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청황]이별후애(異別後愛)
※[쿠로바스/청황]이별(http://teato263.tistory.com/16) 의 외전격 스토리입니다.
이별을 보셔야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합니다.
※異別後愛(이별후애) : 이별 후의 사랑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厚愛 (후애) : 깊이 사랑함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한자는 다르지만.)
[쿠로바스/청황]이별후애(異別後愛)
written by. 티토
"헤어져요."
연습한 듯 담담한 어조. 미련을 버린 듯한 행동. …그래, 그게 너가 원하는 거라면.
"알았어."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이별선고를 받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던 너는 단숨에 자기 할말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별, 이라. 그 말은 피부로 와닿지 못했다. 외면하려고 했다는 게 적당한 말일지도 모른다.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 사실은 예감하고 있던 것일지도. 살짝 눈을 내리까니 너의 정수리가 보였다. 왜 눈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꼴보기 싫어서?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나는 모든지 해 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상처받은 눈은 하지 마라.
사랑이라는 것을 했다. 아직 고교생 1학년밖에 안되는 녀석이 뭔 사랑이겠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원인 모를 사랑에 빠졌다. …너는 모르겠지만. 곁에 있으면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우는 모습도, 웃는 모습도, 화난 모습도 너라면 좋았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있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랬건만 너는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있던 시간들은 어땠어, 키세?
네가 뿌리쳤던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이 손을 네가 잡을 날은 없다. 괜한 감상에 젖어 있는 내가 우스워 상체를 숙여 차가운 유리테이블에 뺨을 갖다 대었다. 정신이 멀쩡해질수록 네 얼굴은 더욱 또렷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결국 숙였던 상체를 다시 들었다. 눈 앞에 앉아있는 테츠의 표정이 보기 싫을 정도로 험악해져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눈 앞의 케이크를 먹기위해 포크를 들던 나는 다시 손을 응시했다.
잡지 않았다, 가 아니라 잡지 못했다. 나는 이미 너에게 수많은 상처를 입혔고 그것은 회복될 수 없는 흉터로 남았다. 그런 내가 너를 잡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너를 잡는 내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왔다. 우스운 일이다. 나는 너를 잡을 권리가 없었고, 나는 결국 너를 떠나보냈다.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참을 손만 보고 있자니 앞에 앉아있던 테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미네 군, 너나 키세 군이나 답답하군요."
신랄한 어조로 말한 테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사츠키는 키-쨩이 안 받아ㅡ!, 라며 울상을 지었다. …왜 전화하는 거냐, 넌. 설마 그 녀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 생각한거냐. 사츠키가 폰을 내려놓자 그럼 제가 다시 걸어보죠, 라며 테츠가 폰을 들었다. 번갈아가며 몇 번이나 그 짓을 하던 둘은 나를 응시했다.
"아오미네 군이 전화를 걸어보세요."
"맞아, 다이쨩이라면 받을지도 모르고. 둘 사이의 일이니까."
포크로 케이크를 헤집어 놓던 나는 잠시 엉망이 되어버린 케이크 조각을 응시하다 시선을 살짝 올려 테츠를 바라보았다. 냉담한 시선과 부딪혔다. 잠시 그 시선을 받아내던 나는 입술을 조금 움직여 말했다.
"싫어."
"…다이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츠키의 고음이 귀를 찔렀다. 고막 터지는 줄. 귀를 막고 흘겨보자 사츠키도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자신의 목소리가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다행인 소리지만 지금 가게 안에는 우리 셋을 제외한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의 점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건넨 사츠키는 얼굴을 확 굳히며 나를 노려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전화해서, 받아서, 그래서 뭐."
"…뭐, 뭐냐니. 화해해야지. 다이쨩이랑 키-쨩 싸운 거 한 두 번도 아니니까 금방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무, 물론 이번은 좀 심했지만."
힐끔 사츠키의 얼굴을 보다 포크로 다시금 케이크를 헤집었다.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케이크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가 접시 밖으로 떨어졌다. 포크로 간신히 들어 접시에 올려놨다. 그리고 꾹꾹 눌렀다.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먹음직스럽던 케이크 조각이었건만 이제는 보기 흉한 꼴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한 일이지만.
"그래서."
"그, 래서라니?"
"즉, 아오미네군은 지금 상황이 해결된다고 해봤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재발할지도 모른다, 이 말씀이신가요?"
말없이 나와 사츠키의 대화를 지켜보던 테츠가 정리하듯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가 찬 듯 사츠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열심히 헤집던 포크를 내려놓고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꼴에 레몬에이드라고 레몬을 잔에 끼워넣은 게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나왔다. 노란색만 보면 어째 너가 떠오르냐. 샛노란 머리카락, 레몬색 눈동자. 살짝 웃음을 머금고 레몬조각을 집었다. 입으로 가져가 베어물었다. 시다. 신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장난 삼아 네 목덜미를 물었을 때는 이렇게 신 맛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오미네 군."
"왜."
"후회하지 않으실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후회? 삐죽 웃으며 대꾸했다.
"후회고 자시고 간에 이쪽은 차인 쪽인데, 질문을 한 상대가 잘못된 거 아니냐."
이미 끝이 난 관계다. 이 사실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는 아니라는 거다. 차일 때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매달리는 일은 구차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키세가 그걸, 헤어지는 걸 원한다, 잖냐. 그걸로 얘기는 끝, 아니냐.
"저, 다이쨩. 키-쨩이 홧김에 얘기한 건 아닐까? 참다가 참다가 펑, 이라는 것처럼. 키-쨩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다이쨩밖에 없으니까.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다보면 다시 사이좋게, 응?"
사츠키의 음성이 애원조로 바뀌었다. 친한 친구와 소꿉친구 사이에 있는 것이 부담인건지 안절부절못하는게 누가봐도 안쓰러울 정도다. 대꾸없이 턱을 괴며 포크를 허공에 휘둘렀다. 참았다, 라. 상대의 불의를 참는다, 화를 참는다, 눈물을 참는다……. 애초에 그걸 여태까지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 라고 대꾸하려다 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나는 뭔가 들어줄 자세는 되어 있었던가. 연인이라며 좋아한다며 그랬던 나는 내 얘기만 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늘 나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그런 내가 뭐? 이런 내가 너를 잡을 수는 있었던 거냐.
"안 봐도 뻔하죠. 이유도 묻지 않고 알았다고 했겠죠, 아오미네 군이라면. 그래서, 키세 군께 할 말은 없는 겁니까?"
키세에게 할 말? 글쎄. …키세, 너는 내게 첫사랑이었다. 표현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속마음을 너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사랑했다, 사랑한다, 앞으로도 나에겐 너 뿐…….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하고 싶은 말들을 나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왜 지금에서야 이 말들을 떠올린 걸까.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네가 힘들 일도, 외로울 일도 없지 않았을까. 자신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너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나라는 놈을 만나면서 너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나와 데이트라는 걸 할 때 너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무 말없이 너의 몸만 탐하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아, 젠장."
머리를 헤집었다. 왜 이렇게 네가 보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네가 원한다면 보내 줄 자신이 있었다. 너의 행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너의 손을 잡지 못 했던 내 손이 원망스러운 거냐. 이를 악물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늦어서 미안."
카가미가 헐레벌떡 가게 안으로 뛰어왔다. 테츠 옆에 자리 잡은 녀석이 키세를 봤는데, 라고 말을 꺼냈다. 테츠가 나를 힐끔 보더니 어디서 보셨나요, 라고 묻자 가게 근처 길거리 농구 코트에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면서 테츠가 말했다.
"후회할 일은 하지 마세요. 그건 …중학교 때 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
근처 길거리 농구 코트를 찾아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속은 불안감에 썩어 문드러졌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걸까. 이 관계를 되돌릴 수는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네가 돌아올까. 내가 잘못했다, 돌아와 달라? 모르겠다. 뭐가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걸 그만두자. 그저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자. 너가 듣고 싶어했지만 꺼내지 않았던 내 속마음을 들려주자.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멀리 너가 보였다. 나를 발견한 건지 너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짓게 한 것이 나라는 걸 떠올리자 나도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네가 한손으로 튕기던 공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 공이 내 신발을 툭, 하고 쳤다. 주울까 잠시 고민하다 너를 향해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잊어달라는 네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 때와 같다. 너가 헤어지자 했던 그 날도 아무말도 꺼낼 수 없었다. 네가 원하는 결말이 이거라 생각하자 잡으려던 손은 내려갔다. 지금도 나는 네 말에 응, 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나와 너는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네가 원하는 결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정말 염치없는 짓 한 번만 할게. 앞으로, 절대 너에게 하지 않을 짓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게 해 줘.
발치에 있던 공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그 날처럼 공을, 농구공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이 날라갔다. 그리고 그 때처럼 명중. 너는 당황한 듯 이마를 붙잡고 나를 바라봤다.
"…미안. 오, 처음 뵙겠습니다, 카이조의 키세 료타 군? 첫눈에 반했습니다만, 저와 교제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절대로 놓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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