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적황]복종
※아카키세
[쿠로바스/적황]복종
written by. 티토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찔렀다. 밀려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시야가 눈물로 인해 뿌옇게 흐려졌다. 안 돼, 료타, 나를 봐야지. 서늘한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들자 익숙한 붉은 머리가 보였다. 아카싯치.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이랬던가. 아니, 중학교 때의 그는 다소 권위적이긴 하나 친절했다. 상냥했고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지? 뺨에 와닿은 차가운 손에 놀라 흠칫하자 그가 낮게 웃었다. 진짜 아카싯치가 맞는 걸까. 얼굴이 닮았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 착하지, 료타."
힐끗 눈동자를 굴려 옆을 보니 싸늘하게 변한 사람들이 보였다. 좀 전까지 나와 얘기하던 모델 친구들이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그였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가 한 짓이었다. 도대체 왜?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내 곧바로 그의 손에 의해 강제로 들리긴 했다만.
"료타."
"네."
입술을 파르르 떨며 대답하자 만족스러운지 생긋 웃은 그는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뒷정리 귀찮겠는걸. 사람을 죽였는데도 태연한 어조였다. 얼마나 이런 것에 익숙한 걸까.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왼쪽 눈꺼풀 아래에 위치한 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노란색. 언제부터 그의 왼쪽 눈동자가 금빛이 되었지? 그가 자신의 능력을 개화하면서부터였나. 언제부터 아카싯치가 아카싯치가 아닌게 된 걸까. 내가 알던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저 안에 잠들어 있는 건가. 아니면 포악한 그가 잡아먹은 걸까.
"내가 말했잖아, 료타. 나 이외에는 다른 녀석들과 얘기하지 말라고. 그런데 너는 이렇게 어겼으니 어떻게 해야할까."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한 아카싯치는 끝에 싱긋 웃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어야 한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가 원해서일 뿐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채 용서를 빌었다.
"죄송함다. 용서해주세여, 아카싯치."
"으음, 하지만 용서해주면 또 료타가 어길텐데."
재밌다는 듯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의 입가를 보던 나는 그의 신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는 게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하하, 영악한걸, 료타. 응, 그래야지. 주인에게는 복종해야하는걸 잘 알고 있구나."
만족스러움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피냄새가 진동해 울컥 속의 것들이 올라올 뻔했다. 내 꼴을 본 아카싯치가 쇼파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짓을 하자 시체로 변한 사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피냄새의 근원이 사라지자 그나마 나아진 공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긴장을 늦추면 안 되었다. 침을 꿀꺽 삼킨 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내가 뭘 하면 좋을까. 그에게 내쳐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카싯치?"
아무런 반응을 주지 않자 안달난 내가 그를 부르자 아카싯치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기 가득한 내 눈동자를 본 그가 곰곰히 생각하는듯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 그는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듯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벌을 줘야 료타가 말을 잘 들을 것 같단 말이지."
"잘, 잘못했슴다, 아카싯치."
좀 전의 참극을 떠오르자 몸이 절로 떨렸다. 나도 그 꼴이 되는 건가. 두려움에 턱을 바르르 떨며 그를 올려다 보자 여전히 차가운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생각을 읽은 듯 후후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료타를 그것들처럼 만들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섭섭한걸. 으음, 뭐가 좋을까."
신중하게 생각하는 척하던 그는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근처에 놓여진 물이 담긴 유리잔을 손에 들었다. 뭐지, 하는 순간 머리에서 차가운 게 후두둑 떨어졌다. 물? 의아함에 그를 보자 아카싯치는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젖었잖아, 료타. 그럼 벗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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