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금]세계의 시작

쿠로바스 | 2015. 3. 1. 12:20
Posted by 물빛녘

※아오이마

 

 

[쿠로바스/청금]세계의 시작

written by. 티토

 

 

 제발 누가 헛 것을 봤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오미네는 눈 앞의 관경에 경악했다.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오, 젠장, 신이시여, 이제 착하게 살테니까, 제발 이 책들을 다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안타깝게도 신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나보다. 적어도 100권이 넘어 보이는 서적들을 자신은 읽어야 했다. 이런 미친.

 

 아오미네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뭔 놈의 서적이 이렇게 많은 걸까. 더군다나 이 책들은 죄다 외국어로 적혀 있었다. 루스국 언어였나. 자신이 살고 있는 알펜국과는 최근 교류가 늘어난 국가였다. 사막으로 왕래가 힘들어 거의 국교가 단절되다시피 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돈을 벌고 싶어 환장한 상인들이 어떻게든 해로를 개척했다던가. 개척했다고 해도 바다는 위험한 생물들이 가득이라 바다로 나갔다 하면 떠난 무리의 반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뭐 그걸 감수해서 얻는 이익이 상당하다긴 하더만은. 그 자식들이 이윤을 챙겨 먹든 간에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봐야할 책들이 꽂힌 칸을 올려다 보았다. …오, 미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도서관이라 소리지르지도 못하고. 숨을 가다듬으며 울컥 올라오려는 것들을 억누른 아오미네는 우선 손을 뻗어 그나마 얇아 보이는 책 5권을 꺼냈다. 얇다고 해도 300페이지는 기본이었지만.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모르는 말들이 한가득이었다. …사전도 빌리자. 아오미네는 침통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자신 혼자서는 무리다. 사전이 있다고 해도 힘들다. 도움을 부탁할 사람이 어디 없을까. 아오미네는 머리를 굴려 자신의 좁은 인맥들 중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찾았다. 테츠? 오, 나쁘지 않다. 무난한 정도일테니까. 더군다나 여기 사서이기도 하고. 이왕 온 김에 부탁해볼까.

 

"아오미네 군?"

 

"…으헉."

 

 눈 앞에 불쑥 나타난 쿠로코때문에 놀란 아오미네는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다. 놀랐잖아, 테츠! 벌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아오미네가 말하자 쿠로코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정말 죄송한거냐고. 뭐 좋다. 만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테츠, 잠깐 시간되냐?"

 

"그건가요. 뭐, 됩니다만. 따라 오세요."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훑어 본 쿠로코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녀석이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

 

"너도 참 질기군요."

 

"…어이, 테츠. 그거 실례다."

 

"아,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것 같은데. 차를 홀짝 마시는 쿠로코를 보며 아오미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뭐, 이 녀석이 이러는 게 한 두번도 아니고. 손을 움직여 들고 온 책 표지를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여기에 자신이 찾는 정보가 있을까. 다과를 오물거리던 쿠로코가 아오미네를 흘깃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그걸 찾고 있는 건가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던, 예의 '꽃' 말입니다."


"아아."


 아오미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꽃이라고 해도 꽃은 아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것의 형태를 모른다. 실존하는 것인지 조차도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자신은 찾아야했다. 나를 위해서, 라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가 원하니까.


"이마요시 상이 찾던 것이었죠. 그러고보니 그는 일리야국 출신이었던가요."


 일리야국. 아오미네는 표정을 굳혔다. 지나칠 정도로 폐쇄적인 국가였다. 알펜국과는 사막을 사이에 두고 있어 왕래도 힘들 뿐더러 주변국인 루스국과도 도시 하나만을 개방해 교류할 뿐이다. 혹 운이 좋아 사막을 횡단해 일리야국 국경에 도착할지라도 게이트라는 것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한 번 통과하면 돌아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런 폐쇄적인 곳에서 그는 왔었다. 사막을 건너, 자신의 약혼녀와 함께.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

 

"분명 약혼녀 분을 살릴 목적으로 찾는 거라고 예전에 말씀하신 적 있었죠. 하지만 이곳에 그가 왔을 때 약혼녀 분은 살아계셨습니다. 그것도 십여년동안. 그럼 이상하지 않습니까?"

 

 쿠로코는 남은 차를 한 입에 털어넣더니 아오미네를 응시하며 말했다.

 

"적당한 서적을 골라드리겠습니다."

 

*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책을 한아름 받았다. …사전도 있었다.

 

 이상하다라. 사실 그가 찾아야 한다기에 찾는 것일뿐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떠나지 않는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7살, 어린아이였다. 일찍 부모를 잃고 골목을 떠돌던 자신을 데려갔던 그는 20살 정도 되어 보였다. 지금 자신은 25살이었다. 그리고 그는… 전혀 늙지 않았다. 일리야국 사람들은 원래 수명이 길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사실인걸까.

 

 아오미네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쇼파에 잠들어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안경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유심히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일리야국인이라. 이들은 참으로 이상했다.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고, 늙지 않았고, 타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일리야국에서의 기억과 관습 등 일리야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서서히 잊어갔다. 눈 앞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 어째서 그걸 찾고 있는지, 심지어 찾고 있는 사실조차도. 그에게는 알펜국에서의 기억 일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오미네는 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힐끔 뒤를 보니 깰 기미는 안 보였다. 좋아, 시작해볼까. 책을 하나 골라 펼쳐 놓은 사전 옆에 놓았다.

 

 이렇게까지 찾는 이유는 단순했다. 꽃을 찾으면 그의 예전 기억들도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나오기 전 테츠가 그랬었지. 약혼녀를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하긴 알펜국에서 '꽃'이 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꽃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그가 자신을 의지하는 이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자신에게 좋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그리 미쳤지만 아오미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물을 주는 기가?"

 

"…?!"

 

 화들짝 놀라 책을 덮으면서 뒤를 돌아보자 안경을 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마요시가 있었다. 이마요시가 깼다는 것에 놀란 아오미네는 이마요시가 책 내용을 읽었다는 것에 놀랐다.

 

"너무 놀라지 말그라. 루스국어는 쪼만할 때 배운 적이 있데이. 기억을 잊는 거지 지식을 잊는 건 아니그라. 뭐 찾는지는 모르겄지만 내가 도와준다카면 싫다하긋재."

 

 히죽 웃으며 이마요시가 덧붙였다.

 

"내,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나?"


*


 이마요시에게 밥을 차려둔 뒤 책을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 젠장. 이제 어쩌지. 혹시 이거 읽을까 싶어 들고 나왔긴 하다만. 같이 찾으면 좋긴 하겠지만, 이마요시의 몸상태는 현재 좋지 못했다. 뭐랄까,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일리야국인이 타국에 오랜기간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나. 뭐야, 그게. 의사 맞아? 그렇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다를지도.


 정처없이 걷다보니 무구점 앞에 서 있었다. 가게를 정리 중인 카가미가 아오미네의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쳤다.


"뭐야, 살 거 있어?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냥 문 닫는데?"


"야, 카가미."


"엉?"


"너 루스국 출신이지. 마침 잘 됐다."


 쿠로코에게서 카가미가 루스국 출신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던 아오미네는 그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최고의 조력자를 찾았다.


*


"꽃? 뭐야, 그걸 찾는 건가."


 카가미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뭐냐, 그 반응은. 아오미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들고 온 책들을 훑어보더니 책 한 권을 들고 다른 책들을 옆으로 밀어뒀다.


"이거만 보면 될거야. 다 똑같은 말들 써 있을 거거든."


 "오, 좀 읽어줘."


 카가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넘겼다. …야?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읽어달라고."

 

"아, 소리내서 말하는 건가. 미안."

 

 제일 첫 장으로 돌아간 카가미가 입을 열었다.

 

"NaNun Jollibda."

 

 …어이. 아오미네는 어이가 없어 표정을 굳혔다. 뭐하자는 거냐, 너.

 

"번역해달라고."

 

"아."

 

 …오늘 내로 3장은 읽을 수 있을까.

 

*

 

"…뭐 이정도야. 루스국에서 알고 있는 정보는 이게 끝."

 

"별로 없는 거 같은데."


"그야 그 꽃은 일리야국에서 핀다는 것 같으니까."


 아오미네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리야국에서? 그렇다면 말이 안 된다. 이마요시는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 꽃을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 머무르는 내내 그 꽃을 찾아 헤맸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 도대체 왜? 무슨 이득이 있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서까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될텐데?


 패닉에 빠진 아오미네를 힐끗 본 카가미가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이딘에 가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거야. 아, 이딘은 일리야국에서 유일하게 타국인이 갈 수 있는 지역. …하지만 꽃은 분명 내지에 필걸. 아마도 수도에. …어떻게 할래?"

 

 어떻게? 그가 자신을 속였다는 거에 어떻게 반응할 거냐는 건가. 어떻게, 라.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아오미네는 좀 전까지 카가미가 읽던 책 표지를 바라보았다. 사정이 있었을지도. 정답은 그곳에 있지 않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곳에 가야겠어."

 

"…역시 그렇게 하는 건가. 좋아, 도와줄게. 우선 루스국으로 가서 이딘에 들어가. 지인한테 연락 넣어둘테니까. 일리야국은 폐쇄적이긴 해도 어떻게든 들어갈 방법은 있거든. 하지만 걸리면 목숨은 보장 못 해. 그래도 갈래?"

 

"…갈래. 이마요시 상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 꽃이 과연 뭔지, 궁금하거든."

 

 담담하게 대꾸했다. 출발은 일주일 뒤. 그 사람도 같이 가야해. 사막을 통해 루스국으로 가는 게 더 빠를 거야. 이것저것 말을 덧붙인 카가미는 아오미네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세계의 시작에서 세계의 기원을 보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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