을 응시했다. 히나타가 감자튀김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카게야마가 야마구치 보는 눈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

 

"거기서 좋아하는 이유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당황하지. 정말 생각없네, 바보 왕."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을 수도… 있어?"

 

 히나타와 츠키시마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야마구치를 바라보며 거의 동시에 말했다.​

 

"왜 없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아직까지 얘 좋아하는 이유 모르겠어."

 

"​시비 거냐. 뭐, 솔직히 나도 모르겠는데."

 

 에, 그런건가. 야마구치는 멀뚱히 둘을 응시했다. 히나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야마구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엥, 그래서라니."

 

"야마구치, 네 마음은 어떤데?"

 

*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왜 그렇게 보고 싶고, 왜 그렇게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건지. 그냥​, 그저 옆에 있고 싶어. 같이 웃고 싶고, 같이 울고 싶어. 그냥 그런 느낌이야. DVD를 빌려와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싶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아아, 그렇구나. 이게 좋아한다는 거구나. 이유는 필요없어. 

 

 그저 내겐 너만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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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키요ts스가]우리가 있는 곳

하이큐 | 2014. 7. 24. 01:54
Posted by 물빛녘

※시미즈 키요코ts(키요토) x 스가와라 코시


 

[하이큐/키요ts스가]우리가 있는 곳

written by. 티토

 

 

 질투가 안 난다면 그건 거짓말. 압도적인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고. 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착하지 않으니까. 음, 뭐라 말하면 좋을까. 사람들은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는 거 같아. 겉모습을 보고 자기 멋대로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단정을 지어 버려.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걱정이 없는구나, 고민이 없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고민이 있다고 말하면 '네가?'라며 놀라고. 아, 키요토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이렇게 내 말을 들어주잖아.

 

 가끔 내가 빠져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그도 그럴 것이 대단하잖아, 카게야마. 더군다나 지금은 중학교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 본인도 노력하고 있고.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아. 때때로 그 모습을 볼 때면 무서워지기도 해. 저 애는 어디까지 발전하는걸까. 한계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나는 연습을 거듭해도 별로 발전이 없는 것 같은데.

 

 아아, 고마워. 그렇지만 진전이 없는걸? 마치 벽이 있는 거 같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너는 여기까지밖에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울화가 치밀어. 그래서 연습에 매달렸어. 응, 그래서야. 그게 너무 과했던 탓인지 이렇게 탈이 나버렸지만.

 

 있잖아, 천재, 라는 부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일반인들이 악을 써서 달려간 곳을 가볍게 걸어 도착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조금만 더 열심히 뛰어 간다면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닿지 않는다면? 아아, 그 때는 정말 허탈하지. 마치 지금처럼. 솔직히 천재에 대해서는 아, 대단하구나, 그 정도 생각만 하고 있었어.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동아리, 같은 포지션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카게야마를 미워하냐고? 음, 그건 아닌 거 같아. 카게야마는 성실하고, 나름 예의도 있고. 아하하, 물론 조금 험악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착한 녀석이잖아. 카게야마한테는 잘못이 없으니까 미워할 수는 없지. 그 애를 탓할 수도 없어. 그 애는 그 애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니까. 물론 재능은 부럽지. 그래도 카게야마한테는 고마워 하고 있는걸. 우리가 이 정도로 나아갈 수 있는 건 그 애의 도움이 컸으니까. 정말 꼴사나운 선배네. 이렇게 자기 위로나 하고 있고 말야. 그 애도 지금 많이 힘들텐데. 신기술 연습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같더라구. 내가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없어서…….

 

 앗, 지나치게 생각하는 버릇 나왔다. 정말 이거 고쳐야 한다니까. 저번에 다이치한테도 한소리 들었고.

 

 선생님들도 진로를 생각해라, 하시는데. 역시 그만 두는 게 좋을까.

 

*

 

 가끔 스가와라는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거 같아. 음, 그런가. 그럼 스가와라의 장점부터 나열해 볼까? 첫째, 친절하다. 후배들이 묻는 것에도 잘 대답해주고 고민하고 있으면 도와주려 하고 있잖아. 그리고 둘째, 성실하다. 지금까지 연습 꼬박꼬박 나오고 틈나면 연습이었잖아. 그리고 셋……, 알았어, 그만할게.

 

 난 오히려 스가와라가 부러운데. 그래도 스가와라는 코트 위에서 뛸 수 있잖아. 나는 못 하니까. 가끔 벤치에서 너희를 바라볼 때면 정말 빛나는 거 같아. 그래서, 나도 같이 서고 싶을 때가 많아.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곳에 낄 수 없어, 라고 생각했어.

 

 스가와라, 그거 알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닌 이유.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걸. 스가와라도 벤치에 있을 때 가만히 있는 건 아니잖아. 상대를 파악하고, 우리 팀의 틈을 파악해. 그리고 해답을 찾아내고 그걸 모두에게 알려줘. 스가와라도 한 팀의 구성원으로서 열심이잖아. 그러니까 스가와라는 필요없는 사람이 아냐. 아, 물론 코트 위에 설 때도 대단한걸. 모두를 격려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있으니까.

 

 괜찮아, 벽이 보일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끝은 아니잖아. 후후, 무슨 소리냐고? 히나타 군도 그랬잖아. 벽에 막혔지만 그걸 뛰어넘었어. 스가와라도 할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음, 위가 없으면? 그럼 뚫고서라도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습에 같이 참여할 수는 없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울게. 예를 들면 지금처럼 쉬어가고 싶을 때.

 

 확실히 부럽지, 천재는. 그렇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까진 부럽지 않아. 나는 매니져니까 뒤에서 받쳐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사람의 역할을 할 생각이야. 내가 있는 곳은, 있는 자리는 그런 자리라고 생각해. 스가와라의 자리는 어때?

 

 카게야마군은 스가와라군 덕분에 많이 바뀐 거라 생각해. 많이 도와줬잖아. 친절한 선배가 있었으니까 후배님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었지 않을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그건 스가와라,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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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켄마]나들이

하이큐 | 2014. 7. 24. 01:53
Posted by 물빛녘

※쿠로켄 

 

[하이큐/쿠로켄마]나들이

written by. 티토

 

 

 아, 나가기 귀찮아. 켄마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그거 오늘 발매된다고 했었는데. …내일 사러 갈까. 그렇지만 내일도 귀찮을 거 같고. 집에 있는 게임들은 다 클리어한지 오래니까, …역시 나가봐야겠지. 밍기적 밍기적 일어나 옷장에서 대충 아무거나 꺼내 입은 켄마는 지갑을 챙겼다. 게임만 사고 빨리 돌아와야지.

 

"어? 어디가, 켄마?"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켄마는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아, 역시.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온 것은 자신의 소꿉친구였다. 쿠로오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켄마의 얼굴과 손에 들린 지갑을 확인하더니 씨익 웃었다.

 

"게임 사러 가는구나?"

 

"…무슨 일이야, 쿠로."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켄마에게로 걸어 와 책상 앞에 위치한 창문을 열었다. 선선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쭉 빼고 밖을 내다보던 쿠로오는 켄마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니 시끄럽게 골목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이 보였다. 켄마가 다시 시선을 쿠로오에게로 돌렸다.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놀러가자고." 

 

"…쿠로는 여친 없어?"

 

 맨날 나보고 같이 놀러가자고 하고. 날씨가 좋으니 놀러가기는 무슨. 눈이 와도 놀러가고, 날이 흐려도 놀러가면서. 켄마는 담담한 표정으로 쿠로오를 응시했다. 쿠로오는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 책상 위에 앉아 턱을 괴었다. 그리고서는 김이 다 샌 표정으로 켄마를 바라보았다.

 

"우리 켄마, 많이 둔하다니까?"

 

"…안 둔해."

 

 켄마는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쿠로오는 책상에서 내려와 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내민 손을 잡았다. 쿠로오가 빙긋 웃으며 켄마를 잡아 당겼다. 켄마는 쿠로오에게 끌려가다시피 방을 걸어나왔다.

 

"어라, 밖에 나가는 건가요?"

 

 부엌에서 켄마의 어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켄마, 광합성 시킬까 해서요."

 

"늘 고마워요, 테츠로 군. 아, 맞다. 가는 길에 심부름 부탁해도 될까요, 켄마 군?"


"…아, 네."

 

 켄마는 어머니로부터 돈과 종이, 장바구니를 건네 받았다. 오늘 저녁 반찬이려나. 대충 목록을 훑고 있을 때 쿠로오가 켄마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아, 알았어, 쿠로. 다녀 오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일단 어디부터 가지.

 

"음, 일단 장부터 볼까."

 

"응."


 근처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날씨는 좋다. 켄마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 저거 배구공처럼 생겼는데. 저건 쿠로 머리같아. 시선을 내려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저 머리는 어떻게 안 되는걸까. 쿠로, 잠버릇 대단하지. 응, 그리고 고데기, 라는 것을 사용해도 가라앉지가 않아. 헤어왁스로 세운 게 아닐까 할 정도야. 그러고보니 다른 애들은 저 머리가 멋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사실은 잠버릇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된 건데.

 

"켄마, 이쪽."

 

"아, 응."


 다른 길로 갈 뻔한 켄마를 쿠로오가 불러 세웠다. 켄마는 멈칫하며 앞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쿠로오에게로 걸어왔다. 잠시 걷자 마트가 나왔다. 켄마는 주머니 속에 넣어 뒀던 종이를 꺼냈다. 감자, 무쌈, 돼지고기, 상추 등등. 응, 많네. 마트 안으로 들어서자 쿠로오가 마트 안에 비치된 장바구니를 들었다.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쿠로오 뒤를 켄마가 쫄래쫄래 쫓았다.


"아, 쿠로, 우선 감자."


 감자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곳을 발견한 켄마가 자리에 멈춰서서 쿠로오를 불렀다. 따라 멈춘 쿠로오는 감자 가판대 근처에 있는 비닐봉지를 주욱 찢더니 켄마를 바라보았다.


"몇 개?"


"어, 5…개?"

 

 이건 6인걸까, 5인걸까. 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어머니, 악필이셨지…. 쿠로오가 고개를 내밀어 목록을 확인하더니 비닐 봉지 안에 감자 다섯개를 집어 넣었다. 끝을 묶은 다음 옆에 위치한 저울에 올려놓았다. 뭔가를 누르는가 싶더니 주욱, 가격표가 기계에서 나왔다. 쿠로오는 가격표를 찢어 봉지에 붙인 뒤 장바구니 안에 넣었다. 가자, 고개를 까닥하며 쿠로오가 먼저 움직였다. 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확인했다. 감자 오케이. 이제 무쌈이네. 아, 오늘 고기 구워 먹는 걸까.

 

 쿠로오는 돼지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곳에 멈춰 섰다. 진열된 고기들을 훑어 본 켄마는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돼지고기라고 적혀 있지, 어느 부위라고는 적혀있지 않아…. 켄마의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쿠로오는 흐음, 소리를 내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구워 먹는 거면 삼겹살?"

 

"다른 부위도 구워 먹지 않아?"

 

"그렇긴 하지. 그럼 일단 다른 것부터 고를까. 돈에 맞춰서 사면 되는 거니까. 전화를 드려본다거나."

 

"어머니 폰, 어제 물에 빠져서 오늘 수리 맡겼어."

 

"…그럼 우리 선에서 어떻게든 해야겠네."

 

"아, 그럼 쿠로, 내가 다른 거 찾아 올게. 쿠로는 고민하고 있어."

 

"아, 엉, 갔다 와."

 

 켄마는 머릿속으로 마트의 구조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무쌈, 은 여기 있고. 그리고 상추랑 깻잎은 저쪽이니까. 쪼르르 달려가 아까 쿠로오가 했던 것처럼 비닐봉지를 찢어 안에 넣은 뒤 가격표를 붙였다.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하지. 종이를 꺼내 확인했다. …아, 더 이상 알아볼 수가 없어. 소세지는 저번에 샀던 게 냉장고에 자리하고 있고, 마늘은 집에 있고. 쌈장은 있…나? 없던 거 같기도. 쌈장을 챙긴 켄마는 빼먹은 것이 있나 곰곰히 되짚어보았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이젠 돼지고기가 문제인데. 쿠로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바구니 안에 집어 넣고 대충 가격을 확인한 둘은 남은 잔액을 확인했다.

 

"목살이 좋을까, 삼겹살이 좋을까."

 

"난 목살이 더 좋아."

 

"그럼 목살로 하자. 너네 집, 목살 많이 먹는 편이잖아."

 

"쿠로네 집도 그렇잖아."

 

 아, 그러고보니 돼지고기 뒤에 뭔가 더 적혀 있었는데. 켄마는 목록을 응시했다. 돼지고기 8인분. …8인분? 우리 가족은 3명인데. 어머니랑 나는 많이 먹는 편도 아니고. 고개를 갸우뚱하다 쿠로오를 바라본 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네 가족도 3명. 쿠로네 가족이랑 우리 가족이랑 같이 먹으면 그 정도는 먹을테니까. 아, 그럼 쿠로도 같이 먹는 건가.

 

"쿠로, 8인분 사야 해."

 

"8인분? 아, 생각해보니 너희 가족이랑 같이 먹기로 한 거 같다."

 

 쿠로오가 점원에게 돼지 목살 8인분을 부탁하자 점원이 금방 건네주었다. 받아든 쿠로오는 그것을 장바구니 안에 넣었다. 이제 다 샀나? 장바구니 안을 기웃거리는 켄마를 보며 씨익 웃은 쿠로오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 샀으니까 이제 계산하고, 네가 사고 싶어했던 게임 사러 갈까?"

 

"…응."

 

 약간 얄밉게 보이긴 하지만, 사고 싶어했던 건 맞으니까. 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는 한 손으로 켄마의 머리를 부비적거린 쿠로오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머리 헝클어졌어.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린 켄마는 재빨리 쿠로오의 뒤를 따랐다. 삑, 삑, 바코드 찍는 소리를 들으며 돈을 꺼냈다. 계산을 마친 뒤에 구매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집어 넣자 쿠로오가 장바구니를 들었다.

 

"…내가 들어도 되는데."

 

"됐어, 키 안 커."

 

"…."

 

 아, 이제 게임 사러가는 건가. 게임을 판매하는 가게로 걸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걷던 쿠로오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게임 사러가는 게 그렇게 좋아?"

 

"…별로."

 

"그렇지만 표정 확 폈는걸."

 

 그런가. 켄마는 손을 들어 볼을 꾹꾹 눌렀다. 쿠로오가 그 모습을 보며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웃긴가. 뚱한 표정으로 쿠로오를 흘겨 보던 켄마는 게임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어깨를 으쓱하며 안으로 들어선 쿠로오는 카운터 옆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켄마와 자주 왔던 가게였는지라 안면이 있던 가게 주인과 눈인사를 하며 켄마를 찾았다.

 

 켄마는 새로 나온 발매작이 있는 코너로 가 섰다. 그러니까…, 아, 여깄다! 손을 뻗어 게임팩을 손에 들었다. 이것도 사고. 어? 저것도 재밌어 보이는데. 켄마는 유심히 눈에 띈 게임팩을 바라보았다. 두 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네. 그렇다고 대전 게임은 아니고. 돈은 될 거 같은데. 재밌어 보이는데. 살까? 내적갈등을 겪으며 뚫어져라 게임을 응시하던 켄마는 눈앞에 게임팩이 사라지자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를 살짝 위로 올렸다. 손. 손에서 시선을 옮겨 손의 주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쿠로? 쿠로오는 게임팩을 휙 휙 보더니 게임팩을 흔들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쿠로. 그거 살 거야?"

 

"엉."

 

 황급히 뒤를 쫓았다. 진짜, 살거야? 나도 하고 싶은데….

 

"이거 두 명까지 플레이 가능하네."

 

"응."

 

 켄마는 조심스레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가 사면 나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할까. 내가 산다는 선택지도 있긴 하지만…. 고민하는 켄마를 내려다보며 쿠로오가 살짝 웃었다. 손으로 켄마의 머리를 비비적거린 쿠로오는 카운터에 게임팩을 내려다놓았다. 그리고서는 뒤에서 끙끙거리는 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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