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황]이별후애(異別後愛)

쿠로바스 | 2015. 3. 1. 12:06
Posted by 물빛녘

※[쿠로바스/청황]이별(http://teato263.tistory.com/16) 의 외전격 스토리입니다.

이별을 보셔야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합니다.

 

※異別後愛(이별후애) : 이별 후의 사랑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厚愛 (후애) : 깊이 사랑함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한자는 다르지만.)


[쿠로바스/청황]이별후애(異別後愛)

written by. 티토

 

"헤어져요."

 

 연습한 듯 담담한 어조. 미련을 버린 듯한 행동. …그래, 그게 너가 원하는 거라면.

 

"알았어."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이별선고를 받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던 너는 단숨에 자기 할말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별, 이라. 그 말은 피부로 와닿지 못했다. 외면하려고 했다는 게 적당한 말일지도 모른다.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 사실은 예감하고 있던 것일지도. 살짝 눈을 내리까니 너의 정수리가 보였다. 왜 눈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꼴보기 싫어서?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나는 모든지 해 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상처받은 눈은 하지 마라.

 

 사랑이라는 것을 했다. 아직 고교생 1학년밖에 안되는 녀석이 뭔 사랑이겠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원인 모를 사랑에 빠졌다. …너는 모르겠지만. 곁에 있으면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우는 모습도, 웃는 모습도, 화난 모습도 너라면 좋았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있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랬건만 너는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있던 시간들은 어땠어, 키세?

 

 네가 뿌리쳤던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이 손을 네가 잡을 날은 없다. 괜한 감상에 젖어 있는 내가 우스워 상체를 숙여 차가운 유리테이블에 뺨을 갖다 대었다. 정신이 멀쩡해질수록 네 얼굴은 더욱 또렷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결국 숙였던 상체를 다시 들었다. 눈 앞에 앉아있는 테츠의 표정이 보기 싫을 정도로 험악해져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눈 앞의 케이크를 먹기위해 포크를 들던 나는 다시 손을 응시했다.

 

 잡지 않았다, 가 아니라 잡지 못했다. 나는 이미 너에게 수많은 상처를 입혔고 그것은 회복될 수 없는 흉터로 남았다. 그런 내가 너를 잡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너를 잡는 내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왔다. 우스운 일이다. 나는 너를 잡을 권리가 없었고, 나는 결국 너를 떠나보냈다.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참을 손만 보고 있자니 앞에 앉아있던 테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미네 군, 너나 키세 군이나 답답하군요."

 

 신랄한 어조로 말한 테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사츠키는 키-쨩이 안 받아ㅡ!, 라며 울상을 지었다. …왜 전화하는 거냐, 넌. 설마 그 녀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 생각한거냐. 사츠키가 폰을 내려놓자 그럼 제가 다시 걸어보죠, 라며 테츠가 폰을 들었다. 번갈아가며 몇 번이나 그 짓을 하던 둘은 나를 응시했다.

 

"아오미네 군이 전화를 걸어보세요."

 

"맞아, 다이쨩이라면 받을지도 모르고. 둘 사이의 일이니까."

 

 포크로 케이크를 헤집어 놓던 나는 잠시 엉망이 되어버린 케이크 조각을 응시하다 시선을 살짝 올려 테츠를 바라보았다. 냉담한 시선과 부딪혔다. 잠시 그 시선을 받아내던 나는 입술을 조금 움직여 말했다.

 

"싫어."

 

"…다이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츠키의 고음이 귀를 찔렀다. 고막 터지는 줄. 귀를 막고 흘겨보자 사츠키도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자신의 목소리가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다행인 소리지만 지금 가게 안에는 우리 셋을 제외한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의 점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건넨 사츠키는 얼굴을 확 굳히며 나를 노려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전화해서, 받아서, 그래서 뭐."

 

"…뭐, 뭐냐니. 화해해야지. 다이쨩이랑 키-쨩 싸운 거 한 두 번도 아니니까 금방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무, 물론 이번은 좀 심했지만."

 

 힐끔 사츠키의 얼굴을 보다 포크로 다시금 케이크를 헤집었다.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케이크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가 접시 밖으로 떨어졌다. 포크로 간신히 들어 접시에 올려놨다. 그리고 꾹꾹 눌렀다.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먹음직스럽던 케이크 조각이었건만 이제는 보기 흉한 꼴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한 일이지만.

 

"그래서."

 

"그, 래서라니?"

 

"즉, 아오미네군은 지금 상황이 해결된다고 해봤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재발할지도 모른다, 이 말씀이신가요?"

 

 말없이 나와 사츠키의 대화를 지켜보던 테츠가 정리하듯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가 찬 듯 사츠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열심히 헤집던 포크를 내려놓고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꼴에 레몬에이드라고 레몬을 잔에 끼워넣은 게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나왔다. 노란색만 보면 어째 너가 떠오르냐. 샛노란 머리카락, 레몬색 눈동자. 살짝 웃음을 머금고 레몬조각을 집었다. 입으로 가져가 베어물었다. 시다. 신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장난 삼아 네 목덜미를 물었을 때는 이렇게 신 맛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오미네 군."

 

"왜."

 

"후회하지 않으실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후회? 삐죽 웃으며 대꾸했다.

 

"후회고 자시고 간에 이쪽은 차인 쪽인데, 질문을 한 상대가 잘못된 거 아니냐."

 

 이미 끝이 난 관계다. 이 사실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는 아니라는 거다. 차일 때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매달리는 일은 구차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키세가 그걸, 헤어지는 걸 원한다, 잖냐.  그걸로 얘기는 끝, 아니냐.

 

"저, 다이쨩. 키-쨩이 홧김에 얘기한 건 아닐까? 참다가 참다가 펑, 이라는 것처럼. 키-쨩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다이쨩밖에 없으니까.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다보면 다시 사이좋게, 응?"

 

 사츠키의 음성이 애원조로 바뀌었다. 친한 친구와 소꿉친구 사이에 있는 것이 부담인건지 안절부절못하는게 누가봐도 안쓰러울 정도다. 대꾸없이 턱을 괴며 포크를 허공에 휘둘렀다. 참았다, 라. 상대의 불의를 참는다, 화를 참는다, 눈물을 참는다……. 애초에 그걸 여태까지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 라고 대꾸하려다 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나는 뭔가 들어줄 자세는 되어 있었던가. 연인이라며 좋아한다며 그랬던 나는 내 얘기만 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늘 나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그런 내가 뭐? 이런 내가 너를 잡을 수는 있었던 거냐.

 

"안 봐도 뻔하죠. 이유도 묻지 않고 알았다고 했겠죠, 아오미네 군이라면. 그래서, 키세 군께 할 말은 없는 겁니까?"

 

 키세에게 할 말? 글쎄. …키세, 너는 내게 첫사랑이었다. 표현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속마음을 너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사랑했다, 사랑한다, 앞으로도 나에겐 너 뿐.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하고 싶은 말들을 나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왜 지금에서야 이 말들을 떠올린 걸까.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네가 힘들 일도, 외로울 일도 없지 않았을까. 자신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너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나라는 놈을 만나면서 너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나와 데이트라는 걸 할 때 너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무 말없이 너의 몸만 탐하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아, 젠장."

 

 머리를 헤집었다. 왜 이렇게 네가 보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네가 원한다면 보내 줄 자신이 있었다. 너의 행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너의 손을 잡지 못 했던 내 손이 원망스러운 거냐. 이를 악물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늦어서 미안."

 

 카가미가 헐레벌떡 가게 안으로 뛰어왔다. 테츠 옆에 자리 잡은 녀석이 키세를 봤는데, 라고 말을 꺼냈다. 테츠가 나를 힐끔 보더니 어디서 보셨나요, 라고 묻자 가게 근처 길거리 농구 코트에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면서 테츠가 말했다.

 

"후회할 일은 하지 마세요. 그건 …중학교 때 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

 

 근처 길거리 농구 코트를 찾아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속은 불안감에 썩어 문드러졌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걸까. 이 관계를 되돌릴 수는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네가 돌아올까. 내가 잘못했다, 돌아와 달라? 모르겠다. 뭐가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걸 그만두자. 그저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자. 너가 듣고 싶어했지만 꺼내지 않았던 내 속마음을 들려주자.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멀리 너가 보였다. 나를 발견한 건지 너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짓게 한 것이 나라는 걸 떠올리자 나도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네가 한손으로 튕기던 공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 공이 내 신발을 툭, 하고 쳤다. 주울까 잠시 고민하다 너를 향해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잊어달라는 네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 때와 같다. 너가 헤어지자 했던 그 날도 아무말도 꺼낼 수 없었다. 네가 원하는 결말이 이거라 생각하자 잡으려던 손은 내려갔다. 지금도 나는 네 말에 응, 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나와 너는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네가 원하는 결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정말 염치없는 짓 한 번만 할게. 앞으로, 절대 너에게 하지 않을 짓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게 해 줘.

 

 발치에 있던 공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그 날처럼 공을, 농구공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이 날라갔다. 그리고 그 때처럼 명중. 너는 당황한 듯 이마를 붙잡고 나를 바라봤다.

 

"…미안. 오, 처음 뵙겠습니다, 카이조의 키세 료타 군? 첫눈에 반했습니다만, 저와 교제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절대로 놓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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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세, 아오이마, 카사키세


[쿠로바스/청황/청금/립황]같은 곳에 서서

written by. 티토

 

 

 한 눈에 반했다. 단박에 사랑이라 느꼈다. 중학생이었던, 어렸던 우리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볼 줄 알았다.


*


 첫 눈에 반했다, 라는 건 믿지 않았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감정따윈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느낄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거, 얼굴보고 반한다는 거잖아.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도 모른 채 반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ㅡ라는 건 예전에 가졌던 생각. 어릴 때부터 고수해오던 신념에 가까운 생각은 그를 본 순간 무너졌다. 농구공에 머리를 맞아 순간 정신이 이상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그에게, 아오미네 다이키라는 사내에게 한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햇볕에 지나치게 그을린 피부에 땀냄새 나는 그가 뭐가 그리도 멋져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덜컥 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그가 있을 농구부로 발걸음을 옮겼던 게 중2 봄날의 일. 체육관에서 봤던 그의 플레이에 넋을 놓고 있다가 그 날 부로 부장을 찾아가 입부 신청서를 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히 보고 싶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던 나였지만, 그 순간의 감정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소위 말하는 운명같은 사랑이라고.


*


 솔직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소문 속의 여자애들의 우상이 누군지 궁금해서? 글쎄, 그것도 그랬던 것 같고. 아마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얼마나 잘 생겼길래 여자애들이 사족을 못 쓰나 궁금해서가 가장 적절한 답이지 않을까. 누가 들으면 자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소꿉친구인 사츠키는 남자애들이 소개시켜 달라고 할 정도로 한 미모를 했기에-나는 잘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나는 눈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봤자 보통에서 위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건 농구공을 던져 그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봤던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철회. 이게 정말 인간의 얼굴이냐 할 정도였다. 태연함을 가장해 인사를 건넨 후 농구공을 받아 들고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나, 떨고 있진 않았겠지.


 요새 애들은 조숙해서 유치원 때, 소학교 때 한다는 첫사랑도 한 번 못 해봤던 나였지만 심장이 쿵쾅쿵쾅거리고 계속 그 사람만 생각난다는 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인지는 알았다. 아,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구나. 찡그린 표정의 그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계속해서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연습경기를 하고 있던 무리에 뛰어 들었다.


 그걸 통해서 그 녀석이 농구부에 입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앞으로 내 심장은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


 여름합숙 마지막 날이었다. 성공리에-라고 말하는 건 뭐하지만 무탈하게 끝났으니- 합숙을 마친 것을 축하하며 불꽃놀이를 하게 되었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고백을 받았다. 그것도 그에게.


 굉장히 얼빵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다행인지 주변은 어두웠다. 안 그랬으면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해 안절부절했을테니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폭죽소리와 함께 잠깐의 입맞춤.


*


 그 날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남자와 남자이니만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조바심을 냈던 건 그를 좋아하는 게 나뿐이 아니었으니까. 언젠간 다른 녀석의 손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여유라는 게 사라졌다. 그래서 부원 모두가 불꽃놀이에 정신 팔려 있을 무렵 그를 따로 불러냈다. 어두워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어울리지도 않게 얼굴이 붉어진 모습을 보여줄 뻔 했다.


 놀란 녀석이 입만 쩍 벌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저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놀란 모습도 예쁘냐.


 내민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하늘에서 터지는 불빛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살짝 고개 돌린 그의 뺨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이것도 예정한 바는 아니었다만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가 대었다.


 아아, 심장 터질 것 같아.


*


 첫 데이트였다. 생애 첫 데이트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 이때까지 사귀었던 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데이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머리를 만지기도 하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옷장 안에 있던 옷들을 침대에 늘어놓고 패션쇼를 하는 등 부산하게 준비를 했다. 작은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데이트하니, 라고 물었다. 그렇게 티 나나. 헤죽 웃으면서 응, 이라고 대답했다. 아아, 정말 좋아.


 …비록 데이트 목적이 농구화 사러가는 것이기는 하다만. 뭐, 아무렴 어때. 주말에도 같이 있을 수 있는데.

 

*

 

 나는 정말 바보입니다…. 농구화 사러 가자, 가 뭐냐고. 정말 데이트 신청하는 녀석 중에 이렇게 한심한 걸로 신청하는 건 나밖에 없을 거다. 그 녀석은 여태까지 많은 데이트를 해왔을 게 분명한데,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냐고. 침대를 뒹굴며 한심했던 내 모습을 비웃었다. 머리가 정전기로 인해 부스스해진 것을 거울로 확인한 후 욕실로 들어갔다. …일단 찬 물을 맞으면서 정신 차리는 게 먼저다.

 

*

 

 첫 데이트는 무사히 마쳤다. 농구화를 산 뒤 헤어지기 싫어 아이쇼핑을 하러 돌아다니던 우리는 우연히 영화관 앞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 했는데 내가 그를 붙잡았다.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같이 봐 주면 안 되냐고 조심스레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세.

 

 팝콘을 사러 그가 자리를 떴다. 매표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을 때 주변에서 키세 료타가 아니냐고 수근거리는 소리에 애써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었다. 무도수 안경을 살짝 치켜 올린 후 영화관 직원 앞에 섰다. 그러니까 저 영화 표 두 장 주세요, 라고 말하니 직원도 혹시 키세 료…, 라고 묻길래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일이나 하시죠. 표를 받아든 후 팝콘을 사들고 기다리는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영화? 액션영화임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선택은 좋았다. 적절한 액션씬과 적절한 로맨스. 그리고 그와 함께 관람.

 

*

 

 마침 그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아이쇼핑만 하다가 헤어질 뻔했다. 첫 데이트가 순식간에 끝날 뻔.

 

 내가 팝콘을 사겠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표를 산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팝콘을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힐끔 뒤를 보니 그는 주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며 말을 걸까 말까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너희들의 그 '키세 료타'가 내 애인이라고. 어깨를 주욱 펴고 이상하게 나를 보는 직원에게서 팝콘과 콜라 두 잔을 사 들었다.

 

 그나저나 무슨 영화지. 표를 사 들고 걸어온 그에게 물었다. 액션영화임다. 싱긋 웃으며 그가 대답했다. 액션 영화 좋아하거든요, 라고 덧붙인 그는 내게서 콜라 하나를 받아들어 주욱 마셨다. 나도 액션 영화 좋아하는데, 애써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우와, 진짜요? 똑같다ㅡ. 환한 미소와 함께 그가 그렇게 말하자 심장이 쿵 떨어질 것 같았다. 우, 우와…, 잠시라도 방심하면 안 돼.

 

*

 

 그가 변했다, 라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나. 순수하게 농구바보이던 그는 어디로 간걸까. 공식전때의 그는 뭔가 이상했다. 혹시 기분탓일까 싶어 그와 친한 쿠로콧치한테도 물어봤지만 똑같은 감상평이 돌아왔다. 강해지면 더 재밌어지는 게 아니었던걸까. 나를 대하는 건 평소와 비슷했지만 농구에 관해서는 달랐다. 아냐, 이건 정말 아냐. 내가 좋아했던 건 농구를 좋아하고 열심이던 그였다. 이렇게 변해버린 그에게 더 이상 가슴은 두근거리지 않았다. 아아, 조금 변했다고 이렇게 마음이 쉽게 변해버리는 걸까. 어색한 내 모습에 쓴 웃음이 흘러 나왔다. 자조적으로 웃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농구가 지겹다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었다.

 

*

 

 컨디션이 좋다, 일 뿐이었다. 그러나 올해도 잘 부탁한다던 상대는 포기한듯 경기에 임했다. 지금, 장난, 치는 거냐고. 어이없음에 그를 돌아보자 '괴물'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아, 젠장. 이게 뭐가 즐거워.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에 열심히 임할 필요는 없었는데. …연습? 그렇구나, 내가 연습을 안 해도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어.

 

 그는 여전히 좋다. …아니,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마치 그저 의무감에ㅡ.

 

 1 on 1하자고 조르던 그가 좋았는데 지금은 그저 귀찮을 따름이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감정은 결국 변해버렸는가. 변해버린 내 모습에 쓰게 웃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 때뿐.

 

*

 

 카이조에 진학했다. 이유는 교복 색. 좋아하던 그의 색. 바다같은 색에 매료되어 정신차리고 보니 카이조에 입학을 한 상태였다. 당연한 거지만 카이조 농구부에 스카우트해서 오게 된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능력만이 중요할 뿐.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나를 카사마츠라는 사람이 꾸짖었다. 넌 카이조의 1학년 키세 료타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카이조 농구부의 1학년 키세 료타.


*


 토오에 진학했다. 이유는 간단. 연습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뭐 잔소리꾼 사츠키가 따라왔긴 했다만 그러던가 말던가. 옥상에 들어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때만 해도 그랑 같은 학교에 진학할 거라 생각했는데. 매일 얼굴을 보며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카이조, 라던가. 카나가와까지 간 그는 이제 정말 나와 멀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는데, 이 경우는 반대인가.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


*


 키세, 무리하는 거 아니냐. 세이린과의 연습시합에서 진 후 모델 일도 그만두고 연습에 열중하던 나에게 카사마츠 선배가 말했다. 괜찮슴다, 다음번에 리벤지해야하니까요. 경쾌하게 대답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선배는 핫, 하고 웃으며 나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어째서?! 얼빵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선고하듯 카사마츠 선배가 말했다. 너무 과하게 해도 안 좋아, 조금 쉬도록 해, 바보 녀석같으니라고. 그렇게 강제로 연습 중지 당했슴다…. 우울한 표정을 띄우고 쉬고 있던 모리야마 선배에게 가서 꿍얼거렸다. 그러자 선배는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셨다.

 

 그게 그 녀석 나름대로 생각해주고 있는 거야, 뭐 연습도 과하면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여자만 밝히던 모리야마 선배에게 나온 말에 감탄사를 내뱉다가 문득 카사마츠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약간 붉어진 귓볼. …어, 어라? 열이 볼로 몰리는 기분이 들어 양손을 뺨에 가져갔다. 어라, 너 빨갛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모리야마 선배의 말은 뇌로 전달되지 않고 다른 귀로 빠져나왔다.

 

*

 

 저 녀석 연습 너무 안 한다고요, 에이스라지만 너무 오냐오냐하시는 거 아닙니까?!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며 와카마츠-선배라는 칭호따위 붙이지 않는다-가 말했다. 그러자 음험한 안경잡이는 단상에 누워 빈둥거리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들려온 말은 더 가관이었다. 냅두레이, 경기 때 잘 하면 되는 기다. 관서 사투리로 흥분한 와카마츠의 말을 자른 주장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히죽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떨떠름해진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와카마츠의 손에 들려 있던 공을 빼앗아 골대로 던졌다. 공을 빼앗겨 쨍알거리던 와카마츠는 내가 던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에 매끄럽게 들어가자 입을 다물었다.

 

 능력주의. 베베 꼬인 녀석들이 가득한 이 곳도, 실력만이 중요한 이마요시라는 사람도, 감독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나란 녀석에게는 딱일지도 몰라. 다시금 이마요시 상과 눈이 마주쳤다. 피하지 않고 나 또한 피식, 웃어줬다. 그 바람에 그 사람의 눈동자가 살짝은 보인 듯 했다.

 

*

 

 인터하이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여전했다. 독보적인 플레이도, 자신감 넘치는 그 자신도 뭐 하나 바뀐 게 없었다. 그걸 보고 나는 안심을 했던가, 실망을 했던가.

 

*

 

 언젠가 붙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그게 고교 진학 후 첫 공식경기에서일 줄이야. 녀석은 달라져 있었다. 테츠네 학교와 했던 연습경기의 영향인가. 그가 나를 카피했단 사실을 놀라웠다만 그 뿐. 마지막 실수는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내 농구에는 동료에게 의지하는 것 따윈 없어, 키세.

 

*

 

 졌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서지 못 하는 나에게 카사마츠 선배가 손을 내밀었다. 선배가 일으키다시피 해서 일어선 나는 선배에게 기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나는 아직도 그를 뛰어 넘을 수 없는 걸까. 그의 농구를 좋아했다. 그를 동경했다. 그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그건 이제 끝이다.

 

 아오미넷치와 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

 

*

 

 이겼다, 해도 기쁘지 않았다. 그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내게 손을 뻗을 권리는 있는 걸까.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가끔 만났다. 그렇지만 그건 의무감에서 나온 것일뿐 두근거림은 배제된 담백한 관계였다. 가끔 만나서 데이트같은 걸 하고 관계를 가진다. 이런 게 연인이라는 건 맞는 걸까. 괜찮냐는 이마요시 상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니, 괜찮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 첫사랑이었다. 한 눈에 운명이라 믿었다.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내 감정을 과신했다.

 

 키세와 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다.

 

*

 

 우리는 중 2 봄날 운명처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운명이라 믿었다. 같은 곳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ㅡ.

 

 ㅡ우리는 같은 곳에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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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적황]시험공부

쿠로바스 | 2015. 3. 1. 11:55
Posted by 물빛녘

※아카키세

[쿠로바스/적황]시험공부

written by. 티토



 사각 사각, 샤프 소리만 들려온다. 눈 앞의 문제에 집중하려했지만 검은 건 글이요 흰 건 종이일 뿐, 문장으로 도저히 다가오지 않았다. 우우, 집중 안 돼. 시무룩한 표정으로 문제집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들자마자 붉은 눈동자와 아이컨택. 흠칫 몸을 떨자 '추워?'라는 물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나를 향했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학문제가 저렇게 쉽게 풀리는 거였던가. …아니, 전혀. 너는 공부에 가망이 없다며 지금부터 살 길을 찾자고 모델 일을 권유했던 것이 바로 큰누나였다. 가족 회의에서 연설하다시피 말한 큰누나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ㅡ. 아, 암울해졌다.


"키세?"


 걱정스런 목소리로 눈 앞의 남자가 물었다. 칭얼거리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죄송함다, 아카싯치! 이번 시험은 무리임다! 낙제 확정…. 히터도 제대로 안 틀어주는 교실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은 확정. 울고 싶다, 진짜…. 방전상태에 돌입한 내가 웃겼는지 풋, 하고 내 머리 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우우, 너무 함다. 저는 나름대로 심각한데."

 

"하하, 미안. 뭔가 모르는 문제라도 있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좀 전까지 관찰하고 있던 문제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카싯치가 문제집을 받아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자 손을 뻗어 이번 시험범위의 맨 앞부터 문제집 제일 뒷장까지 팔랑팔랑 넘긴 뒤 당당하게 외쳤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아 모르겠슴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데."

 

 아카싯치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중얼거렸다. 저번 시험에 낙제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기적이었슴다, 라고 하면 아카싯치는 무너지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에 애꿎은 지우개만 잡아 뜯었다.

 

 내가 아카싯치의 초호화 저택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까닭은 시험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나와 같이 아슬아슬한 성적의 소유자인 아오미넷치는 미도리맛치와 모못치가 달려들어 교육 중이라고 한다. 나는 입학 이래 수석을 놓치지 않는 아카싯치가 맡게 되었다. …죄송함다, 아카싯치. 힘내세요, 미도리맛치, 모못치. 농구부 주전인 나와 아오미넷치가 전교 뒤에서 노는 성적의 소유자여서 피해를 받고 있는 세 사람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정말 곤란한걸, 이 상태로 가다간."

 

 여유로움을 되찾았는지 싱긋 웃으며 말한 아카싯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투명단권파일을 몇장 꺼내 들고 와 그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게 뭐지?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 시선을 내려 글을 확인하니 요점정리였다. 그것도 보기 쉽게 정리된. 입이 쩍 벌어졌다. 종이를 한 장 꺼내 글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아카싯치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대단함다, 아카싯치! 지, 지리가 이렇게 쉬울 줄은!"

 

"너무 띄워줘도 곤란한데. 자자, 귀로 듣는 게 더 효과적일테니까 설명해줄게."

 

 종이를 여러장 들고 온 아카싯치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카싯치, 정말 좋아!

 

*

 

"오늘은 이정도로 할까."

 

 수많은 종이들을 정리하며 아카싯치가 오늘의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우아아, 힘들다. 테이블에 엎어졌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노트에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최고의 수업이었다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움직이지 않고 집중한다는 것은 더더욱. 팔을 주욱 내밀며 몸을 풀었다. 불평 안 하고 잘들어줬는걸, 이라는 말에 히죽 웃었다. 아카싯치의 드문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정말 저 잘했슴까?"

 

"응. 지루할텐데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잖아. …그나저나 아오미네 쪽이 걱정인걸. 미도리마와 모모이를 붙여놓긴 했지만…. 미도리마와 아오미네는 상성이 안 맞으니까."

 

"아카싯치 설명 재밌었슴다! 에에, 그렇네여. 근데 그렇다고 무라사키바랏치에게는 조금…. 아, 쿠로콧치는요?"

 

"쿠로코는 아오미네와는 농구 이외에 안 맞는 편이니까. 더군다나 부족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먼저 거절 의사를 밝혔거든."

 

 흐음, 그렇슴까.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하기야 아오미넷치나 쿠로콧치, 둘의 말에 따르면 농구 이외에는 전혀 맞는 구석이 없다고 했으니까. 아카싯치가 정리한 파일들을 내게 내밀었다. 어라, 이거 뭠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보자 싱긋 웃으며 들고 가라는 말이 들려왔다.


"에, 힘들게 정리한 건데 저 주셔도 되는 검까?"


"아아, 이거 키세 주려고 따로 정리한 거니까. 내 껀 여기."


 다른 파일 뭉치를 가리키며 살짝 웃은 아카싯치가 입을 다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그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아 멀뚱히 지켜보고 있자 이내 아카싯치가 고개를 들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뭐야?


"열심히 했으니까 상을 줘야겠지?"


"상…임까?"

 

 얼떨떨한 기분이 들어 뜸을 들이며 반문하자 아카싯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나를 향해 뻗었다. 응? 뺨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뭔가 말랑한게 뺨에 와닿았다. 응, 뭐야? …어라?

 

"아, 아카싯치?!"

 

"수고했어, 키세. 내일도 열심히 하면 해줄게."

 

 아카싯치의 미소에 나는 또다시 테이블에 엎어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우, 반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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