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세 

 

[쿠로바스/청황]꽃샘추위, 다시 너와 함께

written by. 티토

 

 아, 춥다. 아오미네는 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평소보다 이른 퇴근이긴 하나 연구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모두 간만의 휴식을 즐기려는 듯 하나둘씩 빠져나가 주차장 안에 있는 것은 아오미네의 차뿐이었다. 아, 젠장. 나도 그냥 빨리 나오는 건데. 이것저것 조사한다고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아오미네는 뭉친 어깨근육을 손으로 풀며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시동을 걸고 연구소를 나서려다 문득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푸른빛을 띤 3층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오미네는 쓰게 웃으며 핸들을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오늘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아오미네의 차는 연구소 정문을 부드럽게 통과했다. 아오미네는 목에 걸린 ID카드를 벗었다. 그리고서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 아래에 적힌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오미네 다이키, 유전자 공학 연구소. 신호가 바뀌자 ID카드를 대충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액셀을 밟았다.

 

 솔직히 자신이 이 연구소에 들어오게 될 거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이제 어떡해야 고민하고 있던 때에 연구소장인 아카시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아카시 세이쥬로, 동기에게 들은 적이 있는 사내였다. 완벽주의자에 줄곧 수석만 해오던 냉혈한이라고. 정말 그럴까 했지만 처음 면 대 면을 했을 때 그건 루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농담도 할 줄 알고 웃을 줄도 아는 인간적인 사내였을 뿐이다. …완벽주의자는 사실인 것 같다만. 다만 아카시의 소개로 알게 된 부소장 미도리마는 들은 대로였다. 괴짜에 오하아사 신자에. 과연 어울릴까 하는 두 사람이 가장 친구 사이라니 아오미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미네가 보기에 둘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정도였다.

 

 눈 앞에 주택가가 나오자 아오미네는 속도를 줄였다. 빨간 지붕이 덮인 2층 집 차고에 차를 세운 뒤, 차에서 내렸다. 어디 보자. 외투 주머니를 뒤적여 손에 잡힌 것을 꺼냈다. …ID카드는 아니고. 껌도 아니고. …열쇠 어디 갔지? 미간을 찌푸린 채 오늘 자신이 집 열쇠를 어디 두었나, 곰곰이 되짚어 보던 아오미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싸늘한 공기가 아오미네를 맞이했다. 손을 뻗어 거실 불을 켜자 어젯밤 어질러 놓았던 꼴이 그대로인 것이 보였다. 저걸 또 언제 치워. 굴러다니는 맥주 캔들을 대충 발로 밀어둔 뒤 쇼파에 앉았다. 몰려오는 수마에 아오미네는 눈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벌써 잠들면 안 된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는 7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분 뒤면 8시. 이 시간에 올만한 사람이 있나 나열해보았지만 딱히 없었다. 그야 자신은 원래 이 시간이면 연구실에 있을 테니까.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자 아오미네는 그곳에 분홍머리의 여성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츠키.”

 

 반쯤 잠긴 목소리로 여성의 이름을 부르자 사츠키라고 불린 여성은 아오미네 뒤에 펼쳐진 관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모모이, 라고 부르라니까. 정말, 아오미네 군, 평소에 이렇게 사는 거야?!”

 

 예전에는 이름을 불려도 별말하지 않더니만, 성인이 되고 남자친구가 생긴 뒤로부턴 성을 부르라고 난리다. 아오미네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벽에 기대어 섰다. 거실을 휙 둘러보던 모모이는 스웨터 소매를 걷었다. 아무래도 더러운 꼴은 못 보겠나 보다. 텅 빈 맥주 캔을 한 손에 두 개씩 집더니 부엌으로 걸어간 모모이는 기가 차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설거지할 게 산더미잖아!”

 

“아.”

 

“아, 가 아니라구. 분명 설거지하기 귀찮으니까 접시 여러 장 사다놓은 거지?”

 

 맥주 캔을 한 곳에 모아두고 거실로 돌아가 분주히 물건들을 치우던 모모이는 멀뚱히 서 있는 아오미네를 보고서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오미네 군이 하면 더 어질러질 것 같으니까 다른 곳에 가 있어.”

 

 그렇게 아오미네는 자기 집 거실에서 쫓겨났다. 침실로 들어온 아오미네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아, 이거 보면 또 뭐라 할 텐데. 황급히 옷가지들을 모아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거실에서 모모이가 왔다갔다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모모이가 자신의 집에 들려 청소해주는 일도 자그만치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전에는……. 아오미네는 쓰게 웃었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색에 잠기다니. 분명 다시 그 일상이 돌아올 텐데.

 

 아오미네는 몸을 일으켜 침실 안쪽의 문을 열었다. 웅웅, 기계 소리가 들려 왔다. 어두운 방 안에서는 무언가 둥근 물체가 어렴풋이 빛을 내고 있었다. 흰색의 크고 둥그런 물체, 그것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선들, 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동그란 모양의 유리창이 있는 문. 아오미네는 그것들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저 등근 물체 안에는 양수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안에 들어있는 건 태아가 아니다.

 

 발을 움직여 문 앞에 섰다. 문에 나 있는 유리창을 통해 긴 속눈썹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태양 같은 금빛 머리카락은 물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유리창에 살짝 얹었다. 아오미네는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기분에 이를 악 물었다. 그러나 이내 힘없이 웃으며 손을 내렸다.

 

“다녀왔어, 키세.”

 

 5년 동안 잠들어 있는 연인이여.

 

 아오미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볼 것만 같은 그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분명 내상도, 외상도 다 치료가 되었을 것이다. 심장도 제대로 뛰고 있다. 살아있는데 어째서 눈을 뜨지 않는 걸까. 어째서 내게 웃어주지 않는 걸까.

 

 첫 만남은 참으로도 기묘했다. 자신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학교의 왕자님. 키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 내에서 어딜 가나 주목받는, 여자아이들의 우상. 그렇다고 해도 남자들과 서먹한 관계는 아니었다. 누구나 그의 웃음을 보면 덩달아 웃게 되는 사람이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중심에 있으니 언제나 행복하겠구나, 라고 생각해서일까 옥상에서 마주친 그의 모습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항상 웃고 있을 것 같던 그가 학교 옥상에 숨어 숨죽여 울고 있었다.

평소라면 조용히 자리를 떴을 자신인데, 그 날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 하기야 그 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평생 너와 이야기 나눌 일은 없었겠지만.

 

 아오미네는 감았던 눈을 떴다. 어슴푸레한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변함없이 키세는 잠들어 있었다. 그 때처럼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쭉.

 

“오늘은 기분이 어때? 나, 오랜만에 일찍 왔는데.”

 

 아오미네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기억 나냐? 그 왜,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방학하기 전인데 네가 바다 가고 싶다 해서 몰래 학교 빠져 나오다가 학주한테 걸린 거. 결국엔 반성문 쓴다고 그날 바다 못 갔잖아.”

 

 학교 후문 쪽 담을 네가 먼저 넘고 내가 넘었는데 그 앞에는 학생주임선생님이 서 계셨지. 너는 굳어 있고 말야. 아오미네는 뒷말을 삼켰다.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 또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둘이서 바다가 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로 A4용지 한 장을 채워서 냈다가 혼났던 것도. 다시 반성문을 쓰면서 뭐라 쓸 지 끙끙댔던 것도.

 

“아, 그것도 있다. 너랑 같은 반 안 시켜주면 학교 안에 있는 풀들 다 뽑아버릴 거라고 교무실에서 난동 부렸는데.”

 

 너는 창피하다며 옷자락을 잡아 당겼었지. 뭐, 결국엔 같은 반이 되었다만. 또 뭐가 있더라. 아오미네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이내 씨익 웃으며 키세를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축제날에 너 여장한 거, 사진 아직도 있다. 지운지 알았지?”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등 뒤로 모모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미네는 입술을 힘겹게 움직였다.

 

“내일 보자, 키세.”

 

 웃는 얼굴로 나를 보는 너를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오미네는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고 고개를 들자 모모이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하던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 아오미네를 말없이 응시하던 모모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밥 차려 뒀어, 였다.

 

“밥 좀 제대로 챙겨 먹어.”

 

 밥을 입에 구겨 넣는 아오미네를 보며 모모이가 핀잔을 건넸다. 우물우물 열심히 씹던 아오미네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입을 삐죽였다.

 

“제대로 챙겨 먹고 있어.”

 

“거짓말. 냉장고에 맥주밖에 없던데? 내가 반찬 안 들고 왔음 어쩔 뻔 했어?”

 

“아, 이거. …사 온 거지?”

 

“아니거든! 내가 제대로 만들어 온 거란 말야!”

 

 아오미네는 입을 쩍 벌린 채로 모모이를 바라보았다. 누가 만들어? 내 눈 앞에 있는 사람?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모모이는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테츠 군이랑 같이 만들었어.”

 

“그러면 그렇지.”

 

 고생이 많았겠는걸, 테츠. 분명 이거 테츠 녀석이 다 만든 거겠지. 아오미네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물끄러미 아오미네를 바라보던 모모이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까 말야.”

 

“아까?”

 

“역시 아오미네 군, 그거 여전히 하고 있는 거지?”

 

 아오미네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그렇지? ……키세 군.”

 

“……어.”

 

“…응, 그래.”

 

 모모이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꼼지락거리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오미네는 묵묵히 입안 가득히 반찬을 넣었다. 잠시 적막감이 맴돌다 모모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때, 맛있지?”

 

“그래봤자 테츠가 다 했을 텐데.”

 

“……나도 했다니까?!”

 

“아아. 너 언제 가?”

 

“아오미네 군, 다 먹으면.”

 

“다 먹었어.”

 

“설거지하고.”

 

“…….”

 

 설거지를 마친 모모이가 나가자 순식간에 집 안이 조용해졌다. 아오미네는 노트북을 들고 와 거실 테이블에 놓았다. 특유의 음과 함께 화면이 켜지자 마우스를 움직여 폴더 하나를 눌렀다. 방대한 양의 파일이 화면에 가득 찼다. 아오미네는 눈을 감고 검지로 테이블을 톡 톡 쳤다.

 

 이 안에 들어 있는 파일들의 내용은 몇 번이나 읽어 외울 정도였다. 몇 년간 식물인간으로 살던 사람이 깨어났다 라든가, 양수를 이용한 치료기기를 통한 치료가 얼마나 걸렸냐는 것 등에 자료들이었다. 모두 다 키세처럼 사고를 당해 죽음 문턱까지 간 사람들이었다. 현재 의학으로는 어머니 자궁 같은 환경을 만들고 사람을 그 안에 넣어 치료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 회복을 빠르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 방법으로 일상생활에 복귀한 사람도 3년이 최대였다. 그 이상 넘어가면 기다리는 사람도 지치기도 하거니와 심장이 갑자기 멈추거나 뇌사 상태에 이르는 등 치료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키세가 사고를 당한 후로 5년이 지났다. 하지만 키세의 경우는 조금 독특하다. 심장도 규칙적으로 뛰고 있고, 뇌도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보호자와 관리자가 동일하다. 이 기계를 집에 설치할 경우 의료담당자가 붙게 되는데 그것을 아오미네 자신이 맡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오미네는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릴 수 있었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뭐가 문제인 걸까. 안의 양수도 규칙적으로 갈아주고, 기계 조작도 제대로 해뒀는데. 혹시 양수와 비슷한 성질의 액체를 만들 때, 들어간 성분이 잘못된 걸까. 아오미네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매일 확인했지만 변질된 것도, 잘못 넣은 것도 없었다. 대체 왜, 그는 깨어나지 않는 걸까. 무슨 꿈을 꾸고 있기에 계속 잠만 자는 걸까.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릿속이 불안함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 가정은……, 그가 살고 싶은 욕망이 없다, 라는 것. 주먹을 꽉 쥐어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진짜라면?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괜한 조바심 내지 말자.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서 그래. 샤워하고 자면 머리가 말끔해지겠지. 아오미네는 노트북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욕실으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까지 말린 아오미네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와. 몸을 뒤척이자 텅 빈 옆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5년이 지나도 혼자 자는 건 익숙해지지 않았다. 품 안에 들어오는 따스한 몸의 온기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외로운 것이라는 걸 널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

 꿈을 꿨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건물, 도로, 나무, 뭐 하나 성한 게 없었다. 하늘은 녹아내리듯 검게 물들었다. 피해야 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키세, 키세, 키세! 목 놓아 너의 이름을 불렀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저 여깄슴다, 아오미넷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요란한 소음 사이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가자, 키세. 찾다보면 몸을 피할 곳도 있을 거야. 내 말에 너는 생긋 웃었다. 키세? 의아함에 네 이름을 다시 부르자 너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 아무데도, 가지, 않슴다. 띄엄띄엄 말을 잇던 너는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왜? 대답 좀 해 봐, 키세! 그 때 네 머리 위로 건물 잔해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뛰어가려 했지만 거리는 멀었다. 젠장, 키세, 피해! 다급하게 외쳤다. 너는 그저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한 상태였다. 아, 아, 아. 벌린 입 사이에서 탁 막힌 것 같은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이건 분명 개꿈이다, 개꿈인데…….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몇 번 두드리고 나서야 막혔던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오미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키세…….”

 

 고개를 살짝 들어 키세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통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키세, 너 거기 있는 거 맞지?”

 

 목구멍을 비집고 간신히 나온 말은 몹시도 떨리고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문 앞으로 걸어갔다.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발을 내딛었다. 기계는 웅, 웅, 소리를 내며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심박 수 정상. 현재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 있음. 아까와 같은 상태였다. 아오미네는 키세가 잠들어있는 탱크에 기대어 앉았다.

 

“제발 좀 깨어나 줘.”

 

 내가 너에게 뭘 잘못한 거냐. 아오미네는 낮게 울부짖었다. 좀 전의 악몽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너는…….

다리를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밤을 지새우다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 이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 잠든 장소가 난방을 돌리지 않는 방이라는 게 문제지. 목에서 컬컬한 기운을 느끼며 아오미네는 흰 셔츠를 꺼내 입었다. …어, 단추가 안 맞는데. 거울을 보니 하나씩 밀려서 잠겨 있었다. 미치겠네. 단추를 하나씩 끌렀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따라주질 않고, 간밤에 또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고. 단추를 다시 채운 아오미네는 바지를 갈아입었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없잖아…….”

 

 두꺼운 외투를 위에 걸친 후 현관문을 나섰다. …집 잘 보고 있어라.

 

*

 

 어떻게 온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오미네는 ID카드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책상에 엎드렸다. 아직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렇게 녹초가 될 줄이야.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던 쿠로코가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아오미네를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어.”

 

“…어제 모모이 상께 들었습니다만.”

 

 갑자기 말 꺼내는 거냐. 아오미네는 상체를 엎드린 채로 고개를 돌려 쿠로코를 응시했다. 흘깃 그 모습을 보는가 싶더니 쿠로코는 시선을 노트북 화면에 고정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 치료를 계속하시는 겁니까?”

 

“걔는 애인이라고 또 너한테 다 일러 바쳤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요.”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담담한 눈빛. 사츠키는 도대체 얘 어디가 좋다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래, 됐냐.”

 

“네.”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쿠로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트북을 끄고 차트와 볼펜을 챙긴 쿠로코는 그럼 이만, 이라고 말하며 의자를 밀어 넣었다. 개인 연구인가. 아오미네는 연필통에 담긴 펜을 잡았다. 습관처럼 볼펜을 돌렸다. 팽그르르, 검지손가락 위에서 돌아가던 볼펜이 툭, 떨어졌다.

 

“어라―, 미네칭이다.”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한 보라색 머리 남자는 과자를 품에 한가득 안고 있었다.

 

“무라사키바라, 너 그렇게 과자 많이 먹으면 아카시한테 혼날걸.”

 

“으응,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만 먹을 거구, 아카칭은 지금 개인연구 중이구.”

 

“미도리마는.”

 

 아오미네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문이 드르륵 열리며 미도리마가 들어왔다. 무라사키바라를 발견한 미도리마는 안경을 한 번 치켜 올리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무라사키바라를 응시했다.

 

“무라사키바라.”

 

“우응―.”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무라사키바라가 과자 한 봉지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나선 손 씻고 올게, 라며 자리를 떴다. 아카시가 황급히 나가는 무라사키바라를 힐끔 보며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 위에 놓인 종이를 확인하던 아카시는 아오미네를 바라보았다.

 

“다이키, 오늘 안색이 안 좋은데.”

 

“아, 아아.”

 

 매의 눈이다. 아오미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기 걸린 것 같아.”

 

“…아오미네 군도 감기에 걸리는 겁니까?”

 

“…걸리면 안 되냐.”

 

 어느새 돌아온 쿠로코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오미네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쿠로코는 차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조금 의외라서요. 아오미네 군은 감기에 안 걸리실 줄 알았는데.”

 

“걸려서 미안하네.”

 

 노트북을 탁탁 두드리던 아오미네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아카시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아아, 그렇네. 다이키.”

 

 아카시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덩달아 얼굴을 굳히며 응시하자 아카시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매만졌다.

 

“어제 늦게 퇴근하던데.”

 

 엄연히 따지자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편이지만 현재로써 딱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 않은 자신이었기에 아오미네는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옆에 앉아있던 쿠로코가 흘깃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뭐……. 슬슬 개인 연구도 다시 시작해야겠고.”

 

“그게 아니라 찾고 있던 거 아냐?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아오미네는 그 즉시 행동을 멈췄다. 입이 바싹 타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개인적인 견해야. 가망이 없어.”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아카시의 폰이 울렸다. 인상을 쓰고 액정을 응시한 아카시는 귀에 폰을 가져가며 방을 나갔다.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도리마가 패닉에 빠진 아오미네에게 말했다.

 

“솔직히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동감이라는 거다.”

 

 안경을 고쳐 쓴 후 미도리마가 말을 이었다.

 

“이건 의지의 문제다. 본인이 살고 싶어 했다면 진즉에 깨어났을 거라는 거다.”

 

“…그 녀석이, 죽고 싶어 할 이유는 없어.”

 

 아오미네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미도리마는 하얗게 질린 아오미네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잠깐 동안 무라사키바라가 과자를 먹는 소리만 들렸다. 탁, 탁, 뭔가를 치는가 싶더니 미도리마가 다시 아오미네를 응시했다.

 

“그건 모를 일이지.”

 

 노트북을 닫은 미도리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걸음 옮기던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아오미네, 네가 키세는 아니란 거다.”

 

 그러니 네가 키세의 속을 다 알 수 있을 리가. 단호하게 말을 내뱉은 미도리마는 이내 발을 움직여 밖으로 나갔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과자를 와삭 베어 물던 무라사키바라가 쿠로코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인 거야? 쿠로코는 머릿속에서 단어를 골랐다. 옆에 아오미네가 있으니만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쿠로코는 잠시 주저하다가 무라사키바라의 의문에 대답했다.

 

“키세 군에 관한 일입니다.”

 

“키세? 아―, 키세칭? …에에, 뭐야. 미네칭, 아직도 그거 하고 있던 거야? 이쯤되면 포기하는 게 좋아.”

 

“신경 꺼.”

 

 아오미네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뭐야, 죄다 반응들이. 아직도, 라니. 분명 이 치료법을 시작한 초기에는 다들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며 키세가 하루 빨리 이 연구소에 돌아오기를 바랐었는데. 왜 다들 아직도 하는 거냐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기분 나쁜 꿈을 꾼 것만도 못해서 이젠 모두 포기하라고 하는 거냐고.

 

“으응, 뭐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개인연구를 하러간다는 말을 남기고 무라사키바라 또한 밖으로 나갔다. 문자를 확인한 쿠로코는 노트북을 접어 옆구리 사이에 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아오미네 군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 그리고 아카시 군이 오늘 일찍 가셔서 쉬라고 전해주라 하시더군요.”

 

 말을 마친 쿠로코는 등을 돌려 나갔다. 젠장,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오미네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키세, 키세, 키세. 쉴 새 없이 키세를 불렀다.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오미네는 결국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외투를 단단히 여미며 차에 올라탔다. 핸들을 잡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 아오미네는 시동을 걸었다.

 

*

 

 집에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외투를 대충 집어 던진 아오미네는 침대에 엎어졌다. 젠장, 미치겠다. 욕설이 입 안에 맴돌았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대체 어떤 믿음으로 널 기다리고 있는 걸까. 네가 정말 내 곁에 돌아 올 수 있는 걸까.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문을 열었다. 여전히 웅웅거리며 있는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있는 너 또한.

 

“키세.”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키세.”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제발 이제 돌아와 주면 안 되냐. 내가 그렇게 많은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냥 네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내게 과분한 거냐. 아오미네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자신도 뭐하고 있는 건지. 내가 이렇게 약해져서야 되겠냐고. 삑, 삑. 기계음이 들렸다. 어라, 뭐지. 아오미네는 화들짝 놀라 기계로부터 살짝 떨어진 컴퓨터를 응시했다. 코드가 뽑혀서 나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럼 뭐지? 멍하니 기계에 난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키…세?”

 

 아오미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직 눈을 뜬 것은 아니었다. 그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하다. 키세는 약간 울 것 같은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잠에 빠져 있던 것과는 다르다. 아오미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난, 틀리지 않았어.

 

*

 

 거리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아아, 벌써 봄이 찾아 온 건가. 아오미네는 손을 창밖으로 뻗어 바람의 스침을 느꼈다. 꽃망울이 맺히고 싹이 트는 계절. 이제 키세도 깨어날지도 몰라.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너와의 첫 데이트도 이렇게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근처 공원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는데. 서로의 아이스크림을 뺏어먹는 것도 그렇게 재밌던 나날들이었는데. 그래, 다시 그런 날로 돌아갈 수 있어. 아아, 빨리 깨어나면 좋을 텐데.

 

 네가 돌아온다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할까. 아, 그래. 지난 5년간의 일들을 말해주자. 매일 너에게 말을 걸었지만 너는 잠들어 있었을 테니 못 들었을지도 몰라. 가장 먼저 그것부터 하자. 그리고 또 뭘 할까. 놀이동산? 아, 그건 좀 무리이려나. 음, 그것도 괜찮을 거 같아. 집에서 하루 종일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리고 네가 먹고 싶어 했던 것들을 먹고, 영화 DVD도 빌려와서 하루 종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 그냥 너와 함께 있고 싶은걸.

 

 그 뒤에는 네 얘기를 들려줘. 어떤 꿈을 꿨고 꿈속에서 무얼 봤는지. 시시한 꿈이어도 좋아.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네 무릎에 누워 눈을 감고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 그저 그것만이라도 좋아. 그러니까 제발.

봄이니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봄이니까.

*

 

 방 안이 엥 엥 소리로 가득 찼다. 어째서? 아오미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분명 괜찮았다. 봄이었다. 그러니까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따뜻한 봄내음과 함께 돌아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많은 걸 바란 거냐. 단지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했던 거냐고. 책상을 내리쳤다.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잠잠하던, 잠을 자고 있던 그 때와는 달랐다. 이건 정말 위험해. 진짜 죽을 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더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멍하니 그가 잠들어있을 기계를 바라보았다. 이게 네 진심이었냐, 키세.

 

 환기를 위해 열어둔 조그만 창문을 통해 싸한 바람이 들어왔다. 봄, 아니었나. 창문 앞에 섰다. 쌀쌀한 공기.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봄기운이 물씬 풍기던 것 같았는데.

 

 아오미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나긴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

 거의 넋 나간 상태로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연민, 동정. 이제 현실을 깨달은 거냐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키세는 기계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할지도 모른다. 입안이 텁텁해졌다.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었다. 어느 순간 다시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봄이니까 돌아올 거란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미 그 기대는 무너진 지 오래다.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오미네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웅 웅 거리는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 소리도 5년 만에 사라지겠지. 마지막으로 기계 앞에 섰다.

 

 안녕, 키세. 이제 보내 줄게.

 

 기계 가동을 중지하고 너를 꺼내서 바다에 뿌려줄게. 언제 네가 원했던 것처럼. 바다에 뿌려달라는 네 소원처럼.

 

 손을 기계 위에 얹었다.

 

“안녕.”

 

 눈을 질끈 감았다.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기계를 관리하고 있는 컴퓨터 앞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조작을 하면, 이제 정말 안녕.

살며시 눈을 떴다. 아. 입이 살짝 벌어졌다. 눈이 커졌다. 하얀 손이 자신의 손이 닿은 유리에 닿아 있었다.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실 같은 목소리가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키……세.”

 

 하얀 손의 주인은 생긋 웃었다. 창백한 입술이 움직였다.

보고 싶었어요, 아오미넷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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