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적황]복종

쿠로바스 | 2015. 3. 1. 11:39
Posted by 물빛녘

※아카키세

[쿠로바스/적황]복종

written by. 티토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찔렀다. 밀려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시야가 눈물로 인해 뿌옇게 흐려졌다. 안 돼, 료타, 나를 봐야지. 서늘한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들자 익숙한 붉은 머리가 보였다. 아카싯치.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이랬던가. 아니, 중학교 때의 그는 다소 권위적이긴 하나 친절했다. 상냥했고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지? 뺨에 와닿은 차가운 손에 놀라 흠칫하자 그가 낮게 웃었다. 진짜 아카싯치가 맞는 걸까. 얼굴이 닮았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 착하지, 료타."

 

 힐끗 눈동자를 굴려 옆을 보니 싸늘하게 변한 사람들이 보였다. 좀 전까지 나와 얘기하던 모델 친구들이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그였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가 한 짓이었다. 도대체 왜?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내 곧바로 그의 손에 의해 강제로 들리긴 했다만.

 

"료타."

 

"네."

 

 입술을 파르르 떨며 대답하자 만족스러운지 생긋 웃은 그는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뒷정리 귀찮겠는걸. 사람을 죽였는데도 태연한 어조였다. 얼마나 이런 것에 익숙한 걸까.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왼쪽 눈꺼풀 아래에 위치한 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노란색. 언제부터 그의 왼쪽 눈동자가 금빛이 되었지? 그가 자신의 능력을 개화하면서부터였나. 언제부터 아카싯치가 아카싯치가 아닌게 된 걸까. 내가 알던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저 안에 잠들어 있는 건가. 아니면 포악한 그가 잡아먹은 걸까.

 

"내가 말했잖아, 료타. 나 이외에는 다른 녀석들과 얘기하지 말라고. 그런데 너는 이렇게 어겼으니 어떻게 해야할까."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한 아카싯치는 끝에 싱긋 웃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어야 한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가 원해서일 뿐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채 용서를 빌었다.

 

"죄송함다. 용서해주세여, 아카싯치."

 

"으음, 하지만 용서해주면 또 료타가 어길텐데."


 재밌다는 듯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의 입가를 보던 나는 그의 신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는 게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하하, 영악한걸, 료타. 응, 그래야지. 주인에게는 복종해야하는걸 잘 알고 있구나."


 만족스러움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피냄새가 진동해 울컥 속의 것들이 올라올 뻔했다. 내 꼴을 본 아카싯치가 쇼파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짓을 하자 시체로 변한 사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피냄새의 근원이 사라지자 그나마 나아진 공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긴장을 늦추면 안 되었다. 침을 꿀꺽 삼킨 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내가 뭘 하면 좋을까. 그에게 내쳐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카싯치?"


 아무런 반응을 주지 않자 안달난 내가 그를 부르자 아카싯치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기 가득한 내 눈동자를 본 그가 곰곰히 생각하는듯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 그는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듯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벌을 줘야 료타가 말을 잘 들을 것 같단 말이지."


"잘, 잘못했슴다, 아카싯치."


 좀 전의 참극을 떠오르자 몸이 절로 떨렸다. 나도 그 꼴이 되는 건가. 두려움에 턱을 바르르 떨며 그를 올려다 보자 여전히 차가운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생각을 읽은 듯 후후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료타를 그것들처럼 만들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섭섭한걸. 으음, 뭐가 좋을까."


 신중하게 생각하는 척하던 그는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근처에 놓여진 물이 담긴 유리잔을 손에 들었다. 뭐지, 하는 순간 머리에서 차가운 게 후두둑 떨어졌다. 물? 의아함에 그를 보자 아카싯치는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젖었잖아, 료타. 그럼 벗어야지?"

 

[쿠로바스/립황]팀

쿠로바스 | 2015. 3. 1. 11:37
Posted by 물빛녘

※카사키세

[쿠로바스/립황]팀

written by. 티토

 

 

 다리부상으로 인한 에이스의 부재. 우리는 최선을 다 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한동안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 녀석에 대한 첫인상은 그저 샤랄라하는 재수없지만 재능많은 1학년 후배. 소문처럼 오만한 그 녀석은 마치 흰 옷에 묻은 색색깔의 물감같았다. 확연히 튀고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 딱 들어 맞았다. 그게 눈에 거슬렸던 나는 녀석이 농구부에 입부하던 그 날 크게 꾸짖었다.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라. 그 말을 오만한 모델 녀석이 어떻게 받아 들였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거만한 녀석은 자신을 굽혔다. …재능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다만.

 

 세이린과의 연습시합은 프라이드가 높았던 녀석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병행해오던 모델 일도 그만뒀을 정도면 진 게 그렇게도 쇼크였나 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주장의 입장으로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얼룩에 불과하던 물감은 붓을 통해 화려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자신만 알던 녀석이 모델 일을 접어두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한 에이스의 모습에 다른 부원들마저 열의에 불타올랐다.

 

 너무 부담을 줬을 지도 모른다. 악착같이 연습에 임하던 녀석은 기적의 세대 에이스인 아오미네 다이키를 카피해내는데 성공했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컸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몸으로 과한 연습을 견디고 시합에 임하던 녀석은 결국 다리부상을 입고 말았다. 후쿠다와의 시합에서 하이자키로 인해 부상은 더 심각해졌다. 무리한 상태로 기적의 세대마저 카피해냈다. 세이린과의 공식경기에서도. 녀석은, 키세는 심각해진 부상으로 3, 4위전에 참가하지 못 했다. 미도리마 신타로가 있는 슈토쿠와 키세 료타가 빠진 카이조의 경기는 뻔하게 카이조의 패배였다. 그렇게 내 마지막 고교 선수생활은 끝났다.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니었던 걸까.

 

 당연한 얘기지만 올해 윈터컵을 마지막으로 3학년은 은퇴했다. 주장의 자리를 나카무라에게 넘겨준 뒤 나름대로의 애정을 담아 힘내라는 말을 해줬다. 그리고 녀석의 금발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3학년이 은퇴함을 알리는 자리에 녀석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괘씸한 건 아니었다. 토오전이 끝난 다음 에이스로서의 실책을 얘기하던 그 녀석 얼굴이 떠올랐다. 혼자서 감내하고 있는걸까. 마지막 경기에 함께하지 못했던 에이스로서의 자신이 한심했던걸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수험생으로서 공부를 하는 틈틈히 후배 녀석들이 연습하고 있는 체육관을 찾아갔지만 금발은 여전히 없었다. 나카무라의 말에 따르면 연습에 참여하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애써 녀석을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녀석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농구가 싫어졌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은퇴한 전 주장이어서가 아니라 녀석의 삶에 간섭할 권리가 없어서였다. 농구부를 은퇴한 지금 나와 그는 남남이었다. 그렇게 졸업을 앞둔 지금도 키세를 만난 적이 없었다.

 

 졸업식 당일. 혼잡한 강당 안을 빠져 나와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3년 내내 연습했던 곳이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새삼스레 사색에 빠진 내가 우스워 바람빠진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 녀석은 없겠지만. 며칠 전 나카무라로부터 키세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너랑 다시 농구하고 싶은데. 체육관 안에서 탕탕 공을 바닥에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의아함을 띄고 안을 들여다 봤다. 환한 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금발을 바람에 흩날리며 농구를 하고 있는 것은 키세였다. 녀석이 날 발견했는지 눈이 커졌다. 그렇지만 이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공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장난스런 목소리.

 

"농구 하지 않겠슴까, 선배." 

 

*

 

"너 요즘 연습 안 나온다던데."

 

"에에, 나카무라 선배한테 들은검까."

 

 평이한 어조로 대꾸한 키세는 입을 다물었다. 뚫어져라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니 쳤다는 듯 두 손을 들며 연극조로 내 의문에 답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여. 그래서 이렇게 혼자."

 

 공을 가리키며 짓궂은 미소를 내보이며 말한 녀석은 다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한 몸부림. 나는 녀석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아픔다! 키세의 투덜거림에 한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대꾸했다.

 

"아프라고 때린건데."

 

"우아, 너무함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러는 검까!"

 

"그래, 오랜만이지. 나 연습 몇 번이나 보러 왔는데 니 녀석은 없더라?"

 

 금붕어라도 되는 양 뻐끔거리던 녀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손 많이 가는 녀석이구만. 한숨을 내쉰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힐끔힐끔 녀석이 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어이, 키세."

 

"네?"

 

"팀이 뭐냐."

 

"에, 팀이여?"

 

 뜬끔없는 물음에 키세가 당황한듯 음이탈을 내며 물었다. 그렇게 뜬끔없었나. 팀이라, 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글, 글쎄여."

 

"…궁리하더만 답이 안 나왔냐."

 

"우우, 모르는 걸 어떡함까."

 

"팀은 에이스가 지고 가야할 짐이 아니야. 내가 말한 적 있었지. 에이스는 팀의 승리를 향해 달리면 된다고. 팀의 실책을 떠맡는 것은 주장의 몫이라고.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오히려 감사하고 있어. 그 때 그만큼 올라갈 수 있었던 건 네가 카이조에 있어줬기 때문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어. 부담가질 필요없어, 바보야. 너는 그냥 하면 돼. 그러니까 연습 빠지지 마라, 멍청아. 대학가도 너 제대로 연습하나 감시하러 올거니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체를 일으켜 무릎에 얼굴을 묻고 혼자 울고 있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토닥토닥 녀석이 속 안의 울분을 쏟아낼 때까지 아무말없이 녀석의 옆을 지켰다. 한참을 울던 키세가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운 모습에 푸핫 웃으면서 놀렸다. 모델이라는 녀석이 꼴이 그게 뭐냐. 울린 건 선배잖슴까.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던 녀석이 살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라고.

 

[쿠로바스/청황/화황]그의 마음 죽이기

쿠로바스 | 2015. 3. 1. 11:27
Posted by 물빛녘

※아오키세/카가키세


 

[쿠로바스/청황/화황]그의 마음 죽이기

written by. 티토

 

 

아오미넷치가 죽었다.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른다. 그저 그가 죽었다. 내 옆에 있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오미넷치를 당장 데려와, 라고 소리치자 목이 다 쉬어버린 적도 있었다.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나서야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가 없다는 사실에 세상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아아, 그가 없는 세상은 정말 싫은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라는 존재가 내 옆에 없다면 이 세계도 지루할 뿐이니까, 나는 온갖 방법들로 자살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왜 시도에서 그쳤냐 하면 번번히 그가 막았으니까. 카가미 타이가, 쿠로콧치의 새 파트너이자 세이린 농구부의 에이스였던 그 남자가.

 

그 남자가 왜 나에게 간섭하는지 모르겠지만 만류에도 아랑곳않고 자살시도를 계속했다. 네가 뭔데, 뭐길래 나를 방해해. 어떻게 알았는지 제지당하는 것으로 끝나긴 했다만.

 

 그런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즈음 남자가 그 말을 꺼낸 것은 아오미넷치가 죽은지 4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것보다 질리지도 않는 거냐, 그 남자는.

 

"…내가, 내가 너의 그 '아오미네'가 되어 줄 테니까, 이러는 건 그만 둬."

 

떨리는 음성으로 커터칼을 붙잡은 내 손을 저지시킨 그는 내가 올려다봤을 때 울 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이 남자는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그렇지만 그 사실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어떤 마음을 품던 저 남자의 자유다. 그것보다 내 흥미를 끈 건 나의 '아오미네'가 되어 준다는 그 말이었다. 네가 내 하늘이 되어준다고? 웃기는 소리. 분명 체격도 비슷하고 농구 스타일도 비슷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저 남자는, 카가미는 그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피부색부터 성격, 식성 등. 그런 당신이 아오미넷치가 되어준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웃기는 농담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절실하길래. 웃기는 소리 말라고 뿌리치려다 그의 진심을 짓밟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정말 아오미넷치가 되어 줄 수 있으려나.

 

"정말, 임까?"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양쪽 다 상처만 받을.

 

*


 "키세 군?"


담담한 표정이 나를 응시하자 무의식적으로 가식적인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모델 일을 하면서 몸에 배인 그 행동에 괜히 짜증이 나긴 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방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싱겁긴. 그렇슴까, 라고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앞에 놓인 물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니 갈증이 사라졌다. 포크를 들어 허공을 휘저으며 싱글벙글 웃음을 만면에 가득히 띄우며 물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모였는데 농구나 다 함께 하러 갈까요?"


"으응ㅡ, 난 패스."


옆에 앉아 있던 사내가 느릿느릿 거절의사를 밝혔다. 입가에 생크림을 묻히며 정신없이 먹더니만 이제서야 주변의 대화가 들린 건가. 여전하구나, 무라사키바랏치는. 연극조로 어쩔 수 없네여,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은 나는 옆에 앉아 있던 녹빛의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왼손으로 안경을 치켜 올린 그는 윙윙 울리고 있는 기기를 나한테 들이밀더니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병원에서 호출이라는 거다."


"…에에, 어쩔 수 없네여."


우와, 깜짝아.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을 들이밀 것은 없잖아. 입을 삐죽였다. 아카싯치는 일찌감치 자리를 뜬 지 오래고. 그럼 남은 건 쿠로콧치랑 '아오미넷치'인가. 싱긋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쿠로콧치랑 카가밋치는 어떻슴까?"


"저는 패스하겠습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할 것도 없는 카가미 군이 키세 군이랑 어울려주시죠."


"어, 어? …뭐 그래."

 

"우와, 카가밋치랑 단둘임까…."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은 너무한데."


"어찌되었든 이만 자리를 파하죠."


쿠로콧치의 말을 끝으로 내가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갔지만 점원이 손을 내저으며 앞서 가신 분이 내셨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앞서 가신 분? …아아, 아카싯치구나. 어깨를 으쓱하며 계산서를 내려놓은 채 밖에 먼저 나가있는 카가밋치를 향해 걸어갔다.

 

*

 

걸어가는 내내 둘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길거리 농구 코트에 도착했을 때 외투를 벗고 공을 잡아 든 그의 옷자락을 당겼다. 순간 그의 눈에 의아함이 깃드나 했으나 착잡함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쉽사리 입을 열지 않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위로해주세여. …저, 지금 굉장히 힘들어서."

 

어깨를 토닥이던 손이 이내 내 팔을 잡고 벤치로 잡아 당겼다. 벤치에 앉은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 눈을 살짝 내리 깔았다.

 

"좋아함다."

 

"…나도."

 

"진짜 좋아해."


"나도 네가 좋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기댔던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아, 내가 이 말을 내뱉으면 당신의 표정은 어떻게 일그러질까.


"…좋아해, 아오미넷치."

 

내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눈 앞의 남자의 표정이 무너졌다. 무언가 억누르는 듯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눈을 살짝 내리깐 그가 간신히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응."

 

ㅡ아아, 한껏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는 당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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